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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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정치뉴스에 격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나라의 정의가 사라졌다고. 선거로 바꿔야 한다고..

그래서 유모차를 이끌고 촛불 잔치에 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냉소적인 분들이 격분하는 저를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놈이 그 놈이다."

그 놈이 그 놈인 세상. 그 놈들이 무슨 일을 벌이든 솜방망이 처벌로 빠져나오는 무법천지인 세상.

속에서 열불이 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은 저 놈들을 안 데려가고 뭐하나."

『집행관들』은 바로 그런 분들을 위한 소설입니다. 신이 안 데려간다면, 법이 심판을 못 한다면 우리가 심판해주겠다고 말해주는 사이다소설입니다.

『집행관들』의 주인공 최주호는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칼럼니스트입니다. 그는 사회의 불의에 격분하며 칼럼으로 분노를 표출합니다. 아내와 딸은 미국에 있고 홀로 생활하는 그에게 고등학교 동창 허동식이 찾아옵니다. 돈 또는 영업할 거라 생각했던 최주호의 기대와 다르게 허동식은 악질 친일파 중 유일한 생존자 노창룡의 자료를 요청합니다.

소설은 처음부터 이들의 정체를 숨기지 않습니다. 허동식과 그 일행, 제목의 '집행관들'은 암살대상을 정한 후 치밀한 계획하에 그들의 목적을 실행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노창룡, 그리고 특별 사면이 된 전직 검사출신 정치인 정영곤까지.. 두 명의 유명인사를 잔혹한 수단으로 해치운 이 집행관들의 행태에 나라는 발칵 뒤집힙니다. 그리고 그들을 잡기 위한 특별수사대가 조직되고 이들을 잡기 위한 검찰의 수사가 확대되며 본격적인 숨통 조이기에 들어갑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집행관들의 행동에 최주호와 똑같은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한 두명 죽인다고 세상이 바뀔 수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습니다. 무모하고 위험한 작업이죠. 냉소적인 최주호에게 허동식은 말합니다. '분노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차이라고요.



분노를 삭이는 자와 분노를 몸으로 표현하는 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제대로 된 분노를 표현한 때가 촛불혁명 말고 언제 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법의 심판을 믿으며 참았건만 세상은 언제나 그놈의 그놈인 세상. 분노를 칼럼으로 떄우고 삭여보지만 그 방법만으로는 결코 세상을 바뀔 수 없다는 걸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집행관들 모두가 그 한계를 절실히 깨달은 사람들이기에 자신이 집행관이 되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검찰수사망은 갈수록 이 집행관들의 숨통을 조이며 집행관들의 꼬리를 밟기 시작합니다. 정의를 위해 일어섰지만 쉽지 않은 세상. 이들도 역시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지만 끝까지 집행관의 역할을 해 나갑니다.

비록 끝난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결코 집행관의 역할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소설은 막을 내립니다.

결국 집행관을 만들어낸 것도 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부패였습니다. 이 사회의 부정 부패가 바로 집행관들을 키웠습니다. 만약 이 사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과연 집행관이 필요했을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 집행관들을 잡는 검찰 또한 과연 이들을 심판할 권리가 있나라는 질문을 남기게 합니다.

초반은 거침없는 집행관들의 태도에 긴장하며 책을 읽었다면 후반은 조여가는 수사망 속에서 이들의 활약에 안타까움으로 읽어나가게 되는 소설입니다. 사이다 소설을 원하시는 분들께 이 책이 좋은 추천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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