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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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무사히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가우스’다. 가우스 법칙, 소거법, 공식, 함수 등등 나열하자면 무척이나 많을 그의 이름은 수학과 다름 아니다. 요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수많은 수학적 업적을 높이 평가해 이 독일의 천재수학자에게 후세는 19세기 최고의 수학자라는 영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건강하지는 못했고 그 점은 성인이 되어서도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아니 돌아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곳에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생각을 하나라도 더 하겠다는 사람이 바로 가우스다. 
  이렇게 집 안에 들어앉아 세계의 법칙을 연구한 그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천체 역학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1801년 소행성 케레스(Ceres)가 발견되었고 이 별의 궤도결정이 문제가 되었을 때 가우스가 이를 계산해 내어 해결했다. 그로인해 1807년에 괴팅겐대학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용되었다. 하지만 가장으로서의 가우스는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소설은 그것마저도 유쾌하게 포장을 했지만 말이다.
  이렇듯 가우스에 대한 일화를 거론하자면 끝이 없다.

  훔볼트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보통 훔볼트하면 형인 빌헬름 폰 훔볼트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독일의 위대한 언어학자이자 무상 공교육 이념의 아버지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대학이 설립되었을 정도이다. 
   반면 동생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와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의 가장 빛나는 업적인 5년에 걸친 남아메리카 대륙 탐험조사는 그 누구도 감히 해낼 생각을 못한 그런 것이었다. 신대륙에 대한 그의 조사와 발견은 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로 발표되었으며 또한 말년에 집필하기 시작한 그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집대성한 5권의 대작 ‘코스모스(Cosmos)’는 비록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여러 언어로 번역돼 날개 돋친 듯 팔렸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고봉이었던 안데스 산맥의 침보라소 측정에 도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그 높이(6367m)를 쟀다. 당시 그는 전문 산악인이 아닌 그저 평범한(?) 과학자였을 뿐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유럽은 환호했고 이 기록은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8848m)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30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단지 탈 독일적인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개성 있는 문체뿐인가? 그렇지는 않다. 만약 그런 것뿐이었다면 이 소설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우스와 훔볼트, 이 두 인물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시간을 준 점이 소설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지적탐구는 사유와 실험 어느 한 가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균일하게 추구해야함을 역설한 것이 아닐까. 훔볼트가 왜 그토록 죽음을 무릅쓰고 탐사를 했을까. 왜 몸으로까지 독과 전기에 대한 현상을 실험했을까. 세상은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방식의 전환을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가우스의 말을 빌자면 지금의 우리가 오랫동안 연구해서 밝혀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100년 후 미래의 인류는 우리가 의문시하고 어렵게 연구해 밝혀낸 모든 것을 당연시할 것이다. 그동안 주어진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면 앞으로는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깊이 사유하면서 생각의 폭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와 함께 삶도 그만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훔볼트는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지리학은 여러 현상의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인식하고, 사고활동과 관찰과의 결합을 통해 현상에 내재하는 일관성을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단지 지리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를 재다>를 읽고 훔볼트와 가우스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된 후 사물과 사물이, 현상과 현상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리고 보이는 모든 것을 그대로 믿어도 되는 진실인지를 사유하게 되었다.

  ‘독일의 엄숙주의’와 결별을 선언한 다니엘 켈만의 유쾌한 소설 <세계를 재다>는 그동안 딱딱한 독일문학에 질려있던 독자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줄 것이라 기대된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바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문의 간접화법을 맛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번역자가 작품을 옮기면서 가독성을 위해 직접화법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원문은 과연 어떤 맛일까?

 초상 : 남아메리카 탐험에서 돌아온 후의 훔볼트.

  뿐만 아니라 그가 발견한 강, 산, 해류, 지역 등에는 그의 이름이 붙여져 후대에까지 전해지고 있고 ‘종의 기원’으로 과학자들에게 추앙을 받고 있는 찰스 다윈은 훔볼트의 ‘신변기(Personal narrative)'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잊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던 1869년 9월 14일에는 여러 나라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미합중국 제퍼슨 대통령과 깊은 교분을 맺고 있던 그는 미국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100주년 기념행사도 뉴욕에서 가장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당시 그에 대한 평가는 ‘과학적 여행가 중 최고’라는 찬사에 함축되어있다. 
  거의 모든 자연과학 분야에서 활약했던 그에 대한 연구가 몇 년 전부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다니엘 켈만의 소설 <세계를 재다>를 읽은 이후 무척 반갑게 들린다.

  훔볼트와 가우스. 앉아서 세계와 우주를 연구한 가우스와 모든 것은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몸으로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다는 실천적 과학자 훔볼트.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극점에서 살아가는 사람처럼 연구적 성향이 판이하게 다르다. 동시대를 살았던 이 천재적이고도 괴상한 두 과학자가 한자리에 만난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가? 이런 점에 착안하여 작가가 탄생시킨 소설이 바로 <세계를 재다>이다.
  소설은 주로 두 인물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때때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 등 그 표현이 매우 재미있으며 신선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는 독일의 소설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딱딱한 문학인데 다니엘 켈만의 소설은 이와 많이 다르다. 발상부터가 재미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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