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 망가진 책에 담긴 기억을 되살리는
재영 책수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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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책 수선가가 있는 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수선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에 수선의 대상이 다름 아닌 책이라니! 독서 인구 절벽을 향해가고 중고 서점이 판을 치는 이 때 책을 수선하는 직업이라니! 흔치 않은 직업을 살아가는 책 수선가 재영 작가의 수선 기록은 매우 신기하기만 하다.

재영 작가는 도서관에서 책 수선하는 일을 하다 독립해 <재영 책수선>을 열어 망가진 책을 수선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연 책을 수선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재영 책수선>의 첫번째 고객의 책은 <89 시행 개정 한글 맞춤법 수록>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사전을 가지고 놀고 첫번째 고객의 직업으로 갈 수 있게 한 오래된 친구였다. 책이 한 권의 물건이라기보다 친구처럼 그 세월을 함께 견뎌나갔기에 그 고객은 망가진 책을 고쳐주고 싶어했다. 재영 작가는 그 의뢰인의 눈빛과 말투에서 책을 통한 애정을 느끼며 작업을 해 나간다. 재영 작가의 손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고객에게 돌려졌을 때 감동에 찬 그 한 마디.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이 고객의 한 마디는 지금까지 책을 수선하는 재영 작가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계기가 된다.

"차라리 사고 말겠다." "그냥 귀찮게 뭘 고치냐? 얼마 안 하니까 그냥 새로 사."

예전 어른들은 사서 오래 쓰는 걸 소중히 했지만 대량소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시대에 수리 비용이 차이가 나지 않으면 과감없이 수리를 포기하고 새 물건을 산다. 하지만 새로 사는 만큼 그 물건에 대한 애정은 갈수록 줄어든다.

조금 쓴 후 버리고 마는 소모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가 된다. 수선이 줄어든 다는 건 그렇게 물건을 소중하게 대하는 우리의 마음 또한 사라져간다는 것이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에서 소개 된 여러 고객의 사연을 듣다 보면 요즘은 사라져 가는 수선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 고객처럼 '어린 시절 친구'처럼 여기는 마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긴 옥편을 수선하여 할아버지를 기리는 마음',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낡은 앨범의 수선을 통해 아내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일'...

각 고객들의 수선 의뢰에는 각자의 사연이 담겨 있었고 그들은 어쩌면 더 저렴할 수 있는 새 책 구매 대신 망가진 책을 수선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택한다. 의뢰인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헤아리며 형태를 바꿔 하며 재영 책수선가는 하나 하나 망가진 책을 수선해나간다.

책 수선이 다른 수리보다 더 특별한 건 모양과 수리가 일정한 일반 공산품과 달리 책 수선은 추억에 따라 또는 고객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수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종이에 따라 수선 방법이 다르고 표지를 새로 바꿔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하거나 희귀본인 '초판'의 특징을 살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수선되는 책 수선의 세계는 그야말로 창의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결국 재영 책 수선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바로 '책을 대하는 마음'이었다.

한 권의 책이 의뢰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소중하게 대하기 바라는 재영 책수선가의 마음이 더해져서 망가진 책이 새롭게 태어난다. 반려견, 반려동물처럼 함께 마음을 나누는 대상으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하기를 바라며 책을 수선한다.



평생을 함께하고 아낄 책이라면,

비록 반려동물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어도

사람과 책 역시

그에 못지않게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만약 그 관계 안에서 서로가 닮아가게 된다면,

책 수선을 통해 그렇게 된다면, 꽤 멋진 일이지 않을까?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리 시대에 잊혀진 마음이다. 만약 내가 책 수선을 한다면 어떤 책을 의뢰할까 책장을 훑어본다. 부끄럽게도 내게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 책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만큼 내가 의미를 두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앞으로 내게 있는 책 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부터 챙겨야 할 것 같다.

재영 책 수선가의 첫 책,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의뢰인들의 마음과 수선가의 마음이 만나 읽는 내내 따뜻했다. 단지 수선하는 기록인데 이렇게 따뜻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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