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인 더 다크 - 어느 날 갑자기 빛을 못 보게 된 여자의 회고록
애나 린지 지음, 허진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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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장이 있다.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자신의 꿈인 아파트를 구입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누가 보기에도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다. 자신의 삶을 더욱 즐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갑자기 잃을 수 있다면? 갑자기 들이닥친 희귀질환이 자신의 모든 걸 빼앗아 간다면?

상상할 수 있겠는가?

『걸 인 더 다크 Girl In the Dark』의 저자 애나 린지의 이야기다. '광선과민성 지루성 피부염'이라는 희귀질환은 저자의 삶을 모두 삼켜버린다. 처음엔 컴퓨터 화면에만 반응하던 피부염이 증상이 악화되며 모든 빛에도 뜨거운 발진이 계속된다. 얼굴에만 반응하던 피부염은 어느 새 전신으로 퍼지며 저자는 점점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볼 수 있음에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우리는 짐작할 수 없다. 직장을 사직하고 집을 처분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남자친구 피트가 함께 있어달라는 저자의 부탁을 받아주며 보호자가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사랑으로 함께 하기로 결정하며 저자는 새로운 미래를 계획하지만 악화되는 증상은 두 사람의 미래를 자꾸 어긋나게 한다. 결혼했지만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저자에게는 항상 현재만을 견뎌내는 것 뿐이다.


저자가 말한 모든 것이 숨겨진 칼날 같은 시간 이란 말에 숨을 고른다.

우리 모두 바로 내일 우리 앞에 무엇이 펼쳐지 있을지 알지 못한다. 당장 끔찍한 불행이 기다릴 수도 있고 반대로 엄청난 행운이 기다릴 수도 있다. 아직은 펼쳐져 있지 않은 숨겨진 시간의 끄트머리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은 축복일 수 있다. 비록 그 시간이 잠깐일지라도 지금 아무것도 모른 체 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이다.

『걸 인 더 다크』가 소설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독자들은 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책을 덮을 수 있으리라.


나는 배웠다.

가장 숭고한 진실은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진귀하고 다채로운 고통으로 채워져 있으므로

'왜 하필 나지?'라는 말은 바보나 하는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양식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아닐 이유가 어디 있어?"


저자와 남편 피트는 이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간다. 함께 껴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한다.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다면 그것으로 매우 감사해하고 다시 나빠진다면 나빠진대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연구한다. 아내와 함께 하는 남편 또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휴가를 가기도 하고 저자 또한 자신이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대치를 연구하며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루를 견뎌내고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글자로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기에는 저자가 견뎌온 시간은 상상하지 못한다. 어둠에서 거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꿋꿋이 지켜낸 저자의 노력은 더 큰 고통이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선택한 저자에게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지금 최선을 다해 살자고 다독여본다. 지금의 삶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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