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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다. 예전 같은 드라마를 보며 좋아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하던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이야기만으로도 몇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책 애호가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책에 얽힌 뒷 이야기,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한 출판사의 책에 관한 궁금증, 희귀본 등에 대한 여러 정보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의 저자 박균호님은 중.고등학교 영어교사이자 책 수집가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보았을 이야기들이 책 속에 펼쳐지며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먼저 저자는 책을 주문해서 받는 장소가 세 곳이다. 직장, 직장 숙소, 자택 . 서재에 책이 넘쳐나지만 책을 포기할 수 없어 아내의 눈을 피해 직장에 책을 주문한다. 각 상황에 맞춰 주소를 달리 하다보니 때론 동선이 꼬이는 웃픈 이야기도 생겨난다. 나 역시 남편의 눈을 피해 직장과 집을 번갈아 책을 받다보니 저자의 이야기에 무릎을 치며 공감을 하게 된다.
대형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에 관한 정보 또한 유익하다.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민음사부터 을유출판사, 열린책들, 펭귄클래식, 창비까지 각 전집의 1번이 갖는 의미와 차이점등을 쉽게 알려주어 각 출판사에서 지향하는 세계문학전집의 지향점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닥터 지바고>의 저자는 소련에서 추방될 뻔하고 <율리시스>는 독자들에게 책을 읽히기 위해 일부러 법정 소송까지 가며 고된 싸움을 시작한다. 특히 한빛비즈에서 출판한 <죽음의 부정> 은 이 책을 꼭 재출간하고자 하는 한 편집자의 굳은 의지가 있었기에 다시 세상에 출간되어 읽힐 수 있었다. 이 후일담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에 다다른다. 이 책들 이외에도 책은 많은데 왜 그토록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출간하고자 하는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소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조금 단순하지만 '이 책은 꼭 독자들에게 가 닿아야만 한다'라는 그들의 직업의식이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의 출판사이기도 한 소명출판의 경우 학생 시절 보았던 「문학의 논리」를 재출간하고 아무런 자본도 없는 헌 책방 주인이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출간하기 위한 무모한 도전도 돈으로만이 아닌 그들의 사명 이외에 설명될 방법이 없는 듯하다.
시중에 팔리지 않을 책임을 알면서도 이윤을 포기하고 책을 출간하는 그들의 속사정은 자신들마저 출간하지 않으면 결코 독자들에게 가 닿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저자 및 감수 위원을 두는 수고를 두면서까지 책을 포기하지 않는다.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출판계에 흔한 마케팅이 되어 버린 서평단 이야기 또한 솔직하게 말한다. '읽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포기하는 다소 번거로운 이 서평단. 책의 만족도가 떨어져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서평단의 비애를 이토록 솔직하게 말해도 되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역시 서평단으로 읽게 되니 이 역시 아이러니가 아닐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래봤자 책'일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책을 만드는 관계자나 책 애호가들에게는 '그래도 책'인 책들의 세상. 이 책이 뭐라고 그래봤자 책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책'이 좋다고 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진심으로, 서평단 때문이 아닌 순수한 독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