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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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의 <청귤>은 6편의 단편소설이 담긴 저자의 첫 소설집이다. 
이 6편의 단편에 담긴 주인공들은 모두 소외된 자들, 상처입은 자들이다. 첫 번째 단편 [로레나]는  필리핀에서 건너 와 삼촌의 구타와 주변의 멸시를 견디며 살아가는 로레나의 이야기다. 
표제작이기도 한 [청귤]은 풍요로운 상황에서도 외로운 미영과 작가라는 이름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지영의 이야기이며 각각의 단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외로움을 품고 있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는 동안 그 외로움들이 나에게 전이된다.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아랑곳없이 페디큐어를 받기 위해 긴 줄을 늘어선 친척들, 페디큐어를 해야 하는 당사자의 피곤함과 통증은 그들에겐 알 바 아니였다. 해가 저물어가는 저녁 작은 방에서 쓸쓸히 눈물 짓는 로레나의 모습에 담긴 외로움. 그게 과연 로레나만의 외로움일까? 
갑과 을의 관계가 횡행해지고 우리가 무차별적으로 행하는 횡포가 당연시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모두 혼자 쓸쓸히 눈물 짓고 있는 우리들의 외로움은 아닐까 생각한다. 

두 번째 단편 [이야기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상대방이 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는 요청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상대방의 요청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뇌수막염에 걸리고 사시 진단을 받은 이야기,첫 번째 소설 [로레나]의 주인공 로레나의 이야기 등 남들에게 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 인해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천천히 드러낸다. 

자신의 삶이 청귤같다고 말하며 화려함 속에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미영과 성폭력의 상처 속에서도 짝궁의 잦은 구타와 성폭력에 대한 고통으로 인한 울부짖음 속에서도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아픔이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은 내가 과연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나 자문해보게 된다. 

엄마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내가 아프다고 할 때 모두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웃어넘겼어.그게 정말 한이 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엄마의 하소연이 메아리친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라는 엄마의 말씀이 주인공의 이야기에 자꾸 오버랩된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이 궁핍한 일상에 위안이 되어 줄 수 있었을텐데 우리는 들어주는 것에 너무 인색해 왔음을 작품 속의 인물등을 통해 말해주는 것 같다. 

저자의 작품을 처음 접했지만 각 인물들의 아픔과 상처가 여운이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깊게 남는 작품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게 만든다. 

 

당신이 바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라는 것을.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까닭이 바로 당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어지면 이야기도 소멸한다는 사실을요.


말하자면 이 귤 같은 거야. 
사람들은 여름에도 귤이 난다면서 신기해하고 그것을 먹어보려고 하지.
그런데 이걸 막상 나무에서 따서 손으로 가져와 보면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아. 
이건 그냥 쓰고 시고, 딱딱하기만 해. 

진짜로 먹을 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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