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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낯설었다. 일제 시대 조선과 일본에서의 조선인들의 고난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와이로 건너가 사탕수수밭을 일구며 일하는 동포의 삶을, 그리고 사진만 보고 헐헐단신으로 건너와 이민자의 아내로 삶을 만들어가는 여인들의 삶이란. 들어서는 알고 있었지만 다소 낯선 그들의 삶, 18세 세 여자들의 이야기는 내게 낯설음으로 다가왔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어진말의 열여덟 소녀 버들에게 방물장수 부산 아지매가 사진 결혼을 권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와 오빠를 여의고 어머니를 도와 살림을 하는 버들은 부산 아지매가 포와 (지금의 하와이)에는 나무에 돈과 보화가 주렁주렁 달렸고 지주인 남편이 공부를 시켜준다 다며 버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딸이였기에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버들에게는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결혼을 결심한다.
버들의 오랜 소꿉 친구 홍주는 결혼 후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과부가 되어 친정 집에 두문불출하며 지낸다. 과부라는 주홍글씨 아래에서 딸이 조선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을 염려한 송화어머니는 홍주의 미래를 위해 버들의 사진결혼 이야기를 듣고 홍주의 사진결혼을 추진한다.
비록 신랑 이름과 사진 밖에 가지고 있지 않지만 두려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설레임과 희망으로 가득찬다. 하루 빨리 결혼을 하고 공부도 하고 친정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 오랜 친구 버들과 송화 그리고 함께 사진결혼 여행길에 오르게 된 무당 금화의 손녀 송화 서로 함께 있어 든든하기만 한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포와에 도착했지만 정작 그들을 맞은 건 처참한 현실이었다. 버들에게는 다른 신부들에 비해 젊은 신랑이었지만 무뚝뚝한 남편, 중풍병자인 시아버지, 지주는 커녕 백인 밑에서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을 하는 일꾼이었다.부산아지매의 거짓말을 원망할 겨를도 없이 버들은 포와의 삶에서 적응하기 바쁘다.
소설은 처음 남편 태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다 주기 바라며 순종적이던 버들이 남편이 떠나보낸 옛 여인 달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먼저 다가가야 함을 깨달으며 자신이 먼저 손을 내민다.
지는 가 볼랍니더.
딴 가시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볼랍니더.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요.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고마 퍼뜩 일나소. 지 손도 놓칠 겁니꺼?
함께 갈 것을 다짐하며 버들은 달라진다. 먼저 말을 걸고 농담을 하며 부부가 되어간다. 그 때부터 버들은 수줍은 소녀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성장해간다. 시아버지를 봉양하고 남편을 도와가며 든든한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간다.
전쟁 중, 어느 누구의 삶도 순탄치 않다. 삶은 살아가야 하지만 만만치 않은 삶이다 남편 태완이 독립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버들이 집안의 가장이 되고 송화와 홍주 함께 모이게 되며 힘든 시기에 서로 버팀목이 되어준다. 삶 구석구석 비주류 독립운동파인 남편으로 인해 외로움도 느끼고 끼니도 챙기기 힘들지만 이 세 여성은 삶을 꿋꿋이 버텨나간다.
만주로 떠난 남편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이 된 버들, 아들과 함께 조선으로 가자는 남편의 요청을 거절하고 포와에 홀로 남기로 결심한 홍주, 남편과 사별한 후 버들과 홍주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 중 어느 누구의 삶도 녹록치 않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자리에서 파도를 맞아가며 살아갈 수 있었다. 헐헐단신으로 포와에 왔지만 그들에게는 힘든 고비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 때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힘이 되어 줄 사람들이 자신들이라는 것을 아는 그들은 결코 손을 거둬들이는 일이 없었다.
소설 말미 세대가 바뀌고 버들의 딸 진주의 시선으로 상황이 급반전되며 펼쳐지는 비밀은 그 세명의 여성이 비록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 연대해 있는지를 보여주며 또 하나의 감동을 안겨준다.
처음에는, 박복하게만 보이던 이 세 여성들의 삶이지만 그 삶을 원망치 않고 몰아치는 파도를 온 몸으로 맞아가며 앞으로 나아감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날개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시간이 지난 후 나도 이들과 같은 고백을 하며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까?
그들의 고백은 당당하게 삶을 지켜낸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일 것이다.
비록 화려하지 않아도 함께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세 여성의 모습은 긴 메아리처럼 마음 속을 울리는 듯하다.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