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 《너의 이야기》을 읽기 시작했을 때, 소설 속 배경이 너무 생소하고 낯설어 쉽게 읽히지 않았다. 돈만 있으면 허구의 기억을 사고 팔 수 있는 사회. 의뢰인의 과거 이력서를 보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과거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허구의 기억, "의억".

분명 실재하지 않았던 과거 "의억"을 생각하며 행복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원하면 자신의 과거 한 부분을 잊게 해 주는 사회에서 주인공 아마가이 치이로는 차가운 부모님 밑에서 자라 친구 한 명 없는 무(無)의과거를 가진 주인공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외로웠고 외로움을 숙명처럼 지니고 있는 치이로는 미련 둘 것 없이 모든 것을 잊고 싶어 잊게 해 주는 약 "레테"를 구입한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다르게 업체의 실수로 "의억"을 만들어 주는 약 "그린그린"이 잘못 오게 되고 그 사실을 모르고 약을 복용한 치이로에게는 일곱 살 때부터 열다섯까지 자신의 곁에 있어 주었던 실재하지 않은소꿉친구 "나쓰나키 도카"와의 추억이 생긴다.

외로웠던 치이로의 과거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건 의억이야라며 계속 되샘김질 하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허구의 기억이 치이로를 위로하고 외로웠던 그를 위로해준다.

모든 기억을 지웠어야 될 약 "레테"가 있음에도 치이로는 그 '레테'를 쉽사리 복용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미 그 허구의 기억이 선사해 준 위로마저 없으면 다시 공허해 질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현대인들의 결핍을 주목해간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바쁜 생활 속에서 그냥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공허감을 돈 주고 바꿀 수 있는 씁쓸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허구임을 앎에도 돈을 주고 허구의 기억을 사고 위로받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도록 단편적인 기억을 지워주는 사회. 그 허구의 기억은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위로받지 못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결국 닥쳐올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너의 이야기》는 그 존재하지 않는 허구 속 추억의 소녀 나쓰나키 도카가 실제 치이로의 일상에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반전된다. 절대 있을 리 없는 가공의 인물이 어떻게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조금씩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치이로와 나쓰나키 도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서로의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해준다. 허구가 아닌 서로의 간곡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

왜 저자가 책의 제목을 《너의 이야기》로 정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돈에 의해 주고 받는 주문식 허구의 기억이 아닌 서로의 마음과 바램을 담아 치이로와 나쓰나키 도카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였다.

그 기억들이 서로에게 마지막까지 힘을 주고 따뜻하게 해 준다.

정말 오묘한 소설이다. SF 소설같은 배경에 미스터리 소설 같기도 한 전개 그리고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 같기도 한 모든 장르의 이야기가 이 한 편의 소설에 담겨있어 마지막에는 깊은 여운을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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