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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 김현의 詩 처방전 ㅣ 시요일
김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12월
평점 :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줄의 글이 우리의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글이 또는 담벼락에 씌여진 낙서가 심금을 울릴 수 있다.
여기 한 편의 시로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인이 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는 예전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그램에 사연을 올리고 그 사연을 읽어주는 이문세의 목소리와 함께 사연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으며 환호했던 그 때처럼 시인 김현은 시요일에 사연을 올리는 독자들의 사연에 시를 들려주며 詩처방전과 함께 독자들의 사연에 귀기울여준 위로의 산문집이다.
독자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아이돌에 환호하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연, 동성애로 사회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사랑에 괴로워하는 사연, 오랜 취업 준비로 자신감 저하와 함께 혼란스러워하는 취준생..
어느 하나 쉬운 인생이 없는 다양한 사연에 시인은 잘 될 거라는 응원보다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두드려준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그네> -문동만 124p
다 잘 될 거라는 흔한 응원이 아닌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도 성취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그네를 양보하겠다는 시인의 글은 결코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며 우리 모두 넘어지며 성취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해준다.
시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지시를 하지 않는다. 아이돌 강다니엘을 좋아하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독자의 사연에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걸 자제하라며 미래를 생각하라는 고리타분한 훈계보다 그 순간을 즐기며 아이돌과 함께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저자의 위로를 듣다보면 어느 인생 하나 잘못 살아가는 인생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나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아이돌이 있다는 건
어른의 세계에서 얻게 되는 가장 소박하고 역사적인 행복 중 하나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아이돌을 응원하는 일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요.
<내 아이돌 미래에게 76p, 77p>
시인은 독자들의 사연마다 자신의 현재를 힘껏 사랑하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끝까지 잘 보내드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연에도, 어느 사연 하나 억지로 상황을 이겨내라고 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서 의미를 찾아주고 부여해 준다.
힘든 육아에 지친 엄마들에겐 무엇이든 해내고 있는 힘찬 도전자라는 의미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에게는 누구보다 잘 들어주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에게는 미래를 위해 꿈꾸는 위대한 사랑이라는 의미를 주며
모든 사연 하나 하나에 이름을 지어준다.
시인이 처방해 주는 詩 처방전을 읽다 보면 정해신 박사의 저서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생각난다.
모든 인생은 옳다.
흔들리는 인생도 옳고
용기 없어 힘들어하는 인생도 옳고
동성애든 모든 사랑은 옳다.
어느 인생 잘못 된 인생은 없으며 아름답다.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꿈꾸면 꿈꾸는대로.
나는 엄마이기에 시인으로부터 무엇이든 해내는 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나의 영원한 아이돌 신승훈과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꿈꾸며
말을 잘 하기 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받았다.
김현 시인의 詩 처방전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사랑이다.
당신 마음의 온도가 1도라도 올라가길 바란다는 시인의 바람처럼 시인은 당신은 옳다라고 말해주며 따스하게 바라봐준다.
나 자신을 옳다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더한 위로와 응원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