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의 비밀
톰 밴더빌트 지음, 박준형 옮김 / 토네이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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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그렇게 막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 그래도 나름대로 인싸이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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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 문제다 - 대한민국 99%의 내일을 위한 전략
김윤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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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거 진작에 썼어야 하는데, 글쓰기를 강박으로 밀어붙이는 게 이렇게나 해롭다. 독후감이 '꼭 써야만 하는' 글쓰기는 아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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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전엔 나름대로 훌륭한 글을 써제끼곤 했었다. 소위 엉덩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노가다'를 통해서. 지금 돌아보면 내가 써온 글의 태반은 노가다의 산물이다. 퇴고, 퇴고, 퇴고, 또 퇴고, 줄이고, 퇴고 (...) 한 편의 훌륭한 글을 만들어내는 힘든 작업이었지. 사실 모든 글이 꼭 네모반듯 정제될 필요는 없는 데 말야. 날것에 대한 매력이 또 있는데 말이지....... 그런 느낌을 다소 잃어버린 거 같아. 그래서 이번 글은 좀 날려 보려고 해.



저자는 나와 동향에 중/고등학교 동문이야. 지역이기주의가 적폐청산의 과제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는 이 시기에 그런 게 뭐 언급할 거리가 되나 싶을 테지만, 그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거든. 지역 신문 문화란에서 '지역 출신 아무개가 책을 냈다'라는 소식을 접한 탓이지. 저자는 16년도에 더민당 후보로 우리 지역 총선에 출마했었는데, 안타깝게도 낙마의 고배를 마셨어. 이 동네가'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기존에 있는 사람 밀어주는 관행이 워낙 확고해야 말이지. (하핳)


근데 이분은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학자의 마인드에 가까워. 학자가 정치인이 되면 너무 정직을 추구해서서 망하는 경우를 우린 숱하게 보아 왔잖아? 대표적인 예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있는데, 이분이 실상 언플로 망했거든. 관련 부처 공무원인 울아부지 증언에 따르면 학자, 행정가로는 상당히 훌륭한 분이었다고 해. 대중 일반에 이런 부분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무척 안타까운 사실이야. 하여간 정치를 하려면 다소간 꾼 기질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 김윤태씨 역시 그런 건 갖고 있지 않아 보여.



아무튼 이 책의 핵심 의제는 '보편적 복지 국가'야. 우리 사회에서 보통 복지를 얘기 할 때면 그건 '선별적 복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야. 보편적 복지를 얘기하면 '아니 거 xx 다 퍼주면 국가 재정은 어떻게 하냐고!' 내지 '공산주의 빨갱이' 라는 식의 비생산적인 오명을 듣기 십상이지. 그래서 이 책의 두번째 핵심 주제가 바로 '공정한 증세'야.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이고, 철저히 공정하고 효용적인 세제가 필요하다 이거지. 그래 맞아. 이 책은 우리나라의 세제가 주로 부자들의 편의에 영합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이 부분은 거의 다들 동의하리라 생각해. 요컨대 공정한 증세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 국가가 답이라는 거야.



이 책의 주요한 특징은 하나 더 있어. 바로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얘기한다는 거야.  대표적으로 능력주의, 엘리트주의, 낙수경제학, 개인주의 심리학 등을 말하는데 이걸 보면 여하한 정파적인 편향은 취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어. 보통 베츙이들이 진보인사들을 노빠라고 낙인찍고 졸라게 까잖아. 근데 이분은 학자적 스탠스에서 참여정부를 가차 없이 까고 있어. 참여정부가 실상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였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지.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표방했지만 경제 씽크탱크에 주류 기득권 경제학자들이 앉아 있던 게 문제라면서 경제 개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야.



맞아. 이 책의 핵심은 결국 '경제개혁'이야. 그게 이 책에서 제기하는 '불평등'을 타개할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지. 하지만 불평등이라는 명제가 그리 귀에 안 들어오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저자는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폐해를 주장해. (이 부분은 책에 나온 내용은 아닌데) 가령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를 보면 미국 3억 인구중에 5천만이 의료보험이 없다고 해. 그 사람들은 아프고 병이 나면 민간요법에 의지하거나 무당을 찾아가. 이건 미친 짓이야. 사회적 완충재가 전무하다는 건 국가의 폭력에 다름 없는 거지. 여하간 사회적 불평등을 타개하는 것이 보다 건강하고 효능적인 사회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이야.



복지국가는 소득 분배의 평등보다 사회적 평등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사회적 평등에 관한 이론적 작업을 시도한 학자는 런던정경대학 사회학 교수였던 토머스 마셜T.H.Marshall이다. 1950년대에 출간한 <시민권과 사회계급Citizenship and Social Class>이 대표적인데, 이 책은 마셜의 관점에 따라 현대적 의미의 평등을 주로 '사회적 평등'의 관점에서 사용한다. (...) 마셜은 이 시기에 등장한 '시민권citizenship'의 개념에 주목했다. 시민권은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가지는 지위'를 의미하며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셜은 사회권이 '절대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리고 말하며 '그 위에 불평등의 구조가 만들 수 있는 평등의 토대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p.200) 

저자는 또한 사회적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얘기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을 언급하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야.



흥미롭게도 한국의 제헌헌법(1948)과 현행 헌법(1987)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제헌헌법의 초안을 만든 유진오는 <헌법해의>에 "우리나라 헌법은 다른 민주국가와 같이 정치적, 법률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라고 적었다. 2002년에 헌법재판소도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로 설명했다. "사회국가란 한 마디로,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이다." (p.222)


그런데 나는 이 사회학자의 진단을 포장할 수 있는 더 세련된 수사rhetoric가 필요한 것 같아. 이 지점에서 나는 저자가 트렌드를 좀 읽을 필요가 있었어야 한다고 보고. '불평등이 문제다' 보다는 '보편적 복지가 왜 나쁜가?' 정도의 제목만으로도 적당히 핫했을 거야. '아프지 않는 사회' 같은 느낌으로. 물론 이 책이 약팔이에 그칠 요량이 아니라면 수사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사회적 평등 이데올로기를 탄탄하게 뒷받침할 정치철학이겠지. 이 지점을 고민해야 할 때야.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자유시장경제의 인간소외가 정점을 찍어가고 있는 이때 국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지고 있어. 이를 선도할 정책의 핵심이 보편적 복지 국가, 소득 주도 성장, 사회적 평등, 공정한 세제라는 것은 자명해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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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랑일랑 2018-02-0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든 대충 포장하긴 했는데 사실 그렇게 막 친절한 책은 아니다...ㅋㅋ
 
음악에 관한 몇 가지 생각 곰의 눈 푼크툼 1
니콜라스 쿡 지음, 장호연 옮김 / 곰출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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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래의 클래식 꼰대주의를 비판하며 음악비평의 새로운 물결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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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이용마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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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기자 출신으로 이제는 명실상부 MBC의 사장이 된 최승호씨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용마 기자는 그저 이름 없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이 분이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도. 하지만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때 '타성에 젖은 386세대의 그저그런 안일한 담론이 또 한 편 나왔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던 내가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보자고 한 건 아이러니다. 이번 달은 정치/사회 분야 도서를 읽기로 했는데 후보로 나온 책들이 별로 시의성이 없어 보여서 제시했던 거였다. (최근에 나온 관련 도서들 중에는 지역 도서관에서 제일 많이 소장하고 있었던 탓도 크다)


처음에는 내 시니컬한 생각이 적중한 듯 했다. '아 예, 그래서 존나게 잘난 시절을 보내셨군요.' 하다가 계속 읽다 보니 이사람 역시 나와 같은 반골기질, 비타협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의지표현이고, 결국 이 책은 그러한 삶의 증언이다.


사실 '적폐청산'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의제가 맞다. 가장 대표적으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일개 세력가들이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하려 드는 관행이다. 우리 지역만 해도 공무원들이 적당주의에 빠지는 건 다반사고, 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걸 보면 근대국가는 허상이고 조선은 아직도 망하지 않은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적폐청산이라는 건 정치적인 개혁만으로 바뀌지는 않을 거다. 제도개혁이 이루어지면 공무원들도 그에 발맞추어 따라갈 수는 있겠지만 이건 보여지는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실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다 오랜 기간 싸워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노사간 불평등, 군대문화, 기득권의 부패, 연고주의, 적당주의 등 이 사회에 뿌리 박힌 관행을 모두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그 어려운 일을 이런 사람들이 자꾸만 해내려 드는 것 또한 맞다. 슬픈 일은 이런 일이 작금의 청년 의제와는 시의성이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거다. 역시 우리는 경제성장이 더 중요한 의제랄까.


노통은 여기서도 까인다. 노통에 대한 신화화를 이제는 버릴 때다. 아마 10년 정도가 지나면 노통은 우리나라 리버럴의 흑역사 내지 볼드모트 정도로 취급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그런데 참 그것도 기구한 운명이다. 리버럴의 선두주자였는데 결코 좋은 소리 듣지 못하는 운명이라는 게. 기구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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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의 즐거움 - 개정판 매스터마인즈 1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지음, 이희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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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고 싶어서 읽었던 책보다는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들이 많다. 또는 사 놓았는데 그냥 두기 아까워서 읽었던 것들. 글자는 눈에 들어올 리 없었고,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 역시 자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를 쓰고 걸렀던 장르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계발서'였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이 평범한 심리학 도서인 줄 알았다. 외우기 힘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이름과 함께 '몰입flow'은 어디서든 인용되는 개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은 평범한 심리학 도서가 아니었다. 바로 과학적 자기계발서였다. (...)


과학적 자기계발서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바로 '과학적 낙관론'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낙관론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세상은 어차피 기술적으로 진보하고 있으므로 희망을 갖고 살아라. 네가 하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일견 맞는 말이다.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입장이니까. 그러나 과학기술의 진보를 곧바로 사회의 진보로 못박을 수가 있는가? 이는 과학이 인간의 가치판단에 개입할 수 있다는 비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요컨대 과학의 진보를 종교적 믿음처럼 수용하기 이전에 우리는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맹렬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서 성공, 긍정, 열정 같은 류의 주장을 원색적으로 경멸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소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는 충고를 보고 저자가 주장하는 개념은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주로 과업 수행중에 나타난다. 잠을 자거나 세수를 하며 몰입하는 사람은 없다. 일중독자의 삶이 가치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궁극적 목표로 '행복'을 쉽게 얘기하곤 한다.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는 수사는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행복은 수반되는 것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저자는 '몰입하는 삶'을 살면 행복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한다. 이렇듯 행복을 수반개념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내 견해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지점도 있다. 궁극적인 목적에는 차이가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충고는 데일 카네기 이래로 미국발 자기계발서가 주요하게 지적하고 있는 특징 중 하나다. 저자는 좋은 인간관계가 성공한 인생에 있어 필수불가결하다는 식으로 조각가 니나 홀턴의 말을 인용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가지고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이따금 찾아오는 동료 예술가로부터 "당신 생각은 어때?" 이런 질문도 받아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종의 피드백이 있어야 한단 소리다. 죽어라고 한 자리에 붙어있는다고 해서 일이 잘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가서 자기를 드러내야 할 때는 연고라는 것도 있어야 한다. 화랑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내 분야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한다. 거기에 속하고 싶건 속하고 싶지 않건 간에 어떤 동질적 세계의 일원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p.128)
심지어는 '바보'가 혼자 있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idiot라며 극딜을 넣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정말 왜 혼자 있지 않아야 하지?


또한 의문이다. 왜 나는 그토록 자기계발을 혐오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조차 하나의 핍진한 엘리트주의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이 자기계발에만 몰두하게 되면 개혁이나 혁명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 경계하는 느낌으로. 그런데, 개혁과 혁명을 논의하기 이전에 인간은 진정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었나. 오히려 자유로운 자아상은 몇몇 소수만 누리는 전유물이 아니었던가. 상담심리학의 모토가 그것 아닌가.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 결핍을 극복하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지식사회의 위계가 자기계발논리를 수용한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지식인의 구도로 양분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전자가 미들브로우, 지적 중산층이라면 후자는 엘리트로서. 아무래도 전자는 의식의 반전을 겪은 경우가 많을 테니 자기계발논리에 보다 친화적일 테다. 후자는 어쨌든 그게 '잘못 되었으니까' 까내리는 데 주력할 것이고. 강준만이 지적했듯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기가 하는 건 괜찮고 남이 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식의 태도는 필견 잘못된 것일 터이니.

이 책은 소위 말하는 '꿀팁'에 가깝다. 그러나 꿀팁만으로 가치판단을 할 수는 없다.

자아상에 대한 성찰에서 얻어갈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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