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이일영 외 지음 / 지식공작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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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시민'에 나를 대입했다.

나름 페미니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박원순의 성폭행 사건'은 혼란 그 자체였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진보인사들 사이에도 박원순 사건은 양측으로 갈라졌다.

비록 그의 마지막 행보가 매우 실망스럽긴 하나 그의 죽음에 대한 추모가 먼저라는 입장과 '피해자와 연대합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속히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피해자 연대 측의 주장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입장을 내세우면 다른 쪽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야했다. 이 상황 속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시민들이 생각을 말하기보다 침묵을 택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은 멈춰 버린 진실에 대한 토론의 장을 열고 생각을 나누며 그대로 멈춰 서지 말고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하는 기획으로 제작되었다. 처음 이 책은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 일지>부터 가장 최근의 진행상황부터 시작하여 역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박원순 -> 문단계 미투 -> 안희정 -> 스포츠 -> 문화계 등 사건의 발생과 진행 상황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되어 한국 내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발달되어 있는지 독자의 이해를 돕게 해 준다.



이 책의 기획의도에 동의하고 참석한 이일영, 이인미, 이재경, 도이, 황인혁 다섯 명의 인사들로 이루어진 이 토론에서는 이 다섯 명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초대되었으나 거부한 사람도 있음을 밝힌다. 참석한 이 분들 또한 주변의 만류와 많은 고심 끝에 참여했음을 말하며 쉽지 않았음을 나타냈다.

왜 이 사건에 대해 토론자들은 고심해야 했으며 지인들은 왜 굳이 나가고자 했을까?

바로 박원순이라는 상징성과 죽음 때문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나쁜 인간이었다면 이 사건은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며 여성 문제에 대한 인권변호사이기도 했던 박원순의 진실과 죽음 앞에서 그를 옹호하는 측과 비판하는 측 그리고 침묵을 지키는 쪽으로 갈라졌다. 한 쪽이 이야기를 하면 다른 한 쪽이 맞받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침묵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침묵 앞에서 이 사건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서 모인 다섯 명의 토론자들 또한 이 부담감과 그래도 말해야 한다는 의무감 앞에 무거운 발걸음을 하고 토론에 응했다.

하지만 이 다섯 명의 토론자들은 해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 속에 이들의 토론은 앞부분만을 차지할 뿐이다. 다만 토론자들은 박원순 사건으로 갈라진 현 상황과 왜 진보라고 칭하는 정치인들 사이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한다.

예명을 쓰며 참석한 도이씨는 비서실에 근무했던 경험을 통해 안희정, 박원순 비서실에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위계의 무거움을 토로하며 왜 말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을 변호한다. 또 다른 연사는 처음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박원순 전 시장이 정치의 옷을 입은 후 달라져가는 권위적인 모습을 비추어간다.

무엇보다 정의를 위해 헌신했지만 젠더 평등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진보 정치인들의 괴리 또한 연달아 발생하는 이 사건의 이면을 짚어 준다.

토론자들은 이 박원순 성추행 사건의 진실의 양분화를 가장 우려한다.

박원순의 죽음 앞에 갑자기 멈춰버린 이 진실은 진실 추구를 주장하는 측을 매정하다고 비판하고 추모하는 쪽은 진실을 외면한다고 비판받는다. 서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들의 논쟁만 있을 뿐 토론은 멈춰버렸다. 이에 대한 토론 없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걱정하며 극복하기 위해 어렵게 토론을 이어나간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가

죽음이라는 너무 큰 장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잖아 라는 논리 앞에서

이야기는 멈춰버린다.

떼어놓고 보고 싶은데,

미투 사건은 미투 사건이고 공을 추모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서는 이 진실에 반응하는 세대간의 차이, 그리고 그 차이의 이면에 드러난 사회혐오 등이 있음을 밝혀준다. 결코 이 사건이 젠더 사건으로만 묻히는 것이 아닌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박원순 사건을 시작으로 안희정 사건과 여러 미투 사건의 진실과 법정 판결문을 함께 기록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철저히 보여준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답을 말하지 않는다. 참여한 다섯 명의 토론자들 또한 답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앞에 보여지는 이 진실을 뛰어 넘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토론하자고 이야기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 보자고 이야기한다. 침묵을 깨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침묵 상태만을 고수할 수 없다. 말해야 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이 책의 기획 또한 많은 시민들의 침묵 상태를 깨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이유이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침묵이 아니고 비판을 위한 토론이 아닌 개선을 위한 토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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