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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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2심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되고 SNS에서는 온통 법원에 대한 비난의 글로 온라인상이 떠들썩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 중 하나가 "법원이야말로 AI 판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로봇이 하는 게 더 정확한 판결을 하겠다."라는 등의 글들이 많은 공감과 호응을 받았다.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재판관의 억지 뀌어맞추기식 판결은 법원에 대한 더욱 깊은 불신감을 주었고 사법계야말로 중립적인 위치를 지킬 수 있는 AI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은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 법원의 신뢰다가 현저히 낮다고 한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법원이라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팽팽하며 선출직이 아닌 선임직으로 영구히 집권하는 그들만의 단단한 카르텔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 박형남씨도 현재 재직 중인 판사로서 이러한 현실을 공감하며 깊이 고민하는 판사 중 한 명이다. 이 책은 박형남 판사가 역사상의 중요한 몇 가지 재판들을 가려 그 판결들의 역사적 배경과 판결의 오류 그리고 현 시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총 14건의 재판 사례가 연대별로 기록되어 있다. 아테네 소크라테스 재판부터 1996년 미란다 재판까지 뽑은 재판의 사건들의 배경을 하나 하나 자세하게 설명되어 역사적 배경이 전무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여러 재판 사례들이 인상깊지만 그 중 세계사에서 어렴풋이 들어 알고만 있던 "세일럼의 마녀재판"의 경우 저자는 한 때 한국을 들썩이게 하였던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사건을 언급한다. 명백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증거를 부인하며 맹목적으로 가수 타블로의 학력을 인정하지 않으며 인신공격을 한 사례는 그와 그의 가정에 깊고 큰 상처를 주었다. 결국 그의 무죄가 밝혀졌지만 그가 받은 상처는 아마 깊은 후유증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무죄가 입증되었음에도 사과하는 "타진요" 사람들은 없었다. 

  이와 비슷하게 1696년 미국 세일럼 마을에서 일어난 마녀 재판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원고가 마녀라고 고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잡아가고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낸 이 사건으로 인해 억울한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사실이 아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마녀로 몰릴까봐 이 마녀사냥에 동조하거나 침묵하고  수 많은 사람이 뜬소문과 악의적인 날조로 처형되며 한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은 결코 현 사회와 관련이 없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앞서 언급한 "타진요" 사건이나 SNS에서 떠도는 소문만으로 함부로 잘못을 덮어씌우는 사건들이 많은 사태를 되짚어보며 나 또한 쉽게 누구나 마녀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의 판결 중에서 판사로서의 고뇌가 가득 묻어난 재판을 꼽는다면 나는 [브라운 재판]을 꼽고 싶다. 미국이 수정헌법 14조에서  '법률의 평등한 보호' 제정을 통해 시민의 권리를 보장했지만 미국 사회에는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다. 백인과 흑인이 사용하는 기차 객차가 다르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달랐으며 여러 시설 사용면에서도 차별을 받아야 했다. 
집 앞의 가까운 학교가 있음에도 먼 흑인 학교를 보내야 했던 부모들의 소송으로 시작된 이 판결은 기존에 백인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내리던 보수적인 법원들의 판례를 뒤집고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게 된다. 교육 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며 분리정책이 교육 당사자들에게 열등감을 소유하게 될 가능성을 줄 우려가 다분하기에 이러한 분리 정책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그의 판결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법원은 공립학교 인종통합 판결이 지체없이 집행되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서 미국에 분리정책을 없애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저자는 이 사건이 분명 역사적인 사건임에도 후폭풍 또한 거세었음을 말한다. 학교 폐쇄 등 백인 군중들의 저항 등이 만만치 않았음을 언급하며 진정한 사회 변화는 법원의 공정성과 함께 시민들의 사회 참여와 민주정치의 구현이 함께 어울러질 때 발전될 수 있음을 꼬집는다. 

날마다 변해가는 이 상황 속에서 법원과 입법계들 또한 법률이 헌법에 부합되는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지 사회과학적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글은 현 사회에서 법원과 국민간의 깊은 괴리감, 책상행정과 현실행정의 괴리감, 현실에 맞지 않는 입법 등 여러 사태에 직면한 우리에게 깊은 공감을 준다. 

현직 판사라면 보통 법이야기만을 읽을 줄 알았는데 판사가 세계사에 대한 해박함에 매우 놀랐다. 
역사 상의 재판들이 현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는 저자의 시도가 매우 좋았고 법조계가 나아가야 될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저자가 느껴져서 참 좋았다. 
[미스 함무라비]를 쓴 문유식 판사는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과 드라마로 우리에게 법원을 보여주었다면  박형남 판사는 세계사와 법 이야기가 결합한 《재판으로 본 세계사 》를 통해 우리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판사들이 이렇게 글  재주까지 좋아도 되는 것일까!! 

법원과 국민들간의 신뢰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저자와 같이 현 사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법에 대해 알려주려는 법조인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서양사 뿐만 아니라 동양사에 대한 재판 이야기도 읽고 싶다. 
세계사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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