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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오브 스토리 - 다 알고 또 모르는 이야기
박상준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9월
평점 :

책에 관한 에세이를 좋아한다. 특히 내가 아는 작품에서 느낀 점이 비슷할 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듯해 반가웠다. 『스토리 오브 스토리』 또한 책 이야기다. 다만 내가 읽은 책들은 비전문가들이 쓴 사적인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이 책은 포스텍 인문학부 교수로서 전문가인 박상준 님의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스토리 오브 스토리』에 수록된 많은 작품들 중 내가 읽은 책은 얼마되지 않는다. 내용을 알지 못하고 읽는 평론이라서 조심스러웠다.
『스토리 오브 스토리』는 1부 소설의 빛깔,서른 다섯의 이야기와 2부는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먼저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마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의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고 한다. 사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끌리지 않았다.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리지 않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가 부러울 뿐이었다.
박상준 교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국적이 없는 소설'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숲』, 『가시단장 죽이기』 등 수많은 그의 작품은 어느 지역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평하는 한 문장은 매우 날카롭다.
내가 보기에 더 중요한 진실은 하루키의 소설이야말로 세련되게 잘 만들어진 문화상품이라는 점이다.
... 문학이 정신을 다듬는 자리란 고유의 역사 전통과 문화적 특성을 갖춘 구체적인 현실과의 상관 관계 속에서인데,
바로 이러한 현실이 그의 소설에 휘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평을 듣는 순간 나는 앞으로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편도 읽지 않은 독자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평할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기준과 대치되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이란 현실을 날카롭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 『근린생활자』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소설이 좋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왜'가 없는 소설은 내게 허무함을 줄 것 같다.
나는 권여선 작가의 소설 『레몬』을 좋아한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언니를 잃은 김다언이었지만 내가 소설에서 사랑하는 인물은 한 많은 한만우였다. 돈이 없어 끝까지 불행하게 살아갔지만 삶을 끝까지 생생하게 살아간 한만우를 보며 가슴이 먹먹했었다. 하지만 짧은 시각의 나와 인문학 교수인 저자의 이야기가 달라서 다소 당황했다. 내가 한만우에 초점을 맞췄다면 박상준 교수는 끝까지 주인공 김다언의 내면을 이야기해주며 권여선 작가의 전략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이건 내가 저자의 설명에 따라 『레몬』을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인문학부 교수답게 인문학적으로 문학 작품 안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그동안 읽고 있었던 독자로서 쓴 책 에세이들과는 다른 지식과 깊이를 갖춘 평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서평을 쓴다고 하면서 얇고 편협한 내 글들이 부끄럽기도 했다. 한동안 이슈가 되었던 '이상문학상 파문'과 각종 문학상의 실체에 대한 견해, 지방의 문학상 공모전 등의 문화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우리가 작품을 평가할 때 작가의 행적이 작품에 고려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도 빼놓지 않는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책에서 저자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를 가지고 대화하고 싶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책을 더 깊게 느리게 읽어야 할 것이다. 한 편의 선생님을 만난 느낌이다. 글을 쓰고 서평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저자처럼 책을 깊게 이해하고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