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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엘리트층에 속하기 위해선 영향력 있는 대규모 조직의 최상위에 올라 있거나 엄청난 자본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선 단순한 돈을 넘어서 자본은 매우 중요한데, 자본은 돈만으로는 얻지 못할 권력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독일인 저자, 엘리트 제국의 몰락이란 책 제목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됐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세계적 권위자가 말하는 엘리트주의가 궁금했다. 엘리트주의가 무엇인지, 어디서 기원을 했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무슨 특징을 갖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책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아쉬웠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인용했지만, 핵심 주장에 대한 반복적인 근거에 불과했다. 또한 그 사례들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서구 사회에 한정돼 있어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나에겐 쉽게 와닿지 않았다. 적은 사례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색다른 논지들이 나오면 더 좋을 것 같다.
엘리트와 권력의 정의적 연관성은 어떤 사람이 엘리트에 속하고 어떤 사람이 속하지 않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기준이 되며, 개별 엘리트 간 위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산업국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엘리트들은 주로 경제, 저이, 행정 및 사법 분야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분야의 발전을 위한 중대한 의사 결정을 담당한다.
책 내용 역시 제목인 엘리트 제국의 몰락과 어울리지 않았다. 제목 위에 적혀있는 "Wie die Eliten di Demokratie gefaehrden?"이 책에 내용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엘리트주의, 엘리트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가? 이 책은 엘리트주의로 표상되는 권력자들의 사고와 행태를 고발한다. 그들은 과연 민주적인 삶을 사는가? 모든 국민이 국가, 사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저자는 그들이 사회의 양극화를 부추기며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소수와 다수 모두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만을 위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들의 탈세는 정당화하면서, 국가가 걷는 세금에 대해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엘리트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자본을 갖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사회나 다수의 사람들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탈세, 정경유착, 비리 등을 보면서 서구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한순간 깨져버렸다. 그들 역시 자본과 권력에 물든 존재에 불과했다.
똑같은 관점을 갖고 있고 인식이나 판단력, 생각의 범주가 같은 사람들은 간단히 말하자면 비슷한 특정 습관을 갖고 있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서로 잘 알아볼 수 있다.
책 표지 가장 위에 적힌 Die Abgehobenen은 독일어로 너무 곱게 자라서 일반 사람들의 고생과 삶에 대해 아예 모르고 현실성이 없고 근거 없이 잘난척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 비판하는 엘리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많은 자본과 풍부한 배경을 지닌 엘리트들과 그 외의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다르다. 이들은 같은 세상을 살아도 다른 세상을 산다. 또한 같은 사건을 봐도 다르게 해석한다. 엘리트들에게 경제력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에 불과하다. 열정적으로 노력하면 돈이든 권력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다는 걸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 세상은 능력뿐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많은 영향력을 지니는데, 엘리트들은 모든 걸 다 지니고 있다. 모든 걸 채워야 하는 다수의 사람들만이 힘들 뿐이다.
그들에겐 사회와 국가란 자신의 이익만을 보장해주면 되는 조그만 개념의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규제를 가하는 국가에 대해 부정적이다. 규제는 그들의 자산, 이득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신의 파이만 넓히는 것이 최우선이다. 전체의 파이가 어떻게 배분되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것이 과연 사회정의인가? 작가는 이러한 엘리트주의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또한 엘리트들의 행태를 바로잡을 국가의 모습을 바라고 있다. 엘리트들이 주를 이루는 권력 체제에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이 펼쳐지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선 소수만을 위한 세상이 돼선 결코 안된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선 그들의 희생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