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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디 얀다르크 - 제5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염기원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7월
평점 :

제 5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인《구디 얀다르크》가 출간되었다.
"21세기형 노동소설"이라는 심사평을 받은 당선작 《구디 얀다르크》의 염기원 저자는 자신의 오랜 IT업계에 근무한 경력을 이 소설 한 권에 자세하게 이야기한다.
이 소설 중심인물인 서이안은 마흔의 IT업계 노동자이다. 미혼인 그녀에게는 변변찮은 집도 없고 IT업계에서 계약직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노조활동으로 인해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를 받는 일명 어른들이 말하는 불쌍한 인생이다. 남자친구도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만년 야구 2군 선수 오영일이 있지만 이안에게는 자신의 인생이나 영일의 인생 또한 불쌍한 처지일 뿐이다.
《구디 얀다르크》는 이 서이안이 자신의 현재 위치에 있기까지 이안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지만 IMF로 인한 경제위기로 은행원인 아버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졸지에 홀로 된 이 모녀에게 세상이 던져 준 건 "자살한 사람은 지옥 간다"라는 교회의 매몰찬 설교였다.
시간과 헌금을 바치며 봉사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던 교회는 슬픔에 빠진 이안과 어머니를 위로하기는 커녕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설교로 모녀를 상처주고 어머니는 교회에 발길을 끊는다.
아버지의 사망 후, 시작된 어머니의 알코올중독, 그 사이에 단절된 모녀간의 관계, 서로에게 쏟아 붓는 원망의 말들이 오가며 서로를 상처준다. 이안은 대학 생활 중 이상적인 남자 친구 강영민을 만나 연애에 빠지고 어머니는 다른 지인에 의해 사업을 시작한다. 서로의 삶에 열중하며 핑크빛 미래를 꿈꾸던 이안은 대학교 졸업식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다단계에 빠졌던 어머니가 삶을 포기한 후 홀로 남은 이안은 좁은 방으로 방을 이시하고 직장에서 이안이 버텨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이직과 회사 도산, 동업자와의 창업과 실패, 추락한 자신의 커리어 등 구디 (구로 디지털 단지)와 가디 (가산 디지털 단지)를 오가며 힘겹게 하루를 버텨내는 이안이 노조가 되고 팟캐스트 "직지심정" (직장인,직장인이었던 사람의 지랄 맞은 심정) 을 시작하며 "구디 잔다르크"의 애칭인 《구디 얀다르크》로 불리지만 결국 또 다른 압력에 밀려나는 이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불면증으로 밤샘이 가능했기에 IT업계에서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고 국문학과인 이안이 IT업계에서 인정받게 되며 주로 IT업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이안을 통해 그려내지만 작가가 그려내는 노동자의 모습은 IT업게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월급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야근은 기본으로 간주하며 사내정치에 의해 직장에서의 앞날이 좌우되는 조직의 생리, 갑과 을, 그리고 병, 정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외주 관계 등 수많은 직장인들이 겪는 고충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아낌없이 쏟아붓는다.

서로를 착취해야만 살아남는 사회, 다른 업종에 비해 도태되기 쉬운 IT업계에서 이안의 모습은 신조어인 "워킹푸어"를 떠올리게 한다. "일을 하며 생산을 하지만 일을 중단하면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계급"을 뜻하는 이 땅의 많은 소시민인 "워킹푸어"의 모습이다.
나는 걱정만 하다가 내가 원하고 좋아하던 것들을 미루고 포기하며 살아왔다.
남은 건 목에 진 주름과 카드론 대출금뿐이었다.
금수저, 은수저 등 각종 계급 신조어가 생겨나고 겨우 마지못해 살아가는 피곤에 절은 소시민들의 모습이 이안의 삶을 통해 펼쳐진다. 헬조선이라 불리우는 이 사회에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지지만 작가는 평생 2군 선수라는 별명 "이태균"을 통해 마지막 희망의 홈런을 독자에게 안겨준다.
서이안의 삶을 통해 그려지는 노동자들의 모습, 부속품으로 취급받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과연 이런 인생에도 희망은 있을까라고 자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말 것을 말해준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명언을 다시 깨닫게 해 준다.
그래. 그거면 된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보자.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