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사과의 마음 - 테마소설 멜랑콜리 다산책방 테마소설
최민우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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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흔히 감기로 표현하곤 한다. 감기처럼 흔하지만 방치할 경우 큰 합병증으로 와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현남 오빠에게> <새벽의 방문자들> 등 테마소설이 페미니즘이였다면 이번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테마는 우울증이다.

우울증의 원인을 단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기질적으로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도 있고 여자의 경우 산후 우울증,육아 우울증등 출산이라는 큰 일을 치룬 후 동반되는 우울증도 있다. 가족 또는 지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로 겪게 되는 우울증 등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생기는 우울증도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급격한 변화와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증의 정도만이 다를 뿐 모두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

《보라색 사과의 마음》의 인물들 또한 동생의 사고 이후 표현되지 못한 슬픔으로 인해 안에 고여버린 우울증이 있고 극도의 우울증 속에 생을 마감한 지인 J, 아이가 실종된 후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버린 아내가 있으며 직장 내에서의 재해로 인한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우재등이 있다.

여섯 편의 단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증상으로 인한 외로움을 담담하게 써내려간다.

이 책의 표제작인 [보라색 사과의 마음]에서는 동생의 죽음 이후 뒷처리를 해 가고 부모님을 도와주지만 정작 자신은 감각을 잃어간다. 자신에게 놓여진 짐 앞에 긴 상실 앞에 홀로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던 은영, 그 은영에게 최근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는 아버지의 고백은 내게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사과를 보라와 회색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에게 사과의 색깔을 빨강과 초록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람의 색깔을 느껴보라고 말할 수 없듯 은영의 숨겨져 있는 감정과 고통, 그 깊은 우물은 유족인 부모조차도 이해하지 못했고 남자친구마저 진저리를 내며 떠나가게 했다.

[알폰시나와 바다]에서 포르투칼 여행 중 몸을 던져 사망한 한 사건을 보며 중증의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다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진 J를 떠올린다. 감정의 격동이 심한 나와 서서히 깊은 우울의 바다에 잠식해가는 J, 서로 힘든 시기에는 서로가 힘이 되어주었지만 나가 등단하고 조금씩 회복되어간 후 서서히 벌어지는 틈, 그 벌어지는 틈만크 J의 외로움도 우울증도 심해져만 간다. 보이는 질병이 아니기에, 눈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아니기에 더욱 더 외로운 우울증을 여섯 편의 소설들은 그려나간다. 그 우울증 속에 삶이 조금씩 파괴되어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그려진다.

외로운 병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있어주고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 아이를 잃은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나간 아내를 질책하지만 결국 아내를 잃지 않기 위해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경조, 외로운 해운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미듬, 재해로 잃은 동료를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우재 곁에 함께 하는 준모등.. 서로의 존재는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다. 우울증을 치료해 주지 못하지만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 만으로 하루 하루를 견뎌간다.

공감해 주는 한 사람이 견뎌내주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질책하며 힘을 내서 극복해야지 않느냐는 질책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J가 울 때 침묵으로 함께 해 주었던 나로 인해 J가 버틸 수 있었지만 이력서를 왜 쓰지 않느냐며 일어서라고 독촉하는 순간 그 외로움은 질식시킬 것처럼 서서히 조여온다. 마치 수영에 낯선 해운이 미듬의 수영 페이스에 못 이기고 끝내 돌아오지 못한 것처럼 그들은 사회의 페이스에서 더욱 늦춰져 간다.

김남숙 작가의 단편 <귀>에서 나가 예지에게 자꾸 교회에 가라고만 되풀이하는 이야기 속에, 학교 말고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그 이야기 속에 공감이 아닌 판단 속에 예지가 주인공 나를 떠나게 한다.

한 사람의 공감과 판단이 우울증의 무게를 힘들게 견디고 있는 한 사람을 이토록 달리 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정혜신 정신의학과 박사님의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공감해 주는 능력만 있다면 모든 사람이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 한 사람의 힘이 소설 곳곳에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단편 이현석 작가의 <눈빛이 없어>에서 우재의 곁을 지키는 준모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다. 잘 살아가지 못해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우재가 하루를 살아간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인한 우울증의 증세와 함께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다만 하루 하루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느라 제대로 증세를 자각하지도 못하는 은영처럼 그렇게 우울증의 바다에서 침식되어가고 있다. 그 때 우리에겐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 함께 해 주고 손을 내밀어줄 때 우리는 견뎌낼 힘을 얻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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