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이 기도할 때
고바야시 유카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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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의 저주 ……





소설은 주간지 <주간워시>의 짤막한 기사로 시작된다.

학교폭력 피해자 S가 11월 6일 자살.

피해자 S군의 어머니가 다음 해 11월 6일 아들을 따라 자살.

S군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Y군이 유서를 남긴 채 그 다음 11월 6일 투신자살.

3년 연속 똑같은 날자에 연달아 세 사람이 목숨을 거둔다. 이건 정말 기자가 말한대로 '11월 6일의 저주일까?'

『죄인이 기도할 때』에는 두 가지 사건이 소개된다. 절친했던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해 친구 대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된 도시케. 그는 깡패 그룹 '레드엘'에 있었던 선배 류지에게 돈을 상납할 것을 요구받지만 돈을 주지 못하자 어김없는 분노의 대상이 된다. 이 고통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에게 구원투수가 나타난다.

도시케가 죽을 뻔한 위기를 막아 준 구원투수는 다름아닌 삐에로. 삐에로는 도시케에게 자신을 페니라고 소개하며 놀라운 제안을 한다.

"내가 죽여줄게."

"네가 죽고 싶은 이유에 흥미가 있어."

삐에로 분장의 페니. 얼굴도 모르는 삐에로에게 대신 죽여주겠다는 제안을 받은 도시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컨트롤라이프'의 본사에서 비품관리실을 맡고 있는 가자미 실장은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잃었다. 사람들의 연민속에 간신히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없다. 삶의 희노애락을 나눌 가족이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인생.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그 가해자를 반드시 찾아내리라. 절대 용서하지 않으리라.

학교폭력. 한국에서도 한 때 배구 선수 학폭 미투 운동이 있었듯, 쉽지 않은 주제이다. 『죄인이 기도할 때』의 저자 고바야시 유카는 소설 속의 폭력의 실태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르포 소설처럼 잔인성을 과감히 드러낸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도구로 온라인 왕따부터 시작해 N번방과 같이 유혹해 사진을 찍고 포로로 만드는 폭력의 형태 등 어떻게 폭력이 자행되고 있는지 소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제가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해서 그 애들이 소년원에 들어간들

그 애들은 전과도 생기지 않아요.

사회에 돌아오면 이름을 바꿀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죽을 때까지, 야뇨,

죽은 뒤에도 사진이 돌아다닐 거예요.

그거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

소설 속 가해자들은 말한다. 나는 소년원에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다고. 잠시 들어갔다 나오면 그 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마음놓고 말한다.

할 수 있으면 경찰에 신고해.

할 수 있으면 선생님께 말해.

난 소년원에 갔다 온 다음에 너를 또 찾아갈거야.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 뒤 일상을 다시 살아갈 수 있지만 피해자에게는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이 현실. 피해자 중 한 명인 하기노의 하소연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 않은 피해자를 탓하지만 그 출구까지 막아놓았음을 어른들은 너무 늦게 깨닫는다.

가해자는 한 명이지만 피해자는 꼬리물기로 계속 생겨난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하지 않기 위해 방패막이로 다른 누군가를 배신하고 또 다른 피해자는 또 다른 누군가를 내세운다. 살아남기 위해, 죽지않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배신해야 한다.

소설에서는 짤막하게나마 가해학생의 입장도 소개된다. 그들 나름대로 가정 형편의 문제가 있고 슬픔이 있으며 그 부정적인 감정이 학교폭력으로 발전된 것임을 말해주지만 결코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 삐에로의 정체가 밝혀지며 세상이 모두 삐에로를 욕할 때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삐에로를 돕는 이들이 있다. 바로 학교폭력 피해자인 도시케와 하기노. 선생님도 경찰도 외면한 이 폭력의 진실에서 이들은 묻는다.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요?

소설 속 사건이 우리에게 있었던 사건을 연상하게 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소설이다. '카카오톡 왕따', 피해자만 빼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온 영화 <한공주>의 모티브가 되었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N번방과 같은 포로 작전 등 을 생각하게 하며 '진짜 죄인은 누구인가'라는 묵직한 질문 속에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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