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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ㅣ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평점 :

결혼생활 6년차에 들어섰다. 보통 결혼 전 불타오르는 사랑은 3년을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후는 사랑이 아닌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다고 말한다. 사랑하기에 결혼했는데 사랑이 아닌 정으로 버텨가는 게 부부라면 참 슬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슬프지만 사랑보다는 익숙함에 살아간다. 그 익숙함이 사랑이 아니라는 게 슬픔으로 다가오곤 한다. 앨리스 먼로의 작품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은 내게 그런 느낌이었다.
82년의 노령에 단편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거장 앨리스 먼로는 주로 여성의 삶에 집중한다. 작가의 전작들 <거지 소녀>, <행복한 그림자의 춤>, <착한 여자의 사랑>, <소녀와 여자들의 삶>등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총 9편의 단편 소설이 있는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또한 화자가 모두 여성들이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의 느낌은 앞에서 말했듯, 익숙함 속에 슬픔을 느끼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다. [물 위의 다리]에서 위중한 병에 걸린 지니, [위안]에서 남편 루이스를 떠나 보낸 니나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남편의 별난 성격에 익숙하다. 창조론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남편 루이스에 대한 반발이 없어 보이고 지니 또한 자신을 간병할 헬렌을 고용하며 간병 모드로 돌입하는 남편 닐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소설은 곳곳에 이 논쟁 속에 지쳐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위안]의 남편 루이스의 끝없는 논쟁이 아내 니나를 피곤했음을 알려주며 이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의사 에드와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 소설 속에 흥미로운 건 결혼하는 여성에 대한 인물의 시선이였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가고 싶은 곳엔 가봐야지.
어쨌거나 곧 결혼한 여자가 될 테니까."
그녀가 덧붙였다.
그녀의 말은 '이제 네가 성인이라는 걸 인정해야겠구나.'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고
'너도 곧 구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뜻인 것 같기도 했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가고 싶은 곳엔 가봐야지. 어쨌거나 곧 결혼한 여자가 될 테니까." 라는 친척 앨프리다의 말을 보면서 나는 엄마들이 결혼 하지 않은 딸들이 엄마를 도와주려고 할 때 자주 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결혼하면 다 하게 되니 지금이라도 쉬어라." 라는 엄마들의 말이 연상되며 서양이든, 동양이든 결혼이 여성에게는 구속의 의미로 다가옴이 인상깊었다.
집에 갈 때마다 부딪치는 어려움이 하나 있었다.
거기에서는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공감이 되었던 문장이였다. 나의 인생이 부모님에게 또는 다른 이웃들의 시선에 재해석되고 짜맞추어진다. 그리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나의 인생이 남의 시선에 의해 불쌍하게 되고 안쓰럽게 보여진다.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인생에 대한 어려움이 시대가 지나도 여전하구나 하는 한탄과 이 현실을 적시하는 작가의 표현력이 매우 놀라웠다.
이 소설은 불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부부이기에 언뜻 보기에 다른 상대방과 관게를 갖는 그들의 모습이 당혹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상대방에게 익숙해졌지만 익숙해졌기에 슬픔을 느끼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공감대를 만들어준다. 우리 부부의 경우만 해도 내가 남편의 면들을 잘 알고 있지만 끝내 적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면들이 내게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그래서 내게는 다른 상대방과 관계를 갖는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그 관계에서 갖는 슬픔과 피로감을 다른 상대방에게서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그 현실을 나는 비난할 수 없었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는 큰 사건이나 서사는 없다. 다만 평범한 일상 속에 상대방의 심리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이들의 관계에 생겨나는 감정, 상태등이 상황과 어울러져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만들어낸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 상대방에 의해 어떻게 변해져 가는지 작가는 세심하게 보여주며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하여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