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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버스 - 욕망의 세계
단요 지음 / 마카롱 / 2022년 12월
평점 :
『인버스』의 작가 단요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사람 한 명과 함께 강원도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사람이라서 생기는 이야기들을 즐겨 쓴다. 청소년 성장소설 『다이브』를 썼다.
인버스(inverse)의 사전적 의미는 논리학의 '이', 함수에서의 역원 또는 역함수의 뜻을 갖는다.
뭔가 반대라는 의미를 갖는데 이 책의 제목에 쓰인 인버스는 무엇일까?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이 된다면 내 행복은 나쁜 걸까?"
인버스 ETF
주식 관련 장내 외 파생상품 투자 및 증권차입매도 등을 통해 기초지수(KOSPI 200지수)의 일일 변동률(일별 수익률)을 음의 1배수 즉, 역방향으로 추적하는 ETF를 말한다. 예를 들어, KOSPI 200지수가 1% 상승할 경우 인버스 ETF는 마이너스 1% 수익률, 반대로 KOSPI 200 지수가 1% 하락 시 인버스 ETF는 플러스 1%의 수익률을 목표로 운영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인버스 ETF (매일경제, 매경닷컴)
소설 『인버스』의 주인공은 스물세 살의 여자다.
넉넉지 못한 형편의 주인공은 수능을 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첫 월급으로 130만 원을 받는다. 부모님께 10만 원씩을 드리고 나자 남은 돈은 110만 원. 3월까지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대학 등록금과 원룸 보증금을 충당하기엔 빠듯하다. 돈이 필요했던 그녀는 고액 알바 게시글을 보고 면접을 보러 갔지만 그곳은 성매매 업소였다.
면접 장소를 돌아 나오며, 스무 살짜리 여자애가 큰돈을 벌려면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감당하기에 벅찬 위험이 필요한 일 말고, 합법적이면서 객관적인 지표와 흐름이 있어 보이는 그것, 주식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해외선물 계좌를 만들었다. 선물은 초고위험 파생상품이었지만, 주식과는 달리 오르든 내리든 돈 나올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고, 처음에는 꽤 잘 벌었다.
500만 원으로 적응 기간 동안 3000만 원을 만들었고, 일 학년 중간고사를 마치자마자 학교엔 가지고 않고, 원룸에서 해외선물 매매에 매달렸다.
경제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었지만,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기막히게 잘 맞췄고, 특유의 재치와 글솜씨를 통해 블로그를 운영하며 유명세를 끌기도 했다. 500만 원으로 시작한 계좌는 4억 8,000만 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4억 8,000만 원이 1억 원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다섯 시간.
사람은 환희에 매혹되는 만큼 분노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한껏 불타오른 뒤에 찾아오는 소강상태는 더없이 절망적이면서도 평안하기 때문이다. p.78
파멸이 내 머리 위를 스쳐 가서 다른 누군가를 겨누는 순간, 불안과 희열이 뒤섞이고 분노는 스릴의 다른 이름이 된다. p.79
그러니 셋이다.
불행을 천벌이라 믿고 함께 죄인을 벌하려는 부류, 그걸 가십으로만 대하는 부류, 남이야 어떻건 돈 생각만 앞세우는 부류, 그 셋 사이에 어떤 도덕적 우열이 있을지가 궁금했다. p.85
가리키는 대로 세계가 움직여 가는 상황은 효능감 이상의 전능감을 가져다줬다. 하늘에 떠올라 저 아래의 나라들을 조감하는 느낌. p.93
선물에서 나의 수익은 남의 손해라는 걸 알지만, 내가 수익을 내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자신과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자신의 사이에 묘한 괴리감을 느낀다.
전능감을 느끼며 돈을 벌어보기도 했던 그녀는 돈을 다 잃고 집으로 들어와 생각한다. 스물셋의 나이에 퇴학을 당했고, 돈도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그녀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먼 옛날 사람들이 천국에 닿는 탑을 지으려 하자 천벌이 내려와 탑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각각의 삶이 거기서 끝났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는 폐허에 남은 벽돌을 주워 그럭저럭 안락한 집을 세웠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계속 탑을 쌓았을 것이다. 무너지고 무너지더라도, 혼자만 남아도, 얼간이 취급을 받아도, 계속. 그러다 언젠가부터는 처음에 바란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벽돌만을 옮기다 그만 죽어 버렸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을 잘 안다.
intro p.7
그녀는 생각했다. 처음에 바라던 건 무엇이었을까?
그녀가 바라왔던 건 지방 신도시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 아파트 하나였다.
25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을 만큼 몰입감이 좋아 언제 읽었는지도 모르게 끝이 나는 소설이다.
다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니 마지막 부분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져 '정말 이게 끝인가?'라고 생각하며 남은 책장을 다시 보게 됐다. 끝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몰입감 만큼은 최고였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