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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괜찮은 이유
로만 무라도프 지음, 정영은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한 시간의 산책을 한 시간의 글쓰기를 위한 준비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 시간의 글쓰기를 그 산책의 결과물로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길을 만난다.
모든 길을 탐험할 만큼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길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상상 속 방랑은 다시 실제의 삶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정신적 여행은 실제 여행만큼이나 우리를 멀리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
특히 생각이 발걸음을 따르고 발걸음이 생각을 따르는, 물리적 여행과 정신적 여행을 병행한다면 말이다.
이번 학기 나와의 약속이 있다. 독일에서 느꼈던 여유를 한국에 가져오는 것이다. 일상은 바쁘고 무언가로 가득 차있지만, 그것들을 잠시 잊고 짧게나마 나에게 여유를 선물해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나에게 여유를 선물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아침의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사람으로 붐비는 우리 학교지만 아침엔 사람이 없다. 고요하다. 또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그 시간에 조용히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면 분명 큰 힘과 선물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침엔 이상하게 책이 잘 읽힌다. 작가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바람 때문에 시원하지만, 햇살 때문에 너무 춥지는 않은 그런 날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닌가? 그 시간의 모든 것을 내 것 마냥 즐기는 기분이다.
이 책은 선물의 시간 동안 나를 기분 좋게 해준 책이다. 나의 좋았던 추억거리를 회상하게 해주고, 내 미래를 그려보게도 하고 나의 현재를 즐기도록 해줬다. 많은 작가의 에세이를 만났지만 이 책처럼 나를 기분 좋게 해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통해 다양한 얼굴을 만나는 것 참 설레는 일이다. 게다가 그 얼굴들은 항상 같지 않다. 어제와 오늘도 다르고. 지금과 지금도 다르다. 나의 이야기에 다른 손님을 초대하는 행위는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나의 이야기만을 전해줄 때보다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또한 나의 일방적인 말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부담도 덜하다.
나 역시 많은 얼굴들과 만나고 싶다. 또 내가 마주한 그 얼굴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해주고 싶다. 나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만날 때 탄생될 새로운 이야기 역시 들어보고 싶다. 나의 글이 희망의 어미로 가득하다는 것은 내가 가능성의 길을 걷고 있다는 걸 의미하겠지.
우리의 삶은 대단치 않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삶의 이야기를 관통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가치의 한 조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수평선 너머로 흩어지고 갈라지기 전까지, 우리의 손아귀를 영원히 벗어나기 전까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중 하나를 따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