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이은정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은정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책장 위 고양이』 시즌 1에서였다. 남궁인, 박보영, 김민섭 등 다양한 기성작가들 사이에서 이은정 작가는 내게 처음 접하는 이름이었다. 이 『책장 위 고양이』를 통해 오랜 무명 끝에 등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고 시즌 1이 끝난 후 유튜브 '겨울서점'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소설집 출간 준비중이라는 말에 작가의 신작이 기다렸다. 이은정 작가의 첫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다.

이은정 작가는 2018년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다.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는 작가의 수상작인 <개들이 짖는 동안>을 포함하여 여덟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여덟 편의 단편들의 인물들 중 온전한 인물은 없다. 모든 인물들의 삶에 그늘이 있다. <잘못한 사람들>에서는 가장의 무게로 제대로 된 직장 구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자매의 모습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는 부부가 나온다. <친절한 솔>은 부의 격차 속에서 이루어지는 조그마한 사회의 모습이 <엄 대리>에서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가정을 위해 현실을 택하며 아둥바둥 살아가는 엄대리가 나온다. 그들의 삶은 구질구질하고 처절하다. 아버지의 빚을 껴안고, 계약직마저 번번히 떨어지고 매일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헤어짐을 앞에 둔 부부 1년차의 모습이 나온다.

이 여러 인물들은 가족이라는 짐이 있다. <잘못한 사람들>에서는 아버지의 빚을 껴안고 힘들어하는 승호가 있다. <그믐밤 세 남자>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숨어 살기 좋은 집>에서는 잘못된 집착을 가진 시어머니가 있다. 수록된 단편들 중 가정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단연 <피자를 시키지 않았더라면>이다. 7년을 사귀고 결혼했지만 1년만에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30대를 맞아주면 이혼하겠다는 조건하에 맞는 이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불행한 가정사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우겼지만 그 불행한 가정은 결혼하여 독립한 후에도 족쇄가 되어 아내를 괴롭힌다. 결혼생활이 부부의 문제로만 될 수 없음을 말하며 어떻게 당사자들을 좀먹는지

서늘하게 보여준다. 현실에서 보여주는 서솔이 아닌 화자의 시선으로 잠깐씩 비춰지는 이 서술만으로도 불행한 가족의 무게가 얼마나 이 부부들을 짓누르는지 보여짐에 부족함이 없다. 계속 되는 구타, 이혼을 앞둔 상황에서 아내가 결혼사진에서 자신의 가족을 찢고 남자가 자신과 아내의 사진만 도려내는 그 장면들은 이 부부가 과연 가족으로부터 진정 해방될 수 있을까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품게 해 본다.

이 단편들 중 유일하게 희망적인 건 <엄 대리>이다. 함께 소설을 쓰는 꿈을 꾸었지만 현실에 항복한 엄대리에게 실망해 이혼한 전처와의 재회. 그들의 이야기는 과연 현실과 꿈을 동시에 이루지 못하는 소시민들의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집 중 가장 희망적이면서 엄 대리와 전처를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라서 좋았다.

삶이 구질구질하다. 누구 하나 쉬운 인생을 사는 삶은 없다.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 속의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그들의 삶에 비추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건들이다. 가난과 불평등에 이제 낯선일이 아니게 된 이런 현상들을 작가는 서늘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살아간다. 이게 인생이라는 듯...

이은정 작가의 글을 보며 떠오른 작가가 있다. 바로 2018년 세상을 떠난 정미경 작가이다. 정미경 작가의 작품은 서늘하다. 인간의 불행을 서늘한 시선으로 풀어놓는 작가, 그래서 그 불행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작가였다. 이은정 작가의 작품 또한 그랬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왠지 이은정 작가의 작품 세계가 앞으로도 이렇게 자신만의 문체를 확고히 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어떤 소설을 써나갈지 더욱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