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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몽골방랑 -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김홍희 지음 / 예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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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800여 년 전, 세계는 작지만 강인한 민족에 의해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말을 자신의 몸과 같이 다룰 줄 알았고 광활한 초원을 떠돌던 유목민 특유의 강인함으로 세계사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제국을 건설했다. 화무십일홍일까. 유목민의 정체성을 던지고 영농민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정착을 해서 그랬을까. 내부분열이 원인이 되었을까. 제국은 200년도 채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록 후신이 남아서 여전히 힘을 자랑했지만 위대한 대칸은 더 이상 출현하지 않았다.

13세기~14세기 몽골제국이 세계를  경영하던 무렵의 역사는 매우 흥미진진하다. 3대 몽케 칸 이후로 일족은 분열했고 끝내 마음으로 합심하지 못한 채 몰락했다. 이에 대해 나에게는 많은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몽케 칸이 불의의 죽음을 당하지 않고 제대로 치세를 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차가타이의 칸 불패의 티무르가 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원정을 떠났을 때 병사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 전에 2대 대칸 오고타이의 죽음 후 형제들이 쿠릴타이에 신경쓰지 않고 계속 유럽 정벌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족이 분열하지 않고 제국의 역사가 300년 이상 지속되었다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몽골의 사람들은 그들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위대한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아니면 모든 것을 잊고 현실에 수긍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초원의 늑대는 살아있을까? 몽골은 과연 어떤 곳일까?

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적 상관관계를 지닌 몽골은 꼭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가지 못하고 늘 아쉬움만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 소원하던 몽골로의 여행을 책으로나마 대신할 기회가 최근 자주 생기고 있어 위안이 된다. 이번에 예담에서 출간된 <김홍희의 몽골방랑>도 그런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책이다.

사진가 김홍희는 스스로를 그저 사진가로만 한정짓기를 거부하고 작가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수필로 분류된다. 지금 그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이것도 시인으로 등단하기를 꿈꾸는 그의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2003년 몽골에 다녀온 후 쓴 600페이지의 원고는 모두 찢어버리고 2006년 다시 몽골을 다녀와서 <김홍희의 몽골방랑>을 출간했다.

<김홍희의 몽골방랑>은 단순한 사진 책이 아닌 여행 책이다. 아니 일반적인 여행 책이 아니라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하는 인문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낸 여행서나 몽골관광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도 아니다. 작가가 몽골을 여행하며 깨달은 점과 몽골 그리고 사람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필집이다. 생생한 사진이 실려 있다는 점이 여느 수필집과 차이를 보인다 하겠다.

기나긴 암흑의 통로를 빠져나온 대가로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가 웬만큼 해결되었고 이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살 수 있는 위치에 살고 있다. 기술의 진보도 이루어져 아날로그시대의 필름카메라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고 사진이 전문가의 소유물이던 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과 같이 사진의 일상화가 이루어지기 전 여행은 글로 대부분 기록되었고 사진은 가끔 볼 수 있는 첨부자료 정도였다. 이제는 사진이 당연하다는 듯 글의 옆자리를 꿰어 찬지 오래다. 사진이 없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고 어쩔 땐 주객이 전도되어 글보다는 사진을 우선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도 동영상이라는 차세대 주자의 등장으로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이 시점에 와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은 무엇일까? 아마 모든 사진가들이 궁구하는 근원적인 물음일 것이다. 문명의 이기로 태어나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한 사진은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왔다. 그런 사진일진데 새로운 문명의 이기의 등장에 쓸쓸히 사라져야 하는 운명의 그저 그런 기술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인간 김홍희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김홍희는 부산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198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비주얼 아트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하며 전공을 바꾸었다. 1학년 때 신주쿠 니콘살롱에서 2학년 때는 올림푸스홀에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낸 수필집 <방랑>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실려 있다. ‘강물에 사람이 떠내려가고 있다. 너는 사람을 구할 능력이 있다. 이 때 사람을 구하겠느냐 사진을 찍겠느냐.’ 라는 스승 마쓰자키의 물음에 김홍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장 그 순간에 제가 사람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도처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면 그럴 때마다 제가 사람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 번에 많은 사람을 구하는 방법, 즉 근원을 차단하는 방법이 있고 사진이 한 방편이라면 그 때는 사진을 찍는 거죠.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입장이 확고해야만 분명한 선택이 가능합니다.’. 김홍희의 사진관을 알 수 있게 하는 일화다. 그에게 피사체는 단순한 사물이나 사진을 찍히는 대상이 아니다. 사유를 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다. 그 존재는 그대로 진리이며 사실과 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기준점이다. 그는 사진을 통해 진리와 진실에 보다 가깝게 다가가려고 한다.

진리란 무엇인가? 사람을 보다 사람답게 살게 하고 죽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여 세상과 격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진리는 어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가까운 곳, 바로 우리 일상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이란 흘러가는 시간의 조각을 떼어내어 영원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이라고 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그래서 모두 소중한 작품이 된다.  우리의 삶은 수많은 작품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정체로 그대로 진리이며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인 것이다. 사진은 그런 삶을 담아 내는 것이다. 사진은 기억이고 메시지이다. 삶이고 문자와 같은 의사표현의 수단이다. 한 장의 사진으로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있으며 하나의 메시지만 담을 수도 있다. 한 인간의 삶, 한 국가의 역사를 담아낼 수도 있다. 진리와 진실을 보여줄 수도 있으며 숨기고 거짓을 보여줄 수도 있다. 아픔과 슬픔을 담아낼 수도 있고 감동을 담아낼 수도 있다. 사진은 그렇게 사람을 위해 태어났고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사진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이번 책에서도 김홍희가 사진에 대한 의미를 고민하고 사유한 흔적이 곳곳에 뭍어난다. 


게르는 몽골인이 유목민의 정체성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대는 크게 변했고 몽골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식사도 잠도 말 위에서 해결했던 선조와는 달리 지금의 몽골사람들은 자동차에 더 익숙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유목민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고 변하지 않는 국가도 없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전통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을까. 



매사냥꾼과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소년을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이 든다. 사진을 보는 순간 예전 TV에서 매를 키우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사냥매를 키우고 보유하는 것은 이제 잊혀진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영상이었다. 아직도 저런 전통을 이어가는 부족이 있었다. 손자는 할아버지가 매를 어깨에 올리고 평원을 바라보다 매를 보내 사냥을 하는 모습에 몹시도 부러운 눈치를 던졌다. 그리고 자신도 꼭 할아버지처럼 되겠다는 꿈을 피력해 나를 감동하게 했다. 문명과 떨어진 생활을 하는 그들 조손을 보며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던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냐고 말이다. 문명과 접촉하지 못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 하다고 해서 불행할까. 그렇다면 매년 세계행복지수를 조사해 발표하는데 그 상위권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문명국이어야할 것인데 결과는 그렇지 못하다. 경제적, 산업적으로 낙후된 아프리카의 국가나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국민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훨씬 높다. 이것은 물질적 문화적 풍요가 행복으로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결과가 아닐까. 가진 자는 가진 만큼의 고민을 떠 안고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소년의 해맑은 표정 너머에 웅장한 초원을 달리던 용사의 모습과 기상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소년이 그런 것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미래의 어느 날 빼어난 초원의 기수가 탄생할 것만 같다. 




 

 

 

 

 

 

 

 

아직은 순수하고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살아가는 몽골사람을 사진으로 대하면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이룬 한국은 행복한가. 나는 행복한가. 저 사진 속처럼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따뜻한 침대를 벗어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초원의 게르에서 잠을 자면서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을 떠나서 기름이 둥둥 뜬 국물과 잘 씹히지도 않는 양고기를 먹으며 행복해할 수 있을까.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길 위에 그려진 바퀴 자국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길 위에 세워진 이정표는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 이정표가 내 인생의 목표와 종착점을 가리켜줄 수 있을까. 인생에 있어서 그와 같은 이정표는 없을까.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내 삶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것이 어디 없을까.

산행을 하다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끊어지고 길이 사라지면 당황한다. 그럴 때 자신을 믿지 못하면 지도에 의지해도 길을 찾기가 힘들고 무작정 헤매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당황하지 않고 신념을 가지고 자신을 믿고 길을 찾다보면 제대로 된 길을 발견하거나 이정표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  내 삶의 이정표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김홍희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몽골은 아무것도 없는 곳이며 그래서 몽골로 간다고 말했다. 카메라도 사람과 같아서 어떤 것을 보는 순간은 뜬 눈이지만 메모리가 되는 시간은 눈을 깜박이는 탄지의 순간이라고 한다. 그러니 실제로 촬영되는 이미지란 사진가가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카메라의 숙명이자, 사진가의 운명이라고 한다. 사진가의 사진을 본 사람들이 그 장면을 사진가가 본 것으로 인정을 하지만 사진가는 실제 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허위의 기초 위에 사진을 세상에 발표한다. 발표는 곧 사진가가 거기 있었다는 증언이지만 실제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또 다른 사실의 증거이기도 하다. 김홍희는 진솔히 자신의 생각을 이와 같이 밝혔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고 술회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 책을 본 사람들은 그가 거기 있었다고 인정할 것이다. 이렇게 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는다.

설사 그가 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할 지라도 왜 그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지 이유와 목적까지 잊었을까. 손의 떨림이나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장면의 구도나 사람의 모습이 조금 달라진다고 한들 무슨 큰 상관이 있을까. 나는 그것을 통해 몽골을 보고 사람을 보고자 하는 것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그의 사진 속에서 오히려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졌다. 그리고 사유를 통해 내가 느낀 것과는 달리 그가 담아내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생겼다. 아마도 사진에는 그가 본 사람과 삶에 대한 진리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진리와 진실을 찾아 몽골로 다시 떠나고자 한다. <김홍희의 몽골방랑>은 그런 나에게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할 것이다. 나와 함께 몽골로 떠나 사람과 인생 그리고 행복에 대해 함께 고민할 사람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덧붙임 : 왜 사진을 찍느냐는 물음에 김홍희는 ‘세상의 정화에 도움이 되기 위해 사진을 찍습니다. 사람,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죠.’라고 대답했다.   
 

<사진 출처 :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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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살인 - Private ey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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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 경성.

서양식으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는지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있었다.

오늘날 흥신소에서나 할 법한 그런 일을 해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남다른 면이 있었으니....

 

영화는 의생 광수(류덕환)이 실험을 위해 주워 온 시체가 내무대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홍진호(황정민)을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다. 탐정 수사극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관객에게 긴장을 주고 해소

를 통해 짜릿함을 안겨 주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게다가 한국 영화로써 이런 장르에 도전한 경

우가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관심도가 높았다.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괜찮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제목이 너무 정직했다. 보통 이와 같은

종류의 영화에서는 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제목을 통해 범인에 대한 윤곽이 대략

잡혀버렸기에 영화 중반부 이후 서커스단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 알아버렸다. 그 때부터 긴

장감이 해소되기 시작했고 나머지 하나만 알면 궁금증은 모두 해소될 상태였다. 바로 살인 동기

다. 이 점은 마지막에 가서야 해결된다.

 

생각보다 일찍 밝혀진 범인으로 인해 긴장감이 덜어졌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배경도 배우도 괜

찮았다. 신문을 통해 접선신호를 낸다는 추리세계의 고전적인 방법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게다

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과학적 수사방법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 이를 두고 신구가 잘 조화

되었다고 해야할지 뭐라고 해야할지 모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신선하다고 해야겠지.

감독이 처음 도전하는 장르여서 그런지 (내가 판단하기는 좀 그렇지만) 연출적인 면에서 치밀함

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고 위안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이 분야가 잘 발전

된 헐리우드에 비해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니까. 시도를 한 것 자체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림자살인>을 시작으로 한국 영화계도 더 다양한 장르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마지막

에 황제가 등장하여 헤이그로 가 줄 것을 의뢰한 것은 단순 마무리용인가 아니면 2탄의 예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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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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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괜찮았습니다. '박보영'은 <초능력 커플> 이후로 두 번째로 보게 되었는 데 역시 아직은 신인이어서 그런지 연기 스타일이 비슷해서 오히려 친숙하더군요. 저는 그녀보다 오히려 손자 역의 '왕석현'의 능글맞은 연기가 더 신선했습니다. 특히 그 '썩소'는 영화 후 그를 뜨게 만든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더군요.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정말 놀랐습니다. 차태현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영화 <과속스캔들>의 주제는 역시 '가족애'입니다. 한국도 대가족 시대에서 핵가족 시대로 넘어오면서 급격히 가족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데 그 사회적 진통이 만만찮습니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이 결합하면서 가족간 범죄도 증가일변도여서 걱정되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가족참상에 대한 기사가 실려도 사람들은 더이상 놀라지 않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힘든 2009년 신년 벽두에 이와같이 따뜻한 가족영화가 상영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고맙게 생각합니다. 만약 2007년이나 2008년이었다면 이 영화는 이렇게 흥행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2009년도였기에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숨겨둔, 간절히 원하는, 그것을 이 영화가 꺼내 주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호응을 한 것이 아닐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라디오스타>를 떠 올렸습니다. 주인공이 라디오 DJ를 맡고 있다는 것과 떠나간 소중한 사람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다시 찾는다는 것 등 닮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스타>에서는 크게 물결 친 감동이 <과속스>에서는 약하더군요. 이것은 한정된 시간이라는 제약을 가진 영화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두 영화가 가진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아마 둘 다 보신 분이라면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더 거론하는 것은 저도 재미가 없거든요. ^^
 
어려운 시기에 힘을 주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
<과속스캔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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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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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가우스’다. 가우스 법칙, 소거법, 공식, 함수 등등 나열하자면 무척이나 많을 그의 이름은 수학과 다름 아니다.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수많은 수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해 이 독일의 천재수학자에게 후세는 19세기 최고의 수학자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건강하지는 못했고 그 점은 성인이 되어서도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니 돌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생각을 하나라도 더 하겠다는 사람이 바로 가우스다. 
  이렇게 집 안에 들어앉아 세계의 법칙을 연구한 그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체 역학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1801년 소행성 케레스(Ceres)가 발견되었고 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했다. 그로인해 1807년에 괴팅겐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용되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가우스는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은 그것마저도 유쾌하게 포장을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가우스에 대한 일화를 거론하자면 끝이 없다.

  훔볼트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훔볼트하면 형인 빌헬름 폰 훔볼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독일의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무상 공교육 이념의 아버지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이 설립되었을 정도이다. 
   반면 동생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와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인 5년에 걸친 남아메리카 대륙 탐험조사는 그 누구도 감히 해낼 생각을 못한 그런 것이었다. 신대륙에 대한 그의 조사와 발견은 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로 발표되었으며 또한 말년에 집필하기 시작한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집대성한 5권의 대작 ‘코스모스(Cosmos)’는 비록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여러 언어로 번역돼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고봉이었던 안데스 산맥의 침보라소 측정에 도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그 높이(6367m)를 쟀다. 당시 그는 전문 산악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과학자였을 뿐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유럽은 환호했고 이 기록은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8848m)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30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단지 탈 독일적인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개성 있는 문체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만약 그런 것뿐이었다면 이 소설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우스와 훔볼트, 이 두 인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시간을 준 점이 소설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지적탐구는 사유와 실험 어느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균일하게 추구해야함을 역설한 것이 아닐까. 훔볼트가 왜 그토록 죽음을 무릅쓰고 탐사를 했을까. 왜 몸으로까지 독과 전기에 대한 현상을 실험했을까. 세상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방식의 전환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가우스의 말을 빌자면 지금의 우리가 오랫동안 연구해서 밝혀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100년 후 미래의 인류는 우리가 의문시하고 어렵게 연구해 밝혀낸 모든 것을 당연시할 것이다. 그동안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면 앞으로는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깊이 사유하면서 생각의 폭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와 함께 삶도 그만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훔볼트는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지리학은 여러 현상의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인식하고, 사고활동과 관찰과의 결합을 통해 현상에 내재하는 일관성을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지리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를 재다>를 읽고 훔볼트와 가우스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된 후 사물과 사물이, 현상과 현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리고 보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진실인지를 사유하게 되었다.

  ‘독일의 엄숙주의’와 결별을 선언한 다니엘 켈만의 유쾌한 소설 <세계를 재다>는 그동안 딱딱한 독일문학에 질려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줄 것이라 기대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문의 간접화법을 맛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번역자가 작품을 옮기면서 가독성을 위해 직접화법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원문은 과연 어떤 맛일까?

 초상 : 남아메리카 탐험에서 돌아온 후의 훔볼트.

  뿐만 아니라 그가 발견한 강, 산, 해류, 지역 등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져 후대에까지 전해지고 있고 ‘종의 기원’으로 과학자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찰스 다윈은 훔볼트의 ‘신변기(Personal narrative)'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잊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869년 9월 14일에는 여러 나라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미합중국 제퍼슨 대통령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던 그는 미국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100주년 기념행사도 뉴욕에서 가장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당시 그에 대한 평가는 ‘과학적 여행가 중 최고’라는 찬사에 함축되어있다. 
  거의 모든 자연과학 분야에서 활약했던 그에 대한 연구가 몇 년 전부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다니엘 켈만의 소설 <세계를 재다>를 읽은 이후 무척 반갑게 들린다.

  훔볼트와 가우스. 앉아서 세계와 우주를 연구한 가우스와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다는 실천적 과학자 훔볼트.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극점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연구적 성향이 판이하게 다르다. 동시대를 살았던 이 천재적이고도 괴상한 두 과학자가 한자리에 만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작가가 탄생시킨 소설이 바로 <세계를 재다>이다.
  소설은 주로 두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등 그 표현이 매우 재미있으며 신선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는 독일의 소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딱딱한 문학인데 다니엘 켈만의 소설은 이와 많이 다르다. 발상부터가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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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으로 이 땅은 폐허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미래가 없는 나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30년 후 세계는 스스로 보는 눈이 없었음을 자인하고 새로운 평가를 내렸으니 ‘기적의 나라’였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 등에서 들여온 차관과 기술이전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제조기업-주로 중화학 부문-을 육성하여 철강·조선·자동차·가전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섰고 자본을 투입해 산업을 더 키워나갔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을까. 1997년 세계의 경제가 흔들리는 조짐이 보이더니 이내 ‘IMF 사태’라는 폭풍이 되어 한국을 들이쳤다.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한 한국은 폭격을 맞은 듯 크게 주저앉았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 결과였다. 거품을 걷어 낸 결과는 참혹했다. 기업과 개인의 파산이 이어졌고 곧이어 사정의 칼날이 들이치면서 이 사회는 실업자를 양산해 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던 한국은 심기일전하고 다시 전투에 돌입한 결과 위기를 극복해 냈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여 크게 성공했다. 제2의 성공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바로 인터넷과 맞물려서 말이다. 그 때는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이른바 닷컴 기업의 붕괴 후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은 많지 않다. 이제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의 경제가 위태로운 이 때 우리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로엘 브라이언과 클라우디아 조이스는 <사고집약형 기업>에서 직원 당 수익률을 대폭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탕사원-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며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80%에 해당하는 사원-이 있다면 쫓아내거나 재교육 등을 통해 사원들을 관리해야 한다. 직원들의 머리에 든 무궁무진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끌어내어 한곳에 모아 효과적으로 교류시키고 산업성장시대의 유산인 계층적 조직구조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판을 다시 짜 해당 관리자들에게 인사권과 지식활용에 관한 재량권을 주어 유연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성공한 사고집약형 기업에서는 직원이 기업의 부를 만들어내는 무형자산의 근본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직원들의 지식을 한곳으로 모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조직으로 새롭게 설계하라고 조언하며 그 방법을 알려준다. 더 이상 자본증대에 의한 기업성장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2007년 시가총액 기준 상위 30개 기업(미국)을 분석한 결과, 1995년에서 2005년 사이 직원당 수익은 평균 3만 5,000달러에서 8만 3,000달러로 증가했고 자본수익률은 17%에서 23%로 증가했으며 이 기업들의 시가총액 중앙값은 340억 달러에서 1680억 달러로 약 5배나 증대됐다. 저자는 이러한 시가총액의 상승 동력은 자본이 아니라 바로 직원당 수익률이었다고 설명한다. 직원 1명의 수익이 5배 증가하면서 시가총액도 5배 늘어나게 됐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이 취약한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에 특히 의존하기 때문에 지금까지처럼 제조상품만 해외로 판매하는 방식으로는 저성장 시대로 돌입하고 있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앞으로도 국내 사정상 수출에 의존해야한다는 명제는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외국인 직접투자가 예전만큼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 생각을 전환하면 길이 보인다. 지식경영에 그 길이 있다. 직원당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면 기존과는 달리 인적자원관리를 새롭게 해야 하며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는 각각 책임자를 믿고 보다 큰 재량권을 줘야 한다. 인재를 외부에서 들여오기보다 교육을 통해서 이미 있는 인재를 성장시키는 방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리더는 이 모든 것을 총괄하고 관리할 책임자를 곁에 두고 스스로는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한다. 이것이야말로 미래 기업이 지향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기업들이 존재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시작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게 체질은 변화시키고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켜 시가총액을 더욱 키운 자랑스러운 기업들이 있다. 게다가 닷컴 거품이 꺼지며 벤처기업이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 와중에도 무형자산-지식상품-을 무기로 오히려 더 성장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 기업도 있다. 벤치마킹할 대상은 충분히 있으니 붕괴된 기업에게서 교훈-도덕적 결함 등-을 배워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면 된다.

  이미 전통적인 제조기업인 자동차·항공·조선 등은 지식집약도 상승으로 수익성이 높아졌고, 가전산업은 서비스와의 결합으로 기존 수익뿐만 아니라 신규수익 창출까지 가능해졌다. 앞으로는 지식과 서비스의 조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켜 보다 큰 상승을 유도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 경제를 살리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정책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매우 중요한 이 시기에 잘못된 정책으로 기업이 크게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빌 게이츠 MS 전 회장은 향후 10 년간의 변화는 지난 50년 동안의 변화보다 더 클 것이라고 언급했고, 인텔의 앤디 글로브 회장은 향후 5년 이내 인터넷 등 정보기술을 비즈니스에 접목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대로 된 기업가라면 무엇이 옳은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남은 것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들여 실천하는 것뿐이다. 

  <사고집약형 기업>에서 강조한 방법을 통해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수출 감소 추세를 역전시켜 향후 이 나라가 지식 수출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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