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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평점 :

이별이 쉬운 사람은 없다. 사랑했던 연인의 이별이든, 가족의 이별이든, 또는 여행지에서 만났던 짧은 순간의 이별이든 이별은 슬픔으로 다가오고 사람들의 마음에 긴 그림자를 남긴다. 이별 후, 긴 시간이 지나도 이별할 당시의 그 마음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아침의 피아노』의 저자인 고 김진영 선생님의 두 번째 산문집 《이별의 푸가》는 이별을 하며 겪는 우리의 일상과 철학자들의 이별에 관한 글을 접목하며 이별에 대하여 쓴 에세이다.
이별 뒤의 침묵은 둘이다. 나의 침묵과 그 사람의 침묵. 나의 침묵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포화 상태다.
하지만 나의 침묵이 열리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의 침묵도 열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단 하나의 허락된 말하기를 배운다. 그건 모놀로그다. 잘 지내나요, 아무 일 없나요, 아프지는 않나요, 내가 보고 싶지는 않나요...
모놀로그... 이별을 하면 모놀로그가 많아진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이 아닌 가까운 지인들과의 이별에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에도 모놀로그 말하기는 동일하다. 그 사람의 사후,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한 두 마디씩 혼자말을 내뱉곤 한다.
"그 곳에서는 편안한가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했나요?" "인생이란 왜 이리 힘들까요?"..
돌아오지 않는 답변인 줄 알면서도 그 사람을 향한 나의 모놀로그는 계속된다. 그리고 그 돌아오는 침묵 속에 나는 그 사람의 답변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 침묵을 껴안는다.
이별은 모놀로그의 시작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당신이 멀리 있으면, 당신의 모습은 점점 더 커져서 온 우주를 다 채운다.
대가가 되어 내 몸을 가득 채운다. "
길고도 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사랑의 순간이 있다. 그건 만남이 아니라 만남 뒤의 순간, 이별의 순간이다.
부재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순간이 갇혀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 나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부재는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거이 아니다. 단지 내게 없음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 부재 속에 그 사람에 대한 존재를 더 절실히 깨닫는다. 공기의 존재처럼 당연했기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그 존재감을 이별 후에야 그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는 주위 곳곳에 자신을 드러낸다.
함께 했던 추억 곳곳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부재 속에서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다. 더 멀리 있을수록 더 가득 채운다. 이별, 잊혀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방식의 사랑이 아닐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건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당신을 미워하는 내가 미워서라는 걸. 그 미움을 멈출 수가 없는 내가 두려웠다는 걸.
그 따뜻함과 다정함에 기대어서만 당신에 대한 사랑을 지킬 수 있었다는 걸 ……
사랑으로 생긴 상처는 새로운 사랑만이 정답이라고들 말한다. 그래야 옛 사람을 잊을 수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새로운 사랑이 단지 상처의 치유만이 아닌 과거의 옛 연인까지 포옹하며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이별 뒤의 생기는 분노, 미움, 원망 등.. 그 모든 것을 멈추기 위하고 과거를 포옹할 수 있다는 것. 새로운 사랑 앞에 옛 사랑은 아련한 추억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고이 접힐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 나이의 나이테가 많아질수록 이별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잊혀지기 보다는 추억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그 사람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시간. 짧은 사랑의 순간보다 긴 부재의 시간동안 상대를 느끼는 것. 나는 그렇게 이별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프면서도 멈출 수 없는 짝사랑의 시작...
이 비극을 우리는 끈질기게 살아간다. 사랑이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 사랑을 멈추지도 보내지도 못한다.
그렇게 사랑은 두 번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