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머니 커넥션 - 마지막 남은 성공투자의 나라 북한에 파고드는 중국의 치밀한 전략
이벌찬 지음 / 책들의정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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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따라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쉽게 변해왔다. 한국전쟁은 이 두 국가의 분단을 견고히 했고, 역사적으로 둘을 서로를 견제해 왔다. 분단 이전까지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한민족으로서 이 둘의 분단은 우리 민족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과 소수의 지배층의 욕심은 우리 민족의 의지에 반해 작동됐다. 북한은 가까워도 찾아가지 못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다. 생눈을 뜨고 가족과 이별했지만, 정치적 분립은 이 만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분리를 이끌었던 서구의 이념 대립은 북한과 남한을 보루로 잡고 있는 듯하다. 냉전 시기가 끝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은 통일이 됐지만, 우리의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북중 머니 커넥션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지식의 장을 확장시켜줬다. 교과서에선 북한을 수치와 이념 대립의 역사에서 조금 다룰 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정책을 쓰며 대외관계는 어떠한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는 배우기 힘들다. 그저 파편적인 정보들과 언론에서 다루는 북한의 이미지를 결합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지식을 채워왔다. 요즘 언론에서 북한의 탈핵화 결렬, 미사일 실험, 국제사회의 북한 폐쇄정책 등을 자주 듣는다. 언론의 이미지만 보면 우리는 개처럼 북한에게 무언가를 퍼주고,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갈 길을 걷는 것이다. 북한의 변함없는 태도는 우리 정부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맥락 없이 수용되는 정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던 파편적 정보들 사이를 연결해 준다. 왜 북한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지, 서구 열강의 폐쇄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우리가 북한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맥락을 배울 수 있다. 단순히 사료와 수치만으로 이 사실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을 오고 가며 경제 활동을 하는 북한인과 중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언론에서만 이야기하는 파편적인 정보에 함몰되지 않고, 대북 관계/ 통일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렵지 않은 언어로 쓰여 있지만,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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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따라 이 둘 사이의 관계는 쉽게 변해왔다. 한국전쟁은 이 두 국가의 분단을 견고히 했고, 역사적으로 둘을 서로를 견제해 왔다. 분단 이전까지 같은 언어를 쓰며 살아가는 한민족으로서 이 둘의 분단은 우리 민족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서구 열강과 소수의 지배층의 욕심은 우리 민족의 의지에 반해 작동됐다. 북한은 가까워도 찾아가지 못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다. 생눈을 뜨고 가족과 이별했지만, 정치적 분립은 이 만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분리를 이끌었던 서구의 이념 대립은 북한과 남한을 보루로 잡고 있는 듯하다. 냉전 시기가 끝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독일은 통일이 됐지만, 우리의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북중 머니 커넥션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북한에 대한 지식의 장을 확장시켜줬다. 교과서에선 북한을 수치와 이념 대립의 역사에서 조금 다룰 뿐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정책을 쓰며 대외관계는 어떠한지 등 구체적인 이야기는 배우기 힘들다. 그저 파편적인 정보들과 언론에서 다루는 북한의 이미지를 결합해 내가 갖고 있는 생각과 지식을 채워왔다. 요즘 언론에서 북한의 탈핵화 결렬, 미사일 실험, 국제사회의 북한 폐쇄정책 등을 자주 듣는다. 언론의 이미지만 보면 우리는 개처럼 북한에게 무언가를 퍼주고, 북한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갈 길을 걷는 것이다. 북한의 변함없는 태도는 우리 정부의 무능력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맥락 없이 수용되는 정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고,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던 파편적 정보들 사이를 연결해 준다. 왜 북한이 이런 태도를 고수하는지, 서구 열강의 폐쇄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우리가 북한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맥락을 배울 수 있다. 단순히 사료와 수치만으로 이 사실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을 오고 가며 경제 활동을 하는 북한인과 중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얻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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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그림자 - 무의식의 신학
신은희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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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세계는 접하기 힘들다. 종교 안에서 종교를 말하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만, 종교 밖에서 종교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야 종교를 알아갈 수 있다. 나 역시 종교가 없기 때문에, 종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드물다. 하지만 오랜 역사 동안 우리의 삶과 불가분 한 종교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왜 종교를 사람들이 가질까? 과연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존재할까? 오랫동안 종교가 유지된 비결을 무엇일까? 등 종교 밖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 책은 종교에서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본 종교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종교학의 관점에서 종교의 역할, 기능, 역사 등 종교의 메타인지적 부분을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첫 장은 <기억, 꿈, 사상>으로 익숙한 심리학의 대가 카를 융의 이야기다. 카를 융은 무의식의 세계를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그는 꿈에서 만난 자신의 무의식을 바탕으로, 인간이 지닌 무의식의 세계를 해석하려 한다. 일상에선 알아차리기 힘든 무의식의 세계는 꿈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의식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과 연결돼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가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려 하지만, 이 둘은 나눌 수 없는 그 자체로 우리를 이루는 것들이다.



카를 융의 사상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과 닮아 있다. 이는 헤르만 헤세가 병상에 있을 때, 카를 융의 제자에게 치료를 받으며 영향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또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세와 카를 융은 분리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살아봤자 세상은 하나로 통한다. 이 단순한 사실을 우리는 끔찍하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왜 분리된 삶에 익숙해진 것일까? 나와 다른 것은 왜 배척하게 됐을까? 첫 장은 이러한 카를 융의 가르침을 다룬다. 내가 마음에 새기고 싶은 새겨야 할 목소리가 많다. 일상에서 이 목소리를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그대가 정반대의 원칙을 수용할 때, 그대는 비로소 온전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원칙이 합쳐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원칙은 원래부터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



생명의 길은 뱀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고에서 쾌락으로, 쾌락에서 사고로 뒤틀며 이어진다. 그래서 뱀은 항상 우리에게 적수이고 적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갈망을 통해 오른쪽과 왼쪽을 연결하는 지혜의 다리가 되기도 한다. 뱀은 우리의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균형을 지키는 것은 옳은 일이고, 균형을 깨뜨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균형이 성취된 경우에는 그 균형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고, 그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균형은 생명인 동시에 죽음이다. 생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죽음과의 균형이 필요하다. 내가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나의 나무는 울창해질 것이다. 죽음의 생명력은 높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이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죽음으로부터 떨어진다면 나의 싹이 피어날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생명을 얼마나 많은 죽음을 필요로 하는가.









카를 융의 무의식은 이 책에서 나타나는 종교 의식, 행위, 전통에 대한 밑바탕이 된다. 작가는 카를 융의 사상을 렌즈 삼아 이것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다. 이 책은 샤머니즘, 원주민의 태양의 춤, 기독교의 종교 박해, 죽음의 신학 등 생소하지만 재미있는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하지만 모두 무의식의 세계가 주를 이뤄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선 공감과 이해가 힘들었다. 사실 공감은커녕 이해도 못 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독교와 원주민의 종교를 다룬 이야기는 잘못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준다.



파워스의 신학적 진단은 믿음과 참여의 분리 입장으로 요약된다. 파워스는 두 개의 종교는 믿음에 관해서는 상호 소통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블랙 엘크의 생존 신학은 사회 경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의식적인 종교적 전략이다. 지배 문화의 환경에 의해 기독교를 선택했지만 원주민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개 이상의 종교를 어떤 필요에 의해 참여할 수는 있지만, 이를 믿음과 직결시킬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원주민의 기독교 신앙과 토착 신학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기독교는 연대와 포용과 거리가 먼 역사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제3세계에 기독교를 전파는 폭력과 배척의 문화였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는 인정하지 않고 배척한다. 이 책에서 나온 원주민들의 종교는 기독교 전통 때문에 불법적인 이단의 문화로 전락해버렸다. 그들의 전통은 존중하지 않은 채 기독교는 오로지 그들이 믿는 신만을 유일신으로 설정해 폭력을 가한 것이다.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기독교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무시한 채 다른 종교와 사상을 지닌 자들을 배척한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목 아래, 그들과 다른 사람들에겐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연대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종교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도 되는 것일까? 기독교는 이러한 행태에서 벗어나 연대를 실천해야 한다.



원주민들의 생존 전략은 일본이 가했던 식민 정책을 떠올린다. 일본을 기독교로 대치하면 그들이 약자에게 가한 만행을 이해할 수 있다. 원주민들은 생존하기 위해 두 가지 종교 전통 아래에 살아간다. 마음은 그들의 토착 종교를 믿지만, 의식과 기도는 기독교의 전당에서 행한다. 생존을 위해서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살아가는 것이다. 일제시대 우리의 조상들이 살아야 했을 삶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살기 위해선, 그들의 눈밖에 나면 안 된다. 자신의 의지, 양심에 반하더라도 생존을 위해선 이를 감췄어야만 했다. 엊그제가 3.1절이었다. 이 날은 폭력에 맞서,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 보여준 날이다.



신의 그림자는 무의식, 종교의 세계에 대해 분석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책이라 생각한다. 주관적인 감정, 존재 가능 여부를 모르는 존재에 대한 학자의 생각을 들으며 내 나름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아직 종교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많은 것을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재미있는 인문학 책 한 권 읽었다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이 나중에 종교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좋은 밑바탕이 될 거라 생각한다.



호모 엠파티쿠스는 호모 렐리기우스의 의미를 포함한다. 종교적 인간은 곧 만물과 공감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호모 엠파티쿠스는 인간 본성의 공감적 능력과 특성을 종교적 틀이나 교리로 제한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욱 확장되고 포괄적인 우주적 영성 세계와의 공명으로 자아 변화와 사회변혁의 힘을 지닌 공감적 인간상을 의미한다.



공감의 공공영성은 인간을 속박하고 타인을 억압하는 자기중심성을 억제하는 관용의 미덕을 배양시킨다. 또한 자신의 경험을 기초로 타인의 경험을 내재화하고 주체의 확장을 통해 타인을 수용하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치유의 윤리적 덕성을 갖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은 내면의 무한성을 신성으로 승황해 나가는 신성화의 과정을 경험한다. 이는 상호 긴밀하게 연결된 공감의 그물망으로 인간.사회.자연의 관계를 유기적 통합 사회로 완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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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끝내는 독학 독일어 첫걸음 나혼자 끝내는 독학 첫걸음 시리즈
안희철 지음, 엘레나 쿠비츠키 감수, 정승환 동영상강의 / 넥서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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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를 다시 시작한지 9개월이 돼간다. 고등학교때는 독일어가 너무 싫어서 포기했는데 지금은 독일어 공부가 재미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영어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공부했는데 불구하고 자유로운 소통이 힘든데 뭔가 독일어는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어를 인풋 위주로 배웠다면, 지금 독일어는 아웃풋과 인풋을 적절히 하고 있다. 사실 영어는 시험 방식 때문에 문법과 독해 위주의 공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일어는 시험을 위한 언어 공부가 아니라서 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다.



독일어를 다시 시작했을 때 '독독독 A2'부터 시작했다. 고등학교때 A2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반에서 가장 낮은 성적으로 합격한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았더라면 떨어질 정도의 성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A2를 다시 공부했다. 역시 A2도 낯설고 어려웠다. 3년 동안 독일어를 배웠지만, 몸만 앉아 있었지 마음은 다른 세상에 있었기에 A2가 어려울만도 하다. 아마 A1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수준이었는데 자만심에 A2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도 워낙 독독독이 체계적이고 오프라인과 연계돼 무리없이 배워나갈 수 있었다. <나 혼자 끝내는 독학 독일어 첫걸음>은 독독독 원장인 다미안

쌤이 쓰신 책이다. A2때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기 때문에 걱정없이 이 책을 선택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까지 받으신 분이라 독일어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책의 난이도는 딱 나의 9개월 전 독일어 수준이다. A2를 하기엔 부족하고 A1는 자존심 때문에 시작하기가 꺼려지는 단계. A1가 맞는 것 같다! 책의 구성은 테마별로 20일 동안 공부할 수 있도록 이뤄져 있다. 상황에 따른 대화 중심이라, 문장 위주의 공부가 가능하다. 단어 중심의 공부가 되면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나중엔 아웃풋이 안 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문장이 주가 돼서 문장을 공부하다 보면 단어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게다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공부할 수 있으니, 책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하지만 유튜브가 전체 강의가 올라와 있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다. 또 컴퓨터 없이 노트북을 쓰는 나에겐 CD를 활용할 수 없어서 책의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없었다.



20일 동안 공부하는 책이지만, 나는 3일 동안 책의 문장들 위주로 공부했다. 역시 기초가 부족해 새로운 문장들 역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상황에 따라 어떤 말을 쓸지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책을 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모든 문장을 읽어보고 어려운 문장들은 다시 노트에 필기해 지속적으로 반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보면 또 낯설 수 있고, 체화가 되지 않으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어 수준이 이 책의 수준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나처럼 문장들을 빠르게 보며 좀 낯선 문장들을 다시 정리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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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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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층에 속하기 위해선 영향력 있는 대규모 조직의 최상위에 올라 있거나 엄청난 자본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선 단순한 돈을 넘어서 자본은 매우 중요한데, 자본은 돈만으로는 얻지 못할 권력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독일인 저자, 엘리트 제국의 몰락이란 책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세계적 권위자가 말하는 엘리트주의가 궁금했다. 엘리트주의가 무엇인지, 어디서 기원을 했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슨 특징을 갖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아쉬웠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인용했지만, 핵심 주장에 대한 반복적인 근거에 불과했다. 또한 그 사례들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사회에 한정돼 있어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나에겐 쉽게 와닿지 않았다. 적은 사례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색다른 논지들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엘리트와 권력의 정의적 연관성은 어떤 사람이 엘리트에 속하고 어떤 사람이 속하지 않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기준이 되며, 개별 엘리트 간 위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산업국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엘리트들은 주로 경제, 저이, 행정 및 사법 분야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발전을 위한 중대한 의사 결정을 담당한다.

책 내용 역시 제목인 엘리트 제국의 몰락과 어울리지 않았다. 제목 위에 적혀있는 "Wie die Eliten di Demokratie gefaehrden?"이 책에 내용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엘리트주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가? 이 책은 엘리트주의로 표상되는 권력자들의 사고와 행태를 고발한다. 그들은 과연 민주적인 삶을 사는가? 모든 국민이 국가, 사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저자는 그들이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수와 다수 모두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의 탈세는 정당화하면서, 국가가 걷는 세금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자본을 갖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사회나 다수의 사람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탈세, 정경유착, 비리 등을 보면서 서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한순간 깨져버렸다. 그들 역시 자본과 권력에 물든 존재에 불과했다.



똑같은 관점을 갖고 있고 인식이나 판단력, 생각의 범주가 같은 사람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비슷한 특정 습관을 갖고 있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서로 잘 알아볼 수 있다.




책 표지 가장 위에 적힌 Die Abgehobenen은 독일어로 너무 곱게 자라서 일반 사람들의 고생과 삶에 대해 아예 모르고 현실성이 없고 근거 없이 잘난척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비판하는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많은 자본과 풍부한 배경을 지닌 엘리트들과 그 외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이들은 같은 세상을 살아도 다른 세상을 산다. 또한 같은 사건을 봐도 다르게 해석한다. 엘리트들에게 경제력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에 불과하다.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돈이든 권력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은 능력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많은 영향력을 지니는데, 엘리트들은 모든 걸 다 지니고 있다. 모든 걸 채워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만이 힘들 뿐이다.



그들에겐 사회와 국가란 자신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면 되는 조그만 개념의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규제를 가하는 국가에 대해 부정적이다. 규제는 그들의 자산, 이득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파이만 넓히는 것이 최우선이다. 전체의 파이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것이 과연 사회정의인가? 작가는 이러한 엘리트주의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또한 엘리트들의 행태를 바로잡을 국가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엘리트들이 주를 이루는 권력 체제에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이 펼쳐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선 소수만을 위한 세상이 돼선 결코 안된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선 그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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