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시간
해이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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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소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하는지, 왜 상대방이 떠났는지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타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자신과 똑같은 사랑을 하고 상처 받는 남을 보며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난 인연을 이해하게 된다.

해이수 작가의 소설 『탑의 시간』은 미얀마 바간에서 만난 네 명의 관광객들의 이야기다.

먼저 이 소설은 인물들이 독특한 배경을 갖추고 있다.

5년 사귄 약혼녀와 파혼하고 약혼녀의 절친한 친구를 선택했지만 결국 혼자 이 바간에 여행오게 된 명,

한 때 사랑했던 12살 연상의 기혼남의 죽음 이후 남자의 흔적을 찾아 바간에 온 연,

여행사 직원으로 미얀마 관광 루트를 개발하기 위해 200일 된 여자 친구와 함께 여행 온 최와 희

전혀 연이 없을 것 같던 이 네 명은 같은 호텔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함께 여행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 명과 연은 지난 연인을 그리워한다. 명은 자신을 약혼녀와 파혼까지 하게 하고 함께 바간 여행을 제안했지만 끝내 오지 않은 연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연 또한 자신을 사랑하지만 가족을 버리지 못했던 떠난 연인에 대한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다. 명은 연을 보며 왜 자신의 연인이 그토록 불안해했는지 이해하게 되고 연은 지난 자신의 사랑을 명을 통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유일한 커플인 최와 희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이였는지를 알게 된다.

미얀마의 수많은 탑들은 완공되지 못한 탑도 많고 허물어진 탑도 있다. 탑이 너무 많아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우는 탑들, 완전한 탑이 아니라면 과연 소용이 없는 것일까 묻는 인물들의 대화는 끝내 해피엔딩이 되지 못했던 그들의 사랑을 상징한다.

"탑이 뭐라든가요?"

"쌓는 것. 차곡차곡 넘어지지 않게 쌓아서 굳건히 지키는 것. 뭐 그러더라고요."

"에야와디강에게도 물었죠. 사랑이 뭐냐고."

"그랬더니요?"

"흐르는 것.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것. 그러더라고요."

비록 사랑하는 연인은 오지 않았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고 싶었지만 홀로 있어 외로웠던 명과 희는 이 바간에서 자신의 사랑을 다시 새롭게 정의해간다. 끝이라고 생각했던 이 곳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인 『탑의 시간』은 수많은 탑들 속에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앞으로 다시 나아가는 자리였다. 자신을 돌아보는 이 모습이 바간의 풍경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펼쳐진다.

소설은 큰 사건이 없이 잔잔하며 이 네 명의 인물들이 바간을 여행하며 과거 또는 현재를 돌아보는 전개가 대부분이라 다소 밋밋함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네 명의 인연이 서로 이어지며 돌아보는 과정이 매우 촘촘하게 전개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왜 저자는 많은 국가 중 미얀마의 바간을 택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이유를 바간의 많은 완공되지 못한 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세월 동안 완공되지 못한 채 있는 숫자로만 불리우는 탑들이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 있음을, 그리고 다시 탑을 쌓을 수 있듯이 사랑도 다시 차근 차근 쌓을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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