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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일 -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
줌마네 지음 / 지식의편집 / 2020년 12월
평점 :

제목 『쓸 만한 일』을 보아서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쓸 만한 일』은 여자들의 자립과 예술적 성장을 지원하는 <줌마네>에서 8명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연대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8명의 여성 인터뷰이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영화감독, 영화배우부터 시작해 과외선생, 문화기획자, 페미니스트 기획자, 백수, 프리랜서 디자이너, '몸춤'운영자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이야기한다.
『쓸 만한 일』의 표제는 '나를 구성해온 일들의 기록'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해 왔던 일들에 대한 일들의 연대기이다. 할머니를 도왔던 경험부터 아르바이트, 그리고 지금까지의 여러 경험등을 서로 나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일 수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패와 아픔을 이 책에서 과감히 풀어놓는다.
제가 견뎌내지 못하고 너무 빨리 그만뒀던 기억 때문에 어디든 다시 지원할 때마다 힘들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어디 소속되어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어요.
회사 나오면서 이사님이랑 얘기했는데 "절대 이력서에 쓰지 마라" 그러시더라고요.
5주만의 퇴사는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특히 실패의 경험은 강하게 각인되어 두려움을 남긴다.
이 대화를 들으며 나는 첫 직장에서의 해고경험을 떠올렸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한 학원에서 나는 몇 달 후 당일 해고통지를 받았다. 몰래 나를 대신할 후임을 구해놓은 채 하루 아침에 나는 백수가 되었다. 첫 경험이였고 그 때 이후로 내게는 노이로제가 생겼던 것 같다. 버림받으면 안 된다는. 꼭 살아있어야만 한다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 실패의 경험은 때때로 나를 두렵게 한다.
지금 와서 보니 제가 손바느질이나 수놓기를 하는 건 살면서 힘든 일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그걸 하고 있으면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지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게 서서히 나를 나타내는 무언가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거에 소질이 있고 정말로 좋아하는 게 뭔지를 열심히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와서야 내가 누군지 서시히 알아가는 저도 있으니까.
이제까지의 내 인생 중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을 한 가지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해보라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게 자신에게 맞고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있을테니 뭐든지 도전해보고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실패에 대한 강박관념때문인지 성공 확률이 높고 스펙이 되지 않는 일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스펙 위주로만 활동한다면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채 외부의 조건에 의지해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바느질, 수 놓는 시간이 비록 남들 눈에는 시간 낭비같아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집중하며 충분한 경험이 쌓이고 이 바느질이 아사님의 연대기가 되어 주는 일이 된다. 뭔가 시도를 하지 않고는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쓸 만한 일』 속에서 여덟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나의 일의 연대기는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내 아픈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일상에 치여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역사가 이 책을 통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난다. 나는 내 경험이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떠오른 기억을 보며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경험의 파편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음을 알게 해 준다.
나를 알게 해 주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책에는 단락마다 읽는 이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쓰도록 되어 있다. 그 질문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여러분이 놓치고 있던 기억들을 꺼내 당신의 역사를 돌아보게 해 줄 것이다. 그 역사 속에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도움이 될 것이다. 2021년 새해, 자신의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