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 지난해 이 작품들을 읽었을 때 경험이 떠오른다. 소름의 연속이었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마치 실재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빅브라더가 우리를 감시하듯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지배 속에서 동물들이 이를 인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걸 수 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일상에 무뎌져 생각이 없는 채로 살아가면 안 된다. 당연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권력에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며 내 머리에 스쳤던 생각들이다. 그의 책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으로 기억된다.
<조지 오웰, 시대의 작가로 사는 것>은 그의 글쓰기 인생을 다룬 책이다. 그가 글을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을 갖고 썼는지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그의 책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글이다. 즉, 현실을 반영한 글이며 그의 경험이 녹아있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경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또한 그 글로 인해 자신의 안위가 위협이 되더라도 그는 글을 쓴다. 그에게 글은 삶이며 그 자신이다.
그의 글을 보며 많은 반성과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글인가? 그와 비교했을 때 나의 글 솜씨는 아주 부족하다. 하지만 그처럼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싶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담긴 글. 보기에 번지르르한 글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 담긴 글. 이 글을 보면 나를 떠올릴 수 있는 글. 현실은 외면하지 않는 글.
나는 세상을 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또 그 앎을 나누는 것 역시 좋아한다. 지식을 갖춘 교육자가 되고 싶다. 이 길을 걷는다면 나에게 글은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아마 현실에 타협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유혹이 나에게 닥칠 수 있다. 현실을 외면하는 글을 쓰라는 회유가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

에릭 블레어로 하여금 시작하게 만든 것은 무엇보다도 양심의 가책이었다. 그는 마침내 제국주의를 단지 갱단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게 됐고, 그런 제국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버마에서 마주쳤던 얼굴들, 즉 피고인석에 앉아 있는 수감자들, 사형수들의 방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내가 거칠게 다뤘던 아랫사람들, 내가 모욕을 줬던 늙은 농부들 내가 화날 때 두들겨 팼던 하인들과 일꾼들의 얼굴들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가 거기에서 맡았던 역할은 압박 시스템의 톱니바퀴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는 명료하게 자각한다.


나는 맹세한다. 거짓된 글, 외면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글 안에서만큼은 나에게 솔직해지겠다고. 앞으로 많은 글이 나로부터 탄생할 것이다. 그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가 볼 때 러시아와 스탈린에 대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 것은 지적인 정직함의 문제였다. 당신이 몇 년 내내 소련 체제나 그 밖의 다른 어떤 체제에 대해 비굴한 아첨꾼으로 혹은 정치 선전꾼으로 행동하고 나서,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지적 정직성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마시오.
한 번 창녀는 영원한 창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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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혼자여서 즐거운 밤의 밑줄사용법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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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어온 책 속 밑줄 중 단 하나라도 당신의 상처에 가닿아 연고처럼 스민다면 그것으로 저는 정말 기쁠 거예요.

참 따뜻한 글이다. 처음 보는 작가이지만 그의 다른 글들이 궁금해졌다.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치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듯 나는 물 흐르듯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에세이를 보면 이야기를 들어주기가 힘들어질 때가 있다. 공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차이일까? 에세이들은 장르의 특성상 생각이 강하게 드러날 수 있다. 특히 짧게 모여진 글이 모인 수필집에선 그들의 생각이 보강될 틈도 없이 이야기가 넘어간다. 그들의 생각을 읽을 때면 뭔가 불편하고 마치 근거 없이 생각을 전달만 하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백영옥 작가는 글에서 독자들에게 생각을 강요를 하지 않는다. “내 삶, 내 생각은 이런데, 너희들은 어때?”라고 따뜻하게 물어만 볼 뿐이다. 독자는 질문에 멈출 수도 있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또한 이 글들은 모두 곳곳에 그가 만난 질문과 생각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 역시 수많은 글 안에서 질문과 생각을 만났을 테지만 남아있는 것은 책의 지극히 일부분이다. .
🏷그것을 바라면서 사람에게 마음이 없었더라면 유리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단되고 싶으면서도 완전하게는 차단되기 싫은 마음. 그것이 유리를 존재하게 한 것이다. 그러고 싶으면서도 그러기 싫은 마음의 미묘함을 유리처럼 간단하게 전달하고 있는 물체는 없는 것 같다.(김소연, 마음 사전)

그가 소중하게 모은 글들을 또 나는 일부만 취했다. 아마 다른 독자들은 나와 다른 글을 취했을 것이다. 이것이 이 글의 매력 아닐까? 작가의 생각과 세상의 글들이 모여 또 다른 글이 탄생했다. 글이 글을 낳는 동안 나는 글 안에서 잠시 멈춰 선다.그의 글과 나의 생각이 또 만난다.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날카로운 말이 아닌 따뜻한 말이다.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에서 잠깐씩 읽는 글들은 나의 생각을 깨워주고 나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수필의 매력을 알아가는 것일까? .
🏷다른 사람을 바꾸려는 불확실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바꾸는 편이 더 현명합니다. 나와 나의 관계를 규정하는 일이 가장 시급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말이죠

#아르떼 #Arte #백영옥 #bookcollector #책수집가 #수집가 #에세이 #그냥흘러넘쳐도좋아요 #책 #독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책문구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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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괜찮은 이유
로만 무라도프 지음, 정영은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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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시간의 산책을 한 시간의 글쓰기를 위한 준비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 시간의 글쓰기를 그 산책의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길을 만난다.
모든 길을 탐험할 만큼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길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상상 속 방랑은 다시 실제의 삶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신적 여행은 실제 여행만큼이나 우리를 멀리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특히 생각이 발걸음을 따르고 발걸음이 생각을 따르는, 물리적 여행과 정신적 여행을 병행한다면 말이다.
이번 학기 나와의 약속이 있다. 독일에서 느꼈던 여유를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다. 일상은 바쁘고 무언가로 가득 차있지만, 그것들을 잠시 잊고 짧게나마 나에게 여유를 선물해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나에게 여유를 선물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아침의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사람으로 붐비는 우리 학교지만 아침엔 사람이 없다. 고요하다. 또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그 시간에 조용히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면 분명 큰 힘과 선물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침엔 이상하게 책이 잘 읽힌다. 작가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람 때문에 시원하지만, 햇살 때문에 너무 춥지는 않은 그런 날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닌가? 그 시간의 모든 것을 내 것 마냥 즐기는 기분이다.

이 책은 선물의 시간 동안 나를 기분 좋게 해준 책이다. 나의 좋았던 추억거리를 회상하게 해주고, 내 미래를 그려보게도 하고 나의 현재를 즐기도록 해줬다. 많은 작가의 에세이를 만났지만 이 책처럼 나를 기분 좋게 해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다양한 얼굴을 만나는 것 참 설레는 일이다. 게다가 그 얼굴들은 항상 같지 않다. 어제와 오늘도 다르고. 지금과 지금도 다르다. 나의 이야기에 다른 손님을 초대하는 행위는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나의 이야기만을 전해줄 때보다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또한 나의 일방적인 말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담도 덜하다.

나 역시 많은 얼굴들과 만나고 싶다. 또 내가 마주한 그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만날 때 탄생될 새로운 이야기 역시 들어보고 싶다. 나의 글이 희망의 어미로 가득하다는 것은 내가 가능성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우리의 삶은 대단치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삶의 이야기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가치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수평선 너머로 흩어지고 갈라지기 전까지, 우리의 손아귀를 영원히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중 하나를 따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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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꿈꾸는 너에게 - 네가 있어야 할 곳을 끝내는 찾아내기를
박가영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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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을 생각하는 너에게 누군가는 이민을 권유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뜯어말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네 이야기와 같을 순 없다는 걸 명심해줘.
네 이민은 오롯이 너만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네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본 후 네게 맞는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야.


붕어빵처럼 같은 틀에서 똑같은 모양으로 찍혀 나오는 게 아니잖아.
나처럼 조금 비스듬한 애가 나올 수도 있는 거 아니야?
다른 아이들처럼 생각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구는, 조금 이상한 모양의 붕어빵도 있을 수 있잖아.
호주 워홀을 떠난 후 호주에서 식당 두 개를 운영하고 있는 앨리스의 이야기다. 한국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부정하고 이민을 생각한다. ‘내가 다른 나라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며 현재의 삶을 부정하거나 다른 나라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앨리스는 이를 상상으로 끝내지 않고 직접 실천한 사람이다. 처음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갈 때 그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무척 끌렸다. 당당해 보이고, 어디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근성이었다. 그가 한국을 비판할 때에도,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콕 집어내 참 공감도 됐다.

하지만 글을 꾸준히 읽어갈수록 뭔지 모르는 불편함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호주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녀가왠지 모르게 포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한국에서라면 불평하고 투정했을 그런 경험들을 그는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예민한 건지 그가 정말 그렇게 쓴 건지는 모르겠다.

대부분의 것은 양면성이 있다. 좋은 게 있다면 나쁜 것도 분명 존재한다. 한국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호주 역시 좋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그가 말하는 양면성을 염두에 둔 글 같지는 않아 보였다. 뭔지 모르게 그녀의 태도는 한국에겐 무한히 적대적이고 호주에겐 무한히 관용적이다. 내가 한국을 좋아하고, 호주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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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이상하다고 한다 - 홍승희 에세이
홍승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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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동물인 인간. 인간은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서로 도와가며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인간은 가족에서 시작해 더 큰 사회를 만들어간다. 학교, 국가, 지구촌. 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회에 속한 개인이 된다개인들은 무수히 많은 결들을 지니고 있다. 세상은 그 무수히 많은 결들의 집합이다. 무수히 많은 결들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사회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결을 지닌다. 그 결들은 단순히 개인들의 합이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는 스스로를 유지하는 걸까? 유지되는 걸까? 이렇게 무수히 많은 결들은 지닌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 걸까? 서로를 생각하는 이타심?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기심? 어떤 동력이 됐든, 사회는 무수히 많은 개인들을 품은 채 유지되고, 자신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회계약을 통해 사회를 만들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질서를 유지하는 법, 일반적인 상식, 사회적 합의. 다 사회계약의 언어들이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회에 속하므로, 이 계약에 도장을 찍지 않았어도 계약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계약의 조건이 과연 이상적일까? 이 계약 내용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일까? 절대 아니다. 그 계약 조건은 보편성을 띠려 노력하지만,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 없고 누군가에겐 자신을 조이는 굴레가 될 수 있다. 또한 어떤 부분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어느 부분은 절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사회 계약을 부정해야 할까? 아니면 부당하더라도 사회 유지를 위해 따라야 할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는 것 같다.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더라도 타협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항상 타협해선 안 된다. 결국은 사회는 개인의 집합이므로 개인들이 변하면 사회도 변하기 마련이다.

요즘 페미니즘 운동이 한창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도 이뤄져 있지 않은데, 저렇게 과격하게 나오면 누가 좋아하겠어? 사회적 합의는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한 움직임, 노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사회적 합의의 주체는 모호하다. 어디까지 사회인가? 모든 사람이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없는데, 얼마나 합의가 돼야 사회적 합의가 됐다고 할 수 있을까?

개인은 사회를 유지하며 변화시키는 양가적 존재이다. 사회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지만 사회의 계약, 말을 반드시 따르기만 하는 존재는 더욱이 아니다. 이 둘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으며, 서로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서로의 원동력이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이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할 필요도 없다. 이 둘 말고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애매함 속에서 나와 우리는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아파도 돼 아픈 건 이상한 게 아니야. 아프지 않은 척, 망가지지 않은 척이라는 이 세상이 이상한 거야. 너는 정직한 만큼 자꾸 죽고 싶은 거야. 이상한 건 네가 아니야. 너를 의심하는 세상을 믿지 마.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폭력에 힘을 보태지 않으려고 고기를 안 먹는다.
서툴러도 채식주의자이고 싶다. 조금이라도 내 존재가 덜 가해할 수 있도록.

그저 이 순간을 붙잡고 싶다.

나의 위치를 염려해주는 사람들이 나이와 함께 늘어간다. 여러 기성 멘토들의 강연이나 책이 주는 해방도 일시적이다. 과정에 열정을 부으라고, 그러면 성공을 따라온다고 말한다. 그들의 배후에는 결국 ‘무엇이 되어줘’ ‘너의 재능을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어줘’가 숨겨져 있다. 젊음은 이력을 만드는 시간일까. 성과 없는 젊음은 젊음이 아니까.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순간순간의 텅 빈 느낌으로만 살아가고 싶은 열망은 바보 같은 걸까. 모두가 각자의 위치를 경쟁하고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지 않고서도 영감을 공유하는 오늘은 불가능할까.

아픈 와중에도 침묵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아플까.

비가 그친 후 파슈파티강은 쓰레기와 잿더미로 썩은 물 냄새가 나고 혼탁해졌다. 강물은 더럽지 않다. 물결은 햇빛에 반짝인다. 하늘을 비추고 밑으로 흘러간다. 혼탁해도 물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물처럼 변하지 않는 성질을 누군가는 존엄이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더러운 것이 없다. 혹은 모두가 더럽다. 눈물은 흐르는 만큼 흩어지고 흩어지는 만큼 만난다.

열매나 잎사귀가 영원히 열리지 않아도 까마귀가 앉았다 갈 수 있는 나뭇가지인데. 그림까지도, 삐뚤빼뚤한 고유의 선마저도 병리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움이 될 수 없을까.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 자기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말하는 이 세상처럼 상담사는 나의 볼품없고 깡마른 나뭇가지를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패배가 뭐 어때서. 성공이라는 진통제로 오늘을 죽은 것으로 남기는 것보다 오늘 자기 의지로 죽는 패배자가 낫지 않나요.

내가 무엇을, 누군가를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하는 권태와 오만, 혐오
모른다는 걸 알기에 환대할 수 있다.

정직한 무지가 서로를 가깝게 한다. 우리에겐 더 많은 언어가 아니라 더 많은 무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을 모른다는 무지. 나는 나를 모르듯 당신을 모른다. 삶이 뭔지 세상이 뭔지 몰라서 여기저기 걸어 다닌다.

이 책을 읽으며, 우울함이 많이 느껴졌다. 책을 쓰는 중에도 많이 우울했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저자의 감정을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의 말 중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을 읽으며 한 명의 후배가 떠올랐다. 그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가진 게 많은 아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부러운 아이! 그렇기에 더욱 욕심이 많은 걸까? 100%를 채우기 위해 항상 달리는 것 같다. 인간이 모든 분야에서 100%가 될 순 없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가진 게 많은 아이니깐 지금보다 더 성장할 거라 확신한다!
 그 아이를 떠오르게 하는 구절을 그에게 읽어보도록 했다. 그의 반응은 "고통을 미화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했네요. 지금 고통스러우면 저렇게 쓸 수도 없을 텐데. 예술가라 그런가 봐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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