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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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 [사마리아]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연일 폭격이 계속되고 전기도 먹을 것도 모두 단절되고 폐허가 되어 버린 알레포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한 여인의 카메라에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바로 눈 앞에 폭격이 떨어지고 어린 동생이 목숨을 잃는 그 현장에서 우리는 사람들을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곳에서 아픔을 감내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라는 소설 또한 비슷한 의미를 준다. 1986년에 있었던 체르노빌 원전 사건 이후 우리는 그 현장을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재앙의 장소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그 재앙의 장소였던 그 곳에 아직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며 삶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바 두냐라는 할머니다. 원전 사고가 있고 다시 체르노빌로 돌아온 첫 번째 사람이다. 모든 것이 방사능에 오염되어버린 이 현장에 돌아가는 걸 가족들은 반길 리 없다. 하지만 바바 두냐는 극구 말리는 딸 이리나를 향해 말한다.


난 늙었어.

나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다.

혹시 그렇다 해도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


소설에는 원전 사고 후 달라진 이 체르노빌의 모습이 바바 두나 할머니의 설명 속에 그려진다.

새들이 사라져서 큰 거미들이 생겨나고,

오염된 동물들이 기형의 모습으로 변형된 동물들의 모습,

전화선도 끊겨서 바깥과 연락할 수 없으며 바깥의 시간과 단절된 체르노빌.

그 곳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은 바바 두나와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아.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세상을 떠난 망자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분명 이 재앙은 마을을 황폐화시켰지만 바바 두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원망하기보다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체르노빌에 살기 때문에 멀리 독일에서 사는 손녀를 단 한 번도 못 만나지만 그 역시 자신이 감내해야 함을 받아들이며 딸과 편지로 서신을 주고 받는데에 만족한다.

이 조용한 공간에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동안 할머니 바바 두냐는 가장 주체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은 바바 두냐를 의지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삶의 의지를 불태움 자신의 삶을 끝까지 껴안는다.

비록 방사능이 뼈속까지 침투해 작은 원자로와 같은 몸이 되었지만 삶을 살아가며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생각한다. 코로나라는 재앙이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고 그 원인을 아시아인에게 돌리며 폭행하는 아시아인 혐오, 코로나 확진자를 죄인 대하듯 바라보는 시선 등이 바로 재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럼에도 사랑할 것이 있는 한 살아간다. 그 안에서 결혼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이웃을 챙기며 삶을 살아간다.

내가 영화 [사마에게]를 보았을 때는 전쟁 외면의 모습만 보았을 뿐 그 안에 감내하며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마에게]는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한 영화였다. 『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은 체르노빌로 그치지 않고 그 재앙의 현장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해 주었다. 자신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고양이가 눈 없는 새끼고양이를 낳아도 사랑하며 방사능에 오염된 자작 나무 수액조차도 사랑하는 사람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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