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타자기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희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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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불행은 유전된다고 말한다. 부모의 불행은 자녀에게 깊숙이 각인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불행을 보며 부모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그 악순환을 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 근원은 굉장히 견고하다. 특히 몸이 자유롭지 않은 장애인의 경우에는 더욱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소설 《기린의 타자기》는 그 불행의 쇠사슬에 묶여 있던 모녀 서영과 지하가 스스로 일어서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 소설이다.

《기린의 타자기》는 황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로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한 서영의 불행한 결혼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대형교회 목사이자 시의원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까지 낳았지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서영의 모습이 비춰진다. 친정집은 시댁에서 도와주는 돈때문에 서영의 불행을 못 본 척하며 서영은 누구 하나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체념하며 살아간다. 입주 도우미 외에는 말도 걸지 않는 서영은 시부모님의 명에 의해 지하 와인창고에 감금된다.

서영에게는 두 자녀가 있다. 청각언어장애인 딸 지하와 아들 지민. 시댁 식구들은 장애인인 지하를 부끄러워하며 오직 손자인 지민만 가족 대우를 해 준다. 자포자기한 서영과 달리 지하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엄마를 원망하며 집을 떠난다. 소식 없는 지하를 찾는 이 없이 서영은 와인창고에서 묵묵히 하루를 버텨나간다. 오늘도 CCTV 감시를 받으며 감금되어 있는 서영에게 입주도우미가 몰래 자신 앞으로 온 책 <조용한 세상>을 건네준다.

소설은 엄마 서영이 시부모님 몰래 딸 지하가 쓴 <조용한 세상>의 내용과 미국과 한국을 순간이동으로 오가며 생활하는 지하와 동행자 이든 그리고 반려견 울프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그려진다. 소설이라지만 지하의 순간이동능력은 어색하게 다가온다. 순간이동이 너무 현실성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책 후반부에 그려지는 순간이동의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지하의 능력이 바로 불행한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였음을 알게 해 준다.

딸이 쓴 소설을 읽으며 서영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체념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주는 딸의 소설 <조용한 세상>의 내용과 지하의 홀로서기가 그려지며 음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지만 서영이 용기를 내면서부터 또 하나의 희망을 안겨준다. 서영이 결혼과 함께 포기해야만 했던 타자기를 다시 보게 되며 이들이 결코 현실에 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해준다.

단지 아쉬웠던 건 지하는 자신의 소설에 엄마 서영을 산후우울증으로 묘사한다. 물론 사실 그대로 쓸 수 없는 한계가 있었겠지만 엄마는 산후우울증과 전혀 결이 다른 폭력의 문제였음에도 산후우울증으로 설정해야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 서영의 상태를 좀 더 직접적으로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불행을 끊기란 힘들다. 그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자포자기하거나 회피함으로 로그아웃을 선택한다. 하지만 로그아웃한 상태에서 우리는 결코 끊을 수 없다. 우리의 현실에 로그인해 행동하고 풀어나가야 한다. 처음에 로그아웃을 선택했던 지하가 로그인을 하며 당당히 현실과 부딪혀갈 때 그들의 얽힌 불행의 실타래가 풀릴 수 있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지하처럼 엄마 서영 또한 현실에 로그인함으로 또 다른 희망을 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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