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백'을 읽고서는 자살의 종용에 맞서는 삶의 논리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이 책을 읽고는 이민의 종용에 대처할 수 있는 잔류의 논리를 고민해야 하는 게 내 몫으로 남았다. 나는 왜 여기에 남아있어야 하는가. (...) 영어공부 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넘치는 뇌 - 당신의 뇌가 정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
토르켈 클링베르그 지음, 한태영 옮김, 정갑수 감수 / 윌컴퍼니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나 자신과 싸움으로써 내가 꽤나 강하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책을 꾸준히 읽자고 노력했으나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왜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를 자극하고 주의력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이 책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현대인이 겪는 주의력 결핍이나 과잉행동장애는 실상 정보의 과잉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끌린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만족할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과학 대중서적이고, 뇌, 그것도 작업기억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중립적 사실로부터 자의적으로 논지들을 배치했음을 알 수가 있다.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그거였다. 본문에서는 인간이(혹은 침팬지를 비롯한 전반 피험자가) 디지털 매체에 대해 반응했던 예만 다루고 있는데, 내가 알고 싶은 건 아날로그에 대한 반응이었던 거다. GTA를 하는 게 작업기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일면 게임을 잘 하면 책을 잘 읽을 수 있다는 비약으로 이어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게 아니라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이 책은 내가 왜 책에 집중을 못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적어도 통제주의력의 결여라는 관점에서는 설명할 부분이 많은데, 이 책이 주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작업기억'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서의 역할이자 한계는 자잘한 정보의 습득에 있다. 이전에는 몰랐던 두뇌 가소성 개념이라든지 배웠으나 헷갈리던 두뇌의 위치라든지(전두엽,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 하는 것들 말이다.그리고 이 책이 주장하는 덕목이 '꾸준함'이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듯 두뇌 역시 한계치에 가깝게 꾸준히 파야 한다고.... 그거 내가 제일 못하는 건데 슬프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스티븐 핑커 계통의 진화심리학을 깔 때랑 명상이 통제주의력에 영향을 준다는 대목이었다. 전자는 내가 답답했던 부분을 사이다처럼 해소시켜주었고, 후자는 그동안 등한시해왔던 개념을 다시금 상기할 수 있었다. 역시 괜히 하는 게 아니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대중서의 한계를 지울 수가 없었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플린 효과(시대가 변하면서 평균 아이큐가 증가하는 현상)를 통해 평균 지능이 상승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이걸 잘만 활용하면 자신의 작업기억 능력을 키울 수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 낙관론과 약팔이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개념을 언급하는데, 이건 뭐 거의 전가의 보도다. 아니 그래서 작업기억을 늘리고 주어진 환경에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잘 바꾸자는 결론인데, 이게 또 약을 팔지 않으면 대중서가 아닌지라... 학자의 딜레마라고 하겠다.



정준이형이랑 대화하면서 '선순환'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예컨대 게임을 만들다가 흥미를 느껴서 피드백을 받고, 실력이 늘어서 다시 게임을 만들고, 흥미를 느끼는 일련 과정들 말이다. 본문에서는 이걸 '양성 피드백'이라고 표현하는데,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효과를 본 사례가 있다고 한다. 나도 좀 받아보고 싶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로 이 양성 피드백이다. 


그런데 책 진짜 억지로 읽으면 탈난다. 3주 넘게 걸렸다. 별로 그럴만한 책은 아닌데, 어지간히 읽기 싫었나 보다 (...) 사실 나는 그냥 책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아 이거 봐야징ㅎㅎ' 이런 개념인데, 책은 '아.... 이거 읽어야 하는데' 개념으로 시작하니까. 그러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재밌으면 계속 파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근본적인 메커니즘이 틀렸음을 이제야 인정한다. 나는 '내가 맞았다'는 걸 확인하는 확증편향 강화식의 책읽기보다는 '이건 아니네.' 라고 생각되는 책읽기를 더 선호한다. 후자는 어쨌든 다른 걸 파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니까. 하, 부담을 좀 떨쳐야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민의 불복종 - 야생사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민의 불복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1849년 <시민 정부에 대한 저항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에세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멕시코 전쟁을 일으키고 노예 제도를 유지/고수하는 등 부당한 일을 자행하는 것에 대한 반항으로 6년 간 인두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하룻밤 동안 감옥에 수감되는데, 이 때의 경험이 이 에세이를 만드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분량은 적지만 보다시피 주옥 같은 띵언으로 점철되어 있어 후세의 마하트마 간디, 영국의 노동 운동가들, 나치 치하의 레지스탕스 대원들, 마틴 루터 킹, 그리고 우리나라 사상가인 함석헌 선생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과연 국가 권력에 대한 개인의, 아니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명저 중의 명저이자 고전(Classic) 중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작인 것이다. ... 여기까지는 상투적인 수사이고.



'공병기'라고 페친 분이 쓰는 소설이 하나 있다. 얼마 전에 거기에 수록된 비판을 하나 게시하셨는데 대저 이런 거였다.


"그는 대부분 '주장'을 하고 있어 모든 경험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험을 극적으로 판단하고 구성해 그 외 다른 요소는 일절 배제해야 했다. 가령 그는 남성들의 성욕이나 일체감 같은 것을 놀라워하거나 불쾌해한다.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옳은 삶을 고집하는 경향에다 솔직하기까지 해서 군대를 인간에게서 삭제하려는 건지 인간성의 일부를 삭제하자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요컨대 '공병기'는 대략 소설의 형식만을 취했을 뿐, 실상 논설문 자체라는 소리인데, 형식의 투박함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사례와 주장이 전도되는' 이중성을 까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의 주장이나 주제의식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은 맞지만 이야기가 주장을 위해 복무되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바로 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경우가 그렇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내 페친 같은 분이다. 그는 옳음(good)을 옹호하는 투사다. 아마도 철학을 했다면 대성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에 그는 너무 순수했고, 인간 세상을 사랑했다. 자신이 딛고 있는 자연과 사회, 늘 마주하는 이웃사람, 나아가 인류 전반. 어쩌면 그의 본심이 퇴색되는 부분은 안타깝게도 그 pc함의 추구에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누구나 다 아는 소릴 왜?' '그래, 잘났다. 재수 없는 새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우리 같은 범인(凡人)이 그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가 선민사상에 경도되어 있다고 볼 것도 없는 게 그는 <월든>에서 보여지듯 홀로 외로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이 점을 한 번만 더 숙고한다면 그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물론 그래도 아니 꼬운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정의를 추구한다는 게 힘들어진 세상이다. 아니, 정의를 추구한다고 하면 대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정의인지, 추구한다는 그 자신은 불의로부터 무결한지 쉼 없이 검증받게 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명백히 말할 수 있는 인본적 잣대가 존재할 때,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불의가 존재할 때, 제도와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침탈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때, 그는 끊임 없이 재평가받아야 되는 인물이 아닐까.



참 좋은 말로 마무리 했다. 우리는 결국 한 인간의 '순수함'과 '진심'을 보고 나아가야 하니까. 그 형식은 어쩌면 둘째 문제다. 소로우는 그런 인물이다. 어쩌면 사람사는세상이니 나라다운나라니 좋은 세상에서 잘 살아보자는 인간 심리의 근저에는 크든 작든 순수한 소로우가 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책에 수록된 다른 네 편, 돼지 잡아들이기, 가을의 빛깔들, 한 소나무의 죽음, 계절 속의 삶, 야생 사과까지 다 읽었다. 영문학도스러운 시적표현과 <월든>의 주요 문장으로(이건 고도의 마케팅 수법으로 사료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을 포장한 역자의 말까지. 연보는 대충 읽었다.


소로우는 진짜 시골 아재가 맞는 게 약간 그런 느낌 있지 않나. "마, 니 야생사과 안묵어봤제? 이거 어디가서 묵고싶어도 몬먹는다. 퍼뜩 묵어봐라 쥑인다~!" 마치 아버지가 낚시 다녀 오시고 집에서 회 치면서 내가 잡은 게 제일 맛있고 영양가도 좋다면서 처자식들에게 생색내는 그런 뉘앙스로. 게다가 소로우는 말 그대로 초야에서 홀로 2년을 내리 지낸 진짜 '자연인'아닌가. 우월감 내지 비교하듯 서술하는 투, 이런 걸 선민의식이 아니라 아재감성, 자연인 감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편이 더 자연스럽지.


'가을의 빛깔들'이 정말 읽기 힘들었는데, 이스트 코스트 메사추세스의 자연경관을 네셔널 지오그래픽 HD 다큐멘터리로 보여주어도 졸음을 느낄 판에 삽화 하나 없이 그 번역체의 묘사들을 읽자니 안 그래도 주의집중을 잘 못하는 내 머리는 계속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오늘 무궁화밭에 가서 비닐 멀칭하면서 하루 종일 일 했는데 정말 농촌은 아닌 거 같고 산촌에서 혼자 유유자적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다큐멘터리도 보고, '나는 자연인이다'도 봐야지. 내가 그 나무들, 곤충들, 새들, 짐승들을 다 어떻게 알 것이며 ... 정말.


계절 속의 삶은 요즘 나오면 참 욕 많이 먹을 만한 단문인데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감안하자. 그는 자연인이다.


야생사과는... 사과의 내력과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을 두 번에 걸쳐 읽었는데 당최 가물가물하다. 예전에는 잘 기억했었던 거 같은데, 너무 슬프다... 역사라면 자신 있었는데 ... 요튼 하임, 트야씨, 이둔 여신 ... 다시 읽어야지. 몇 번에 걸쳐. 강박을 지우고.




-

"누구의 소유물이 되기에는, 누구의 제2인자가 되기에는, 또 세계의 어느 왕국의 쓸 만한 하인이나 도구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고귀하게 태어났다. (p.24)"1



"정의 편에 투표하는 것도 정의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의가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당신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가볍게 표시하는 것일 뿐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정의를 운수에 맡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정의가 다수의 힘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p.30)"2



"왜 그들 자신은 자기들과 주 정부의 연합 관계를 해체하지 않으며, 자기들 몫의 세금을 주 정부에 바치기를 거부하지 않는가? 그들과 주 정부의 관계는 주 정부와 합중국의 관계와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들이 주 정부를 거부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주 정부도 합중국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p.34 - 35)"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p.38)"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끼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 (p.41)"



"당신의 온 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단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p.42)"



"돈이 없었더라면 그가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고심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돈은 유보시켜 준다. (...) 이리하여 부자의 도덕적 기반이 발밑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른바 '수단'이란 것이 늘어갈수록 삶의 기회들은 줄어든다. (p.44)"



"사람이 부자가 되었을 때 자신의 교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그가 가난했을 때 품었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p.44 - 45)"



"나라에 도가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다면 부끄러운 일이요,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부하고 귀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p.46)"3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p.50-51)"



"나는 참다운 인간들이 군중의 강요를 받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살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삶이 도대체 어떤 삶이겠는가? (p.51)"



"나는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선령한 이웃이나 친구로 어느 정도나 신뢰할 수 있는가를 보았다. 그들의 우정은 평온한 시절만의 우정이고, 그들은 올바른 일을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 (p.56)"



"이 세상에서조차도 내가 정부 밑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유롭게 사색하고 자유롭게 공상을 하고 자유롭게 상상을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면, 현명치 못한 지배자나 개혁자가 우리를 치명적으로 괴롭힐 수는 없을 것이다. (p.63)"



"진리의 보다 순수한 원천을 모르는 사람들, 즉 그 냇물을 따라 상류로 더듬어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현명하게도 성서와 헌법 옆에 서서 존경과 겸허의 자세로 그곳의 물을 마신다. 그러나 진리의 시냇물이 이 호수 또는 저 연못에 조금씩 흘러들어 가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허리띠를 다시 한 번 졸라매고 그 수원(水源)을 향해 순례를 계속한다. (p.66)"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해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하루, 이틀 아니 실은 단숨에 다 읽었다. 국내 청소년 성장소설이 주는 아릿한 느낌. 간결한 문장이지만, 그 속에는 마음 속을 깊숙히 저미며 추억을 새기게 하는 묵직함이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예전보다 '사회적 시간'을 많이 체감한 어른이 되었음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짧디 짧은 독서량에도 아직 어린 소년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래서 결코 소녀로서의 자신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구나.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낭만을 지켜내고 싶었던 것이구나...하고 생각한다. 실은 이제 다 지난 일이다. 단지 내 선택만이 남았을 뿐이다. 역시 추억만을 곱씹기엔 난 이 소중한 시간들을 너무 많이 허비하고 말았다. 


짧디 짧은 독서량에 어디 책 깨나 읽었겠냐만은 과거(아마도 10년이 더 지난 어릴 적) 읽었던 청소년 성장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김혜진의 '프루스트 클럽'이라는 작품이다. 다 읽지는 않았지만 (실은 제목도 줄거리도 가물가물하다가 얼마 전에 검색을 통해 알았다. 그 잠깐 읽었던 작품이 뇌리에 남을 정도라면....) 당시로서는 대단히 어린 나이에(그것도 중, 고등학생이 아니라 초등학생 무렵의 나이에) 접했던 주제의식, 예컨대 성장통이라던가 사춘기 같은 부분에서 어딘가 괴리감이 들었던 부분도 없지 않다. 이제는 그 시기를 훌쩍 지나버린 어른이 되었지만, 오늘 '아몬드'를 읽으면서 과거에 읽었던 그 책 생각이 많이 났다. (분류하자면) 똑같은 청소년 성장 소설이기도 하고, 단숨에 읽었으나, 그 여운은 결코 단숨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에 말이다. 분열하고 방황하는 소년들, 기시감에 가까울 정도로 붕 떠있는 풋풋한 느낌. 어머니의 품 안, 정확히는 과거 짝사랑하던 소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평화로운 한때의 무위(無爲). 대충 그러한 향수인데, 나는 각박한 현실에 그런 구원을 좇은 인간 전형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어린 아이들이 저마다의 다양한 구원의 길을 향해 손을 뻗쳤었다. 어떤 이들은 열심히 연애에 탐닉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술에 탐닉하기도 하고. '청소년의 향수' 역시 그렇다. 내가 괜히 입시 때 청소년학과나 상담학과를 썼겠냐만은 (...) 이번 독서를 계기로 '프루스트 클럽'을 한 번 다시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라딘 중고가로는 단돈 500원에 판매하고 있는 잡스러운 느낌의 책이지만, 뭐 어때. 내가 보고싶다는데.


요즈음은 애써 표현력을 재고하고 자판을 두들기며 글을 쓰는 게 가식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현학적 수사로 수놓인 비평 따위의 글들을 읽을 때 구태여 억지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그녀석은 비평마저도 작품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글쎄, 나는 그런 사랑이라면 싫다. 각종 재단과 분석. 교양이라는 이름 하에 행해지는 고나리질, 꼰대질... 작품을 깎아 먹는 하등 영혼 없는 짓거리일 뿐이라는 것이다. 역시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나 아비투스가 따로 있는 것이겠지. 아무튼 참으로 이런 생각에 경도될 때면 마침내 나만의 독서 취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이번 달은 네 권의 책만 주문하려 한다. 실은 이번에 사 놓은 것도 다 읽지 않고 있으니까 사둔 책을 열심히 읽기나 해야겠지. '안녕 나의 피아니스트'같은 거라던가...



청소년기의 치기 어린 방황도, 형언되기에는 꽤나 명료하지 않은 사랑과 아픔과 숱한 인간관계에서의 고뇌도, 실은 그것은 다시 되돌아올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시간이다. 나는 얼마나 이 아름다운 시간을 허투루 살았나. 텅 빈 방 안에는 술 냄새만 가득했지. 열렬히 사랑이나 했겠냐만은 그에 비해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을 낭비하기나 하고.



"사랑을 얻기 위해 애쓰다 결국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괴테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떠올려 봤다. 사랑이 변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학대를 가한다는 뉴스도.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용서한 이들의 이야기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란 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 안에 가둬 놓은 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 밖에 냈다.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슬퍼진다. 시지프 신화를 읽었을 때 들었던 물음이 다시 떠오른다. 세계는 변혁될 수 없는가.


여성혐오가 만연한 세상이 힘들다고들 말합니다. 문제의식 없는 사람들이 문제라고들, 당장 제 주변에만 해도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저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거고. 이 비셔스 사이클이 끝나는 건 아마 변혁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나라가 망해서일 겁니다. 조선은 정말이지 망해야 해요. 정신 차릴 때까지 수 백번이고 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힘을 내어 주실 수는 없을까요? 문학의 역할이란, 예술의 역할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사회고발문학이라고 거창할 건 없어요. 외면하지 말아야 할 우리 현실이에요. 힘을 내어 주세요. 목소리를 잃지 말아주세요. 거기 키 큰 당신, 키 작은 당신,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는 당신도.


일일히 독후감 쓰는 게 진짜 일이에요. 귀찮은 일인데... 흐어ㅜㅜ 그런데 여성혐오가 바로 이런 식이에요. 귀찮음. 습관. 몸에 배어버린 세계의 부조리. 여러분들 이거 계속 이대로 묻히고 살 거에요? 암만 봐도 당선 안되는데 벌써부터 홍준표 대통령이라고 지들끼리 뇌내망상 행복회로 고장나버린 일게이새끼들처럼? 안되죠. 안돼요. ... 그러면 안되는데 진짜 사람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