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 - 탐욕스러운 금융에 맞선 한 키코 피해 기업인의 분투기
조붕구 지음 / 시공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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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DLF, DLS사태가 발생했다. 1억을 투자했지만 돌아오는 원금은 달랑 190만원 뿐인 이 막심한 손해에 수많은 가입자들이 억울함을 표출했고 이 사건은 현재까지 진행 중에 있다. 이 DLF 사태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12년 전 2008년 키코 사태를 떠 올렸고 DLF와 키코 사태가 놀라울만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이 사태의 원인은 은행의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금융 상품 판매로 인한 점이라는 사실이다.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는 잘 나가는 중견 수출업체인 코막 중공업의 조봉구 대표가 키코 사태로 한 순간에 빈털털이가 되어 금융 자본의 횡포에 맞서는 과정에서의 일을 담은 글이다. 키코는 Knock-In & Knock-out을 줄여 키코라고 불리운 이 상품은 사전에 정해놓은 환율 상하한선 안에서 외화를 미리 약속한 환율에 팔 수 있는 상품이다. 이 키코가 출시된 시기 환율이 떨어지고 있었고 은행은 그 점을 노려 수많은 수출기업에게 환율을 보장해 준다며 키코를 적극 권유했다. 저자 역시 은행 지점장이 직접 방문하여 가입 권유하였고 마침 은행 대출을 고려하고 있던 저자는 은행에 대한 신뢰로 상품을 가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환율이 예상을 넘어 급등하며 이 상하한선을 넘어 버리는 환율 급등 상황이 발생하자 은행에 시세보다 훨씬 싼 시세로 달러를 은행에 팔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며 저자의 회사를 포함한 수많은 중견기업들이 파산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저자 역시 해외 지점들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내보내고 자신의 자산을 매각하며 빚을 갚아나갔지만 매달 나날이 불어나는 이자만으로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금융감독원에 도움을 청하고 여의도 국회에 호소도 하며 법정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피해자들을 투기꾼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행태와 금융감독원의 무책임한 처사, 일심에서는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 대형 로펌인 김앤장의 막강한 로비에 힘입어 패소, 대법원까지 만장 일치제로 은행이 승소하게 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 속에서 저자를 비롯 수많은 피해자들은 교도소로 이송되거나 목숨을 끊는 피해자까지 있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인 은행은 이 사기로 수억대의 수익을 챙기며 축제를 벌이고 피해자인 기업들은 하루 아침에 일궈낸 모든 것들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펀드나 이러한 금융 상품이 원금 손실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하기에 일부 사람들은 키코에 가입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은행은 당신의 주머니를 노린다》에서는 은행이 이 상품을 가입하기 위해 지점장까지 나서며 기업인들에게 로비하며 이 사태의 첫 손실이 발생했을 때 대안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계좌 가입으로 손실을 만회할 걸 제안하는 은행의 횡포를 폭로한다. 복잡하게 설계된 이 상품에 대해 충분한 설명도 없이 환율 관리라는 명목으로 가입을 권유한 은행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횡포였음을 늦게서야 알게 된다.


파생 금융 상품은 채무를 포장한 상품이며

채무의 컨테이너, 채무의 창고, 채무의 히말라야 산이다.


모든 파생 금융 상품의 계약은 돈을 걸고 하는 도박이며

도박판에서는 이긴 사람과 진 사람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은행의 도덕성 확립 및 진정한 경제 민주화와 실패한 기업들에게 다시 재기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함을 저자는 깨닫고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와 "한국재도전연합회"를 결성해 자신과 같은 금융사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의 재기를 돕는다. 특별한 점은 이 협회들의 모임이 바로 키코사태로 인해 피해보았던 기업들이 함께 모여 또다른 피해 기업들을 도울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는 사실이다. 자신들과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해 주는 이 모임을 통해 저자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키코 사태까지 한국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중견 기업들이 키코 사태로 무너져가고 그 자리를 소수의 대기업이 먹어버리며 절름발이 경제 불균형 구조를 갖추게 된 한국 사회를 보며 저자는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아서는 절대 이러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때 한국 사회는 경제 민주화가 대선 공약을 차지했던 때가 있었지만 촛불 혁명으로 대통령이 바뀌었지만 경제 민주화라는 용어는 어느새 먼 과거 시대의 단어가 되고 말았다. 다시 요원해진 이 경제 민주화는 결코 한 정치인이 아닌 의식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과 참여가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할 때 비록 느리지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자신들의 한 걸음이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 즐겨 보았던 드라마인 <어셈블리>가 떠올랐다. 국민이 무너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법안을 강력하게 연설하던 주인공의 대사가 저자의 주장과 오버랩되며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문턱을 닫아버리는 한국의 모습 속에 실패한 인생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있어야 진정한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정답은 정의에 있다. 상투적이지만 결국 이 무너진 것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은 이 사회가 온전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은행이 이익에만 쫓긴 집단이 아닌 도덕성이 회복되고 정부 기관이 관리 감독을 충실히 이행할 때 이 사회가 약자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할 때 더 이상 제 2의 키코, DLF 사태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정의는 쉽게 오지 않는다. 저자의 투쟁 또한 역시 현재 진행중이며 DLF 사태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건 결국 연대이며 함께 행동할 때 가능하다. 함께 나아가고 행동할 때 은행의 탐욕스러운 행보와 권력과 연관된 그들의 카르텔에 맞설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물었다. 실익도 없는 일에 왜 그리 힘을 쏟냐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실패로 인해 추락하면서 우리 사회의 실체를 경험해보니

더는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외면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책이 정말 많은 사람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그들의 민낯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들의 민낯을 알아야 대응하고 방어할 수 있다.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할 수 있도록 저자는 호소한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을 읽는 독자가 그 호소에 함께 동참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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