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에너지 - 더 진보적이고, 더 민주적이며, 더 서민적으로 호모폴리티쿠스 정치가에게 묻는다
정세균 지음 / 후마니타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배우로 치자면 개성미가 없어 잘 조명받지 못하는 스타처럼 느껴지는 민주당 대표 정세균이 대한민국의 정치현실, 민주주의, 진보진영과 민주당의 진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히 신선한 내용도 없고, 이론의 여지가 있는 주장은 없지만, 다른 진보진영의 인사들처럼 과격하거나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없고, 실사구시적이고 실용적인 그의 태도가 엿보인다.

그동안 격동의 한국정치에서 언제나 세상을 변혁하고 뜯어 고쳐야 한다는 좌,우의 주장 속에서 색깔이 선명하고 과격한 주장만이 득세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며, 불의와 기득권에 순응하지는 않으면서도 현실적이고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정치지형과 이를 만들수 있는 정치인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기업의 CEO출신이면서도 정치를 단지 비효율적인 제약으로 보지 않고, 보다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사회적 장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태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기업가와 기업 출신의 정치인들이 눈여겨 보왔으면 종겠다. 이 책을 쓴 동기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관을 이렇게 서술했다.

 

정치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어떤 합의에 도달하고 그것에 따르도록 만드는 기술이자 예술이다. 무슨 사업 추진이 옳다 그르다, 세계 몇 위를 언제 달성하며, 몇 퍼센트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다 3만달러다 하며 소리를 높이는 동안 정치적 담론과 실천은 실종되어 간다.

이런 식의 다툼으로 일관한다고 해조자. 어느 누가 정치를 통해 어떤 가치와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적 기초를 어떠해야 하는지를 성찰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지를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p.8)

 

그가 어려서 가난하게 살아서 고학으로 학업을 마치고 대기업에서 산업근대화에 이바지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는 그에 대한 삶의 이력과, 여러 정치현안들을 해결해 나가는-이를테면 IMF시절 현대자동차파업문제 해결이나 열린우리당집권시절 4대입법처리에서 보여준- 그의 문제해결 방식은 요즘처럼 사회가 좌우로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좋은 본보기가 될수 있을 것 같다. 외유내강의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 나라의 정치인이 무슨 장수처럼 적들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여러 이해세력들의 요구들을 경쟁과 타협을 통해 일부는 대변해 주고 일부는 변용해 가는 운영의 묘가 오늘날 정치현실에는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아무튼 민주당 혹은 민주진영이 오늘날 한국사회에 이룩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다시 질적인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려는 그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민주당은 보다 선명해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한 의원이 언급한 것처럼 좀더 국민들 시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지향하는 바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지난 10년의 정치현실에 대해 국민들이 작년에 보여준 대선과 총선의 결과로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그는 적어도 국민들이 오해를 했다고 얘기하지 않고 우리가 일부 잘못했다고 시인한다.

 

진보의 가치가 소중한 만큼 일부 진보 진영에서 보여 온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이를 제기하는 데 능숙한 반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찾는 데에는 소홀하다. 제한된 권한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화의 성과를 온전히 자기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도 있다. 독재 정권 아래서 숨죽이고 열심히 살아온 보통 사람들의 아품과 애환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때 어느 편에 있었느냐는 잣대로 세상을 손쉽게 나누어 이해하기도 한다.

입장의 선명성에 의존하다 보니 일에 대한 헌신을 중시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과 인내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말은 거친데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 대안까지 내놓으면 휠씬 나은 경우이지만, 많은 경우 마치 백지상태에서 그림 그리듯이 아름답고 보기 좋은 비전을 내놓는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과 제약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하다.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서유럽이나 북미의 사례를 몇 가지 보여 주는 것으로 간단히 정리한다. (pp.101-102)

 

끝으로 올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했을 때의 과정을 보면서, 정치인이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생각해 본다. 종이호랑이가 된 전직 대통력을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지켜주지 못했다. 일부 진보진영과 진보주의 언론은 그가 재임당시 행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이젠 알수 없으나 있다고 추정되어졌던 정치비자금을 가지고 그를 가차없이 등을 돌리고 비난했다. 정의는 참 중요하다. 정치나 사회가 보다 정의롭고, 국민이 뜻하는 바데로 가도록 노력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공인으로써 바른일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진영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보여온 태도는 정의로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의리는 없었던 것같다. 장사를 하려면 정직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의리가 중요한데민주당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쌓아야 겠지만, 정치인들 사이에세도 신뢰와 의를 찾아야 할 것같다.

노무현 전대통령님을 추억할 수 있는 귀절이 있어 이렇게 남긴다. 노무현가 정세균 서로 스타일은 틀리고,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대의를 위해서 서로 좀 서먹하면서도 의리있게 정치를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노무현과 민주당

내가 실지로 노무현과 함께 일해 본 것은 1998년 현대차 파업 때다. 앞서 말했듯이 그가 중

재 단장이었고, 내가 사측을 담당했다. 그는 내 활동을 좋게 보았는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당시 일을 꺼냈다.

사실 그 일 말고는 나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마땅히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역주의와 싸우고, 언론 권력과 싸우면서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에 비해 내 활동은 순탄했고, 주어진 일을 여심히 하는 편이었다. 열정적이었던 만큼 외로웠을 그에게 나는 무난하게 기득권에 안주하는 사람의 하나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스타일상 그와 나는 워낙 달랐다. 그는 때론 과하다 싶을 만큼 솔직하고 말에 거침이 없었다. 나는 말로 꼬투리 잡고 잡히는 걸 싫어했고,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민주당은 많은 이익을 얻었지만, 민주당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를 정치로 끌어들인 김영삼은 3당 합당에 가담해서 영남 민주 세력을 고립시켰다. 노무현을 포함한 많은 영남 인사들은 지역 기반을 포기하던가 민주개혁을 포기해야 하는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다. 많은 사람이 지역을 붙잡았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다.

그 뒤로 고난의 길이 시작되었다. 민주당을 지키며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다. 누군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마땅한 이유를 찾기 힘들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사람은 좋은데 당이 별로라서……” 노무현은 이런 자기 합리화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PP.224-225)

그와 나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둘 다 원내에 있을 때나 당직을 맡았을 때 그만하면 친해졌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호남출신이고 기업 출신이며 예측 가능한 사람이다. 반면 노무현은 영남 출신의 투사형이면서 당시까지는 노동계를 대변해왔다. 그의 발언이나 행보는 돌출적일 때가 많았다.

후보 시절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지 않겠다거나 반미면 또 어떠냐라고 말했다. 나 같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런 차이로 인해 오히려 친해질 수도 있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그는 현실을 매우 못마땅해 했고, 일을 벌이는 편이었고,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일을 수숩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는 호방하고 직선적인 스타일이고, 나는 온화화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나에게 노무현은 늘 어색하고 불편했다.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꼈지만, 일을 대하는 자세가 나와는 판이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릴 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p.228)

당은 왜 분열했나
모르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의 배후라고 말할 것이다. 그가 세운 당이니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몰랐다고 무지를 탓할 뜻은 없다. 나마저도 후일 대통령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민주당이 노무현에게 베푼 것은 별로 없지만 그가 민주당을 등진 적은 없다. 그를 후보로 뽑아 놓고도 당의 주류들이 흔들어 댔지만, 민주당을 버린 적은 없었다.(p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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