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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상품화대기


 

 나는 역사를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혁명'에 대한 역사나 '독재'에 대한 역사에 관심이 많다. 어쩌면 이 책에서 말하는 '맹신자들'의 대중운동이 자주 출현하는 역사적 사건들에 해당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10월 추천에 넣지는 않았지만 사실 흥미롭게 보고 있던 책이었다. 혁명이나 독재의 역사적 흐름에 대해서 공부한 적은 있지만 그 원리에 대해서는 좋은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책에 별점 4개를 줬다. 내용 자체의 설득력에 대해서는 4.5에 가깝지만, 세상에 비친 대중운동의 특징을 전부 보여주고 있는지, 균형있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니 4개를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졌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설득력'있다는 점, 균형있는 시각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여러 대중운동이 공통점이 많다는 가정은 모든 운동이 똑같이 이롭다거나 똑같이 해롭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일절 시비를 가름하지 않으며 일절 호오를 밝히지 않는다. 다만 설명하고자 할 뿐이며...'(p14. 인용자 강조)

 보통 대중운동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좌파'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저자의 경우 대중운동이 성향을 막론하고 극좌에서 극우까지 아우른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예시도 한 쪽 성향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사건으로부터 논거를 제시한다. 특정 대중운동에 대한 판단 또한 유보함으로써 읽는 독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고, 대중운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운동의 특징을 고찰하겠다는 요지가 돋보인 것 같다. 

 사실 나는 처음에 대중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맹신자들'(번역의 뉘앙스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라고 칭하는 것에서 약간 마음이 불편했었고 끝까지 책을 잘 읽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지만, 꽤나 설득력있게 전개되는 이 책의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감탄했던 부분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에 고찰하며 저자는 '빈민(가난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보통 '빈민은 대중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라는 결론에 그치는 데 비해, 저자는 빈민의 유형을 하나하나 나눠가면서 어떤 빈민은 보수성을 지니고 어떤 빈민은 급격한 변화를 지향하는지 고찰하는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반향을 자극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경험이다.'(p.52) 

'공동체적 양식이 붕괴되고 부패한 곳에서는 대중운동이 파고들어가 수확을 거둘 수 있다.'(p.60) 

 이처럼 이 책은 꽤나 설득력있고 합리적으로 보이려는 맥락을 견지한다. 사실 상당히 그럴듯한 논리다. 허나 아이러니한 것은 이 책에서 그렇게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쓴 합리성 때문에 이 책의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일단 책의 형식상에 대한 아쉬움이다. 약간 주제넘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정제되지 않은 문체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어쩌면 번역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읽는 도중 종종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는 문장이 있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전체적으로는 풍부한 예시를 들며 쉽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큰 흠은 아니다. 번호를 125개로 나눈 것도 그렇다. 굳이 그렇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소제목을 더 자세히 다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한다. 어떤 항은 3줄, 어떤 항은 열몇 페이지라니... 내용상의 체계성과 합리성을 형식적으로도 견지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지 의문이 드는 내용도 있었다.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보이려고 '쓰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에서 처음부터 견지하고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좌절한 사람들은 급진적 변화를 선호한다(p.21)' 

 이는 마치 이 사회에서 가장 안 좋은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시도하려고 하며, (그렇기에 대중운동은 약간 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물론, '좌절'의 의미를 '이 사회의 부당함을 느끼는 것' 정도로 확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또 모르지만, 이 저자가 말하고 있는 '좌절한 자들'의 정의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쉽게 말해, 대중운동의 참여자의 범주를 정하고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그 과정 자체에 무언의 뉘앙스가 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그 과정에서 삭제되는 것도 많고.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내 자신이 대중운동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사람인데도 나는 저자가 말한 어느 유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좌절한 이들만 대중운동을 한다고 보는 관점은 좀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소위 '데모'를 깔보고 멸시했었고 지금도 그런 까닭 중에서 실제로 이런 말들을 한다. 열심히 노력하지는 않고 자기가 상황이 안 좋으니까 괜히 운동한다는 논지인데, 이 책은 (절대로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런 논지에 충분히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의 변두리가 아니라 중간에 서 있더라도, 만약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면 충분히 대중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동기가 항상 '자기부정을 향한 갈망'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물론 이러한 아쉬움은 일반화와 법칙화를 중시하는 사회과학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불편함'을 조금 더 강화시킨 것이 이 저자가 든 예시에서 언뜻 투영되는 뉘앙스 때문이었다. 저자는 p.71에서 강한 공동체와 대중운동 참여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며 유대인을 이야기한다. 한참 잘 읽고 있는데 순간 이런 말이 눈에 띄었다. 

'유대인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에 시오니즘이 출현하여 공동체 안에 그들을 감싸 안으며 소외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게 된 것은 신의 섭리나 다름없는 듯하다. 유대인에게 이스라엘은 고향과 가족, 회당과 민족, 국가와 혁명 정당,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된, 실로 귀중한 안식처이다.'(p.71) 

'일본의 눈부신 근대화는...(페이지를 못찾겠네요)'

 순간 갸우뚱하며 이 책의 저자가 유대인인가를 알아봤을 정도다. 나름 합리적으로 보이려 애썼다는 책에서 이런 문구를 보게 된 건 작고도 큰 오점으로 생각되었다. 만약 정말로 좌우 편향되지 않아 보이는 책을 쓰려고 했다면, 예시를 드는 것에도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나름 마지막 파트에서 대중운동의 긍정성을 약간 다루려고 한 점은 어쨌거나 중요하지만, 이러한 앞의 파트에서 이미 편견이 생겨버렸는지 약간 꼬아서 읽게 된 면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일반화(한계도 있었지만)를 통해 대중운동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 책이라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앞으로 대중운동을 접하게 될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이 책에서 본 것들을 이것저것 적용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도를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통해서 이 책에서 맞다고 생각한 것, 빠졌다고 생각한 것 등에 대해 더 심도 있는 생각이 가능할 것 같다. 그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뜻깊게 읽은 듯 싶다. 물론 저 사람들이 맹신자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해서 보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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