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팅 클럽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2
강영숙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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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 작가의 《라이팅 클럽》은 2010년 출간되었던 소설을 민음사에서 독자들에게 재발견되어야 할 소설을 엄선해 <오늘의 작가 총서>시리즈에 편입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소설이다. 재발견되어야 할 소설이라는 글만으로도 이 소설은 나의 관심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라이팅 클럽》은 계동에 사는 모녀의 이야기이자 글쓰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라곤 본 적 없는 딸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나'와 작가라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변변한 작품 하나 없는 무명작가이자 아이들 글쓰기 교실의 엄마 '김작가'가 이 소설의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엄마를 엄마가 아닌 김작가로 부르며 모성이라고는 없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는 이 모녀의 관계는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초반은 이 독특한 모녀 관계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시작된다. 글쓰기 교실을 열고 집안일에 관심 없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는 딸의 모습을 그리지만 저자는 '나'의 모습을 결코 불쌍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이 소설의 힘 중 하나는 저자가 이 모녀의 형편이 대학 진학을 시킬 수 없을만큼 궁핍하지만 불쌍한 정형화 된 모습이 아닌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대였다. 

내가 김 작가의 작고 큰, 그 숱한 사고 수습만도 몇 차례를 했는지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따지고 보면 김 작가는 평생토록 제멋대로 살았다. 

좋게 말하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하면 머리가 아주 나빠서 한 치 앞도 못 보고 사고부터 치는 천치였다.

모성이라는 것이 자연법칙이 아니라는 것,

아이를 낳고 젖을 물리는 순간 저절로 여성의 신체 안에 부여되는 선천적 기질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라이팅 클럽》에서는 글쓰기를 대단한 행위로 묘사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바로 '일상'이었다. 나에게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은 난로 위에 끓고 있는 주전자를 내려 놓는 일상적인 순간이었다.보리차가 너무 뜨거워 욕이 터져 나온 그 순간. 또는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김작가에게 화가 나 분노에 치미는 순간,쌀 살 돈이 없어 허기진 배고품의 순간 그러한 일상들 속에 화자인 '나;는 글을 써 내려간다.

소설을 써서 마을에 사는 유명 인사인 J작가에게 글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화자인 '나'의 배움을 통해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를 실생활에 보여준다. 일반적인 글쓰기 수업에서 전문가의 입장에서 가르치는 강사와 달리 저자는 아마추어 아니 견습생인 '나'의 입장에서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를 찬찬히 보여준다. 글의 소제목부터 '글쓰기 모드' - '설명하기와 묘사하기'- '너의 라이프 스토리를 말해 줄래' 등등 글쓰기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더불어 글쓰기의 힘을 보여준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백미다. J작가가 '나'에게 글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을 읽노라면 마치 이 《라이팅 클럽》의 강영숙 작가가 생각하는 글쓰기를 독자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소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제일 비슷하기 떄문이야.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 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라구.


작가의 사고 과정이 소설에 드러나려면 공부를 해야 해.

많이 읽어야 한다구.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모를 거야.

작가들이 진실한 문장 하나를 가지려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무엇보다 이 《라이팅 클럽》의 백미는 바로 글쓰기 공동체이다. 처음에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김작가'와 '나'라는 두 명의 공동체, 아이들 글쓰기 교실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교실로 변모하며 그 공동체 안에서 글쓰기란 바로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해준다.

J작가가 '나'에게 설명해주는 글쓰기의 이론 또한 좋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 글쓰기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시작하는 방법을 글쓰기 공동체를 향해 보여준다. 집과 시장 등 집안일만 하는 아줌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는 김작가의 말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지만 결국 아이들과 남편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그들의 해프닝과 그럼 아이들과 남편의 이야기라도 쓰라고 격려하는 김작가는 그들과 함께 웃고 느끼며 성장해간다. 김작가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존재였던 김작가가 이 아줌마들과 글쓰기를 하며 일상을 나누고 글을 씀으로 희열을 함께 하는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이 글쓰기 공동체가 화자 '나'가 미국에 가서도 글쓰기 공동체인 '라이팅 클럽'을 만들어 함께 나누는 과정은 함께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에 큰 위안이 되어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라이팅 클럽》은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글쓰기를 유혹하는 책이다. 

이 계동 모녀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나' 또한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매점에서 일하지만 커피 배달이 주업무라 매일 다리가 퉁퉁 붓고 매일 먹고 살기에 바쁘다. 미국에 가서도 사람들의 손톱을 꾸며주는 고된 일을 하지만 '나'는 꿋꿋히 써내려간다. 순간 순간의 감정을 붙잡고 기억하기 위해 순간 순간을 써내려간다. 그 글쓰기가 무의미한 일상을 소중한 순간으로, 의미를 재정립해 준다.


한번 써 봐.

인생이 얼마나 깊어지는데.


그건 그냥 그렇고 그런 글일 뿐이었다.

그러나 왠지 일거수일투족이 다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하지 않으면

중요한 걸 다 놓쳐 버릴 것 같았다.


이 모녀의 삶이 힘들었지만 불쌍해 보이지 않았던 건 그들에겐 글쓰기가 있어서가 아니였을까. 항상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책을 읽고 글로 표현할 줄 알았던 이 모녀에게 글쓰기는 위로였고 감정의 배출구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혼자 하는 글쓰기도 의미있지만 김작가가 주부들과 함께 글쓰기 공동체를 하고 나가 미국 교포들과 함께 글쓰기를 할 때 더욱 글쓰기는 빛이 났다. 글을 쓸 때 행복해지며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라이팅 클럽》은 독자들에게 글을 쓰고 싶어지게 한다. 어쩌면 이게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라이팅 클럽》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지금도 이 모녀들이 그들의 공간에서 여전히 투닥거리며 글을 쓰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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