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마이 투마이 - 차노휘 두 번째 소설집
차노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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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마이란 2001년 차드의 주라브 사막에서 발견된 영장류의 두개골 화석으로, '투마이'는 그 지역 원주민의 언어로 '삶의 희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소설집 대표 제목을 정해야 했을 때 자연스럽게 한 번이 아닌 두 번이나 '투마이 투마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니까 '투마이 투마이'는 표제작의 제목이 아닌 소설집의 모든 소설을 아우르는 단어인 셈이다. 나는 '투마이'에 대한 설명을 작가의 말에서 읽었을 때 당연히 이 책이 삶의 희망에 대해 노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느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 소설집의 소설이 대체로 음울하고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왜 투마이가 두 번 들어감으로써 강조한 것은 삶의 희망이 아니라 삶의 희망을 소망하는 짙게 깔린 어둠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다 믿어왔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일. 선과 악의 경계가 혼미해지고, 이후의 이야기가 끝없이 상상은 되지만 그것이 해피엔딩인지 혹은 배드엔딩인지 알 수 없는 현실같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 바로 <투마이 투마이>였다. 매우 현실적이면서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이여서 몰입감있게 읽었지만 남아 있는 찜찜함이 계속해서 맴도는 책이기도 했다.

 

총 11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투마이 투마이>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4번째 이야기 '사발'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 그냥 찜찜함이 마지막에 조형래 비평가의 해설을 읽으면서 진득허니 붙어 있는 역겨움과 고통을 느꼈다. 스치듯 읽다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호러 소설처럼 느껴졌다. 그저 읽으면서 넘어갔던 문장 하나하나가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리고 해설을 읽자마자 나는 다시 '사발'을 읽었다. 지독한 소설같았다. '사발'이 발견된 마을에서 있었던 무당과 무당 딸의 죽음, 그리고 도망친 사람들. 주인공 박현진은 그 때의 기억에서 벗어났으나 벗어나지 못한 삶과 인간 관계를 맺었고 결국 끝은 처참했다. 그러나 이유가 있는 죽음이었다. 한편 '사발'을 발견한 김면수의 죽음은 이유가 없는 죽음이었다. 그래서 찜찜함을 남기는 호러 소설이 되었다. 둘의 죽음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귀신이 나오는 호러 소설이 되었는데, 현실 속에서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유를 몰랐는데 해설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알았다.

 

<투마이 투마이>는 대체로 이런 느낌이었다. 현실 속에서 비현실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마무리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 전혀 마무리가 되지 않은 느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 도대체 무엇이 이어지고 남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불쾌감이 들었다. 어디선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것들을 해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읽으면서 한숨을 토해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되새겼다. 참 경계선에서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사람을 흡입력 있게 이끌어가는 소설, 다른 책들도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꽤 들어와서 살았는데 다들 유산을 한다는 거야.

그곳에서만 살면 그렇다는 거지.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면 멀쩡하게 출산도 잘하는데, 거참,

그 마을 곳곳에 돌무덤이 있었다네.

그것은 사산하거나 유산한 아이들의 무덤이라고 하더군.

그 돌무덤을 찍은 적이 있다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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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 씨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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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SKY캐슬>처럼 자식을 서울대로 보내려고 하는 부모들이 많다. 특히 최근에는 아예 헬리콥터 맘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서울대 등 유명대학에 보내기 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 어머니들을 볼 수가 있다. 물론 서울대에 간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사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대에 입학해서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큰 메리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학연이니, 하는 것은 둘째치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를 졸업했다고 하면 꽤나 인정해주니까 말이다. 헬리콥터 맘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란이 있지만 한편으론 헬리콥터 맘이 되지 않으면 아이를 서울대에 보낼 수 없을 것이라는 압박감을 주고야 만다.

아이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서울대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소모하는 어머니. 내가 해주지 않으면 아이가 뒤쳐질 것이라는 불안감. 이런 사회 문제는 점점 더 커지기만 할 뿐,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모두 다 문제임을 알고 잇으면서도 그러지 않는 이들을 압박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런 헬리콥터 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다. 우주 최강 꼴통인 자신의 아들 고영웅을 어떻게든 서울대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마순영 씨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서울대 나라의 헬리콥터 맘 마순영씨>이 바로 그 소설이다.

소설은 고영웅이 서울대를 자퇴하면서 시작한다. 조금 파격적인 시작이지만 마순영 씨가 지금까지 한 노력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 자신의 아이를 전혀 모른 채 서울대로 보내기 위해 급급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일 것이다. 그리고 자퇴 소식을 들은 마순영 씨가 쓰러지고, 지금껏 고영웅을 서울대로 보내기 위해 노력했던 고군분투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공부를 무척 잘했지만 너무 가난해서, 흙수저라서 대학을 그만둬야 했던 마순영 씨는 어떻게든 흙수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서울대를 맹신하는 인물이다. 대한민국에서 공부의 최정점에 있는 서울대에 아들 고영웅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마순영 씨.

문제는 아들 고영웅이 엄청난 천재거나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었다는 거다. 마순영 씨는 아동학대와도 같은 행동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미친 듯이 공부를 시킨다. 고영웅은 무척 착한 아들도 아니었고, 반항도 하지만 결국 엄마 마순영 씨의 뜻대로 서울대에 입학한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난 뒤의 이야기는 아주 짧게 고영웅을 통해서 나온다. 차라리 대학에 입학하기 전 엄마가 하라는 대로 했던 때가 더 좋았다고 말이다.

그리고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이 모였지만 결국 그들을 가르는 건 집안의 '돈'이라는 것을. 고영웅은 엄마 마순영 씨에게 알리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위한 결단을 내린다. 스스로 마순영 씨의 굴레를 벗어던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믿는다. 지금은 화를 내겠지만 언젠간 엄마가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고영웅의 인생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아무리 마순영 씨가 노력했다고 해도 서울대에 입학한 실력이고, 그곳을 자퇴한 결단력이 있으니 문제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언젠간 이해하겠지만 자신의 수년간의 노력이 헛되어져 버린 마순영 씨랄까. 기나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없이 아들에게만, 아니 아들의 공부와 성적에만 몰두한 마순영 씨의 행적은 가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거기에는 사랑과 애정이 기반이 되어 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아들을 공부 시킨 것이지만, 보는 내내 너무 심한데 싶었다. 이 대한민국에서 서울대라는 곳이 주는 메리트도 분명히 있고, 서울대 입학이 무척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정말 헬리콥터 맘은 이 정도로 노력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아이를 미친 듯이 학원에서 보냈던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돈 아니었던 것 같아서, 내가 헬리콥터 맘에 대한 정의를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드라마 <SKY캐슬>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것 같았다. 한편으론 이 소설이 과장되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현실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씁쓸했지만 이게 현실이겠지. 어쩌면 소설보다 현실이 더 심할 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티비 속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를 보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부디 이후 고영웅과 마순영 씨의 삶은 조금 더 행복하기를.


서울대는 고영웅의 목표도 꿈도 아니었다. 고영웅은 단지 엄마가 어릴 때부터 서울대, 서울대 노래를 부르니 당연히 서울대 아니면 다른 길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만약 스스로 결정해서 대학에 갔다면, 고영웅이 원했던 학과 공부였다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몰랐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고, 감옥 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서울대 자퇴, 그것만이 엄마와 자신 사이에 연결된 탯줄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한 인간으로 똑바로 설 수 있는 길이었다. -p.372

고영웅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던 광경을 떠올렸다. 모든 병아리가 제힘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화한 알 중에는 인공 파각을 해서라도 밖으로 꺼내 살려내야만 하는 꺼꾸리도 있다. 엄마는 알 속의 세상만이, 맨 꼭대기에 서울대가 있는 이상한 나라만이 유일한 세상이라고 믿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는 길인 줄로만 알고, 아이를 위하고 잘 키우는 길인 줄 알고 잘못 들어섰던 길이, 헬리콥터 맘이란 이상한 길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서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엄마가 안에서 못 깬 껍데기를 아들이 밖에서 깨뜨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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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오래가는가 -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
문성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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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하고 있다. 우리팀의 팀장이신 차장님이 출산휴가에 들어가시고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배는 이미 한참 전에 이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일을 도와주던 다른 팀의 몇몇 분들도 슬슬 이직을 고려하시는 것 같아서 최근엔 조금 신경이 날카롭다. 나는 이 회사에 꽤 오래 있었고, 사실 회사를 그만둬야지싶어도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쉽게 말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에 새로운 분이 입사하시고 내가 지금껏 배워고 따르고 존경하던 팀장님과 전혀 다른 페이스로 일을 해서 솔직한 심정으론 도대체 이게 뭐지, 왜 일을 저렇게 처리하지? 싶은 마음이 강하다. 누군가는 상사마다 다르니 네가 유연하게 대처해야한다고 하는 데 나는 왠지 내가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직한다고 해서 나와 맞는 상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왜인지 지금이 적기인 것 같단 생각이 많이 들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오래 다녔던 회사인 만큼 쉽사리 옮길 수는 없고 나는 자연스럽게 상사와의 관계 개선을 생각했다. 그래서 접한 책이 문성후의 <누가 오래가는가>다. 회사와 동반성장하는 인재들에게는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다는 표제와 함께 보스와 통하는 47가지 직장병법을 소개한다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자기계발서에는 딱히 흥미가 없지만 현재 나에게 나름대로 길이 되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나처럼 중소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에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전제는 내 위에 상사가 꽤 많아서 상사의 상사, 이런 경우까지 쭉 닿는 경우가 많지만 대체로 중소기업은 사원, 대리급보다 차장, 부장급이 많고 바로 위에 팀장 또는 대표만 있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경우 사실 사내 정치라고 하는 것만 잘 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샤바샤바하지 않아도 일만 잘하면 평가가 나빠질 이유가 거의 없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만큼 나를 피력하는 데 생각만큼 문제가 없다. 가장 큰 문제라면 나와 같이 있는 상사나 나처럼 위에 상사가 있어 같이 일을 해야 하는 몇몇 경우에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보스들이나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없다.

더욱이 여기에 등장하는 방법은 글쎄, 나는 딱히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지 의문이며 저런 경우 그냥 과감히 회사를 나오는 편이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한 회사에 오래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돈이나 공부 때문인 경우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 때문인 것도 있고 요즘 애들이 인내심이 없어서인 경우도 많고. 여하간 다양한 이유로 그만둔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상사에게 맞춰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다들 그냥 회사를 나오는 길을 택한다. 요즘 현대 사회에서는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힘들게 들어간 대기업도 몇년 안다니고 이직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은 그다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알아두면 좋은 내용들이 있다. 해고 신호를 느낀다거나 기본적인 관계 유지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 옷을 깔끔하게 입고 상사와의 대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말을 꺼내고 답변 하는 것이 좋은 지. 왜 이렇게 까탈스럽고, 일하는 데 일만 잘하면 되지 뭐 이렇게 할게 많아,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쉽다면 맨날 상사를 욕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생각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상황에 맞추어 적용할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지만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편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상사가 나와 잘 못지내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면 한번쯤 뒤적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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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감정의 심리학
유은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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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는 분명 잘해주고 헌신했는데 상대는 그런 내 헌신을 당연하다 받아들이며 돌려주지 않을 때. 흔히 말해 GIVE & TAKE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말이다. 처음엔 뭐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 라며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혹시 내가 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 화를 내지 않을까? 부터 시작해서 도대체 왜 나에게 나만큼 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들. 혹자는 상대에게 너무 기대를 해서 문제라고 하지만 관계는 평등한 데 어째서 나만 '을'이 되어야 하는 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연인 관계 뿐만 아니라 친구와 사회 관계 그리고 가족 관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런 서운함과 속상함을 숨기려고 아등바등하고 이 때문에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는 현실. 아마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계속 그럴 테지만 언젠가는 이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리 수많은 심리학 책을 읽어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관련 책만 있으면 탐독하게 되는 것.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알려주었으면 하는, 실제로 해결 방법을 알아도 쉽게 하지 못할 자신을 알면서도 구하게 된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도 비슷한 뉘앙스의 책이다. 책 제목에서부터 포스가 느껴졌다. 읽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책 또한 나에게 엄청난 반향을 주지는 못했다. 지금껏 나왔던 이야기의 반복처럼 느껴졌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담백하고 솔직하게 상황을 전달하라(P.37)거나 원망에 앞서 욕구를 전달하려는 노력부터 해보자(P.52)거나 하며 이야기를 하긴 하는 데 그렇니까 그 담백하고 솔직하게 상황을 전달한다는 기준이라던가 욕구 전달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안다. 이런 것 쯤은 대충 읽다보면 알 수 있어! 라는 것을.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하는 욕구 전달 방법이나 담백하고 솔직하게 상황 전달을 해보려고 시도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문제는 대체로 실패했다는 거지. 그런 나에게 이 해결방법들은 너무 뜬구름 같았다. 막연하게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었던.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책은 내 상처입고 스트레스 받은 마음을 박박 긁어준다.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지만 놓쳤던, 그 누구보다 내 자신을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너는 잘못된 게 아니라며 토닥여주기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결핍과 비교 심리 등에 대해서 살아온 환경이 다른데 왜 같아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으로 내가 지금껏 맞다고 생각한 수많은 사실을 파괴해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아,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읽었다. 해결 방법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아마 계속해서 실수하고 아파하며 그 방법을 찾아가겠지만 조금은 더 당당하게 내가 무언가 해보려고 했다가 받은 상처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바로 이것이다.


존재 증명을 위해 명문대 또는 대기업에 들어가고자 하는 우리나라 청년들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존재 증명을 위해 진로를 계획하는 청춘을 '생각 없는 놈'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가족들에게 잘 보이려고 입사원서를 쓴다니, 너는 꿈도 없니?"

"청춘이 줏대도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성장의 씨앗을 꼭 자신이 살아온 환경 밖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냐고. 가족에게 자랑스럽고 싶어서,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진로를 계획하는 게 속물스러운가? 세속적인가? 만약 위와 같은 비난에 위축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선택의 이유가 무엇이든, 선택했다면 자신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라." -P.260


'꿈'이라는 단어에 꼭 '열정'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정신과가 너무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싫지 않았고, 잘할 자신이 있었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잘하는 일을 해야 지속적으로 '덜 힘들게'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과 설렘'이라는 판타지를 버려라. 꼭 가슴이 뛰고, 이 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꿈만이 꿈이 아니다. 싫지 않고 본인이 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훌륭한 목표고, 꿈이다. 잊지 말자. 누군가에게는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평생 꿈인지도 모른다. -P.256~257


나의 꿈은 역사 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뒤 나는 취직을 해야겠다. 라는 목표를 세웠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분명 나는 대학원에 가서 역사를 전공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었는 데 말이다. 지금도 나의 꿈은 역사 학자다. 가끔은 대학원에 가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대학원에 갈 줄 알았는데, 라고 아직도 이야기한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까지 쭉 역사학자를 꿈꿨고, 내 부모님들도 그 꿈을 지지해줬다. 여전히 가끔 대학원 안 갈래? 라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그것은 내 꿈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내 꿈이지만 내 성격 상 앉아서 책을 뒤지고 연구하는 것을 못 견뎌함을 안다. 지금 일이나 연구나 별 차이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의자에 앉아 있더라도 엄연히 다른 법이다.


나는 지금 이 일에 가슴이 뛰고 이 일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진 않지만 내 목표를 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살 수 있는 만큼 돈을 벌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내고, 하루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고 있으니까. 가끔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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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산 형사 베니 시리즈 1
디온 메이어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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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9개국 장르문학상을 휩쓴 '디온 메이어'의 작품으로 스웨덴 범죄소설아카데미가 선정한 최우수 범죄 소설상을 수상한 <악마의 산>은 마흔 살이 되도록 경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알콜 중독자 그리설 베니 형사와 콜걸 크리스틴, 사랑하는 아들을 범죄자에게 빼앗기고 복수를 하는 토벨라 세 사람이 하나의 사건에 다양하게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목차는 크게 크리스틴, 베니, 토벨라, 칼라 등 <악마의 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제론 이들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있다. 크리스틴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토벨라나 베니의 이야기로 휙휙 뒤바뀐다. 각 주인공의 시각대로 하나씩 모아놓았으면 참 보기 편했을 텐데, 싶은 생각도 솔직히 들지만 세 사람의 시각이 연신 바뀌면서 쉽게 책을 놓을 수 없게 몰입도를 높여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에 어떤 식으로 세 사람이 얽혔는 지, 세 사람이 모르고 있던 사실과 진실이 난무하면서 뒤로 갈수록 소름이 끼치고 씁쓸해진다.

그건 아마도 <악마의 산>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책은 콜걸인 크리스틴이 목사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그곳을 빠져나오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각조각 나버린 그녀의 대화가 토벨라와 베니의 시점에서 흘러가는 이야기와 함께 하나의 완벽해진 이야기로 재구성되면서 무엇이 정의이며, 어떤 방법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인지에 대한 의문을 만들어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종 차별부터 마약, 강간, 소아성범죄 등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빤히 일어나는 사건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찰의 민영화와 실적주의가 만연해지면서 수사 절차가 규제되고 부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것은 또다른 문제를 낳고, 사라지지 않는 범죄자들과 경찰들에 의해서 풀려나는 범인들, 그리고 그들을 잡으면서도 놓아줄 수 밖에 없는 경찰들까지. 가난과 다양한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기껏해야 6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책에 나온 모습 외에도 어떤 다른 문제가 있을까?

<악마의 산>은 베니 형사 시리즈의 첫번째라고 한다. 그리고 이미 숀 빈 주연의 3부작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소설의 이 소름끼치는 현실이 어떤 식으로 묘사될런지, 궁금해진다. 얼른 다음 시리즈를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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