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어릿광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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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7번째 작품 <허상의 어릿광대>는 "현혹하다", "투시하다", "들리다", "휘다", "보내다", "위장하다", "연기하다" 총 7편의 연작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는 탐정 갈릴레오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데이도 대학 물리학 교수 유가와 마나부와 그의 친구이자 경시청 형사 구사나기 콤비물로 구사나기 형사가 난제에 부딪쳤을 때 유가와 교수가 물리학적인 지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용의자 x의 헌신>이 가장 유명한데 공교롭게도 나 또한 이 시리즈를 제외하면 한 번도 이 콤비를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출간하는 작품 수가 많다보니 놓쳐버린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시리즈 물 중 가장 많은 작품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2012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9년 만에 한국에 출간되었지만 생각보다 옛 것의 느낌은 없다. 다작을 하는 만큼(글공장 수준이다) 퀄리티가 복불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거의 다 좋아한다. 일단 가독성이 좋은데다가 몰입도가 꽤 높다. 트릭이 다소 엉뚱하거나 모순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범인을 맞추는 경우가 많지 않고 맞추는 경우도 동기나 살해 방법은 전혀 맞추지 못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실제로 크게 모순점을 알아차리거나 하지 않다.


다만, "거의" 란 단어를 썼을 만큼 안 좋아하는 작품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용의자 x의 헌신>은 꽤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논란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가와 교수와 구사나기 콤비가 영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이유는 까먹었지만 그 뒤로 찾아 읽지 않게 된 건 아마 이 때문일 텐데, 이번에 <허상의 어릿광대>를 읽으면서 새삼 괜찮겠다 싶었다. 이후에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를 찾아 읽을 예정이다.


각설하고, 살인 사건이 계속해서 등장하지만 생각보다 무게감이 있는 소설은 아니다. 조금 불편할 수는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단편이라서 사건 해결도 빠르고, 기본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많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가독성 높은 필체도 한몫해서 속도감과 몰입감이 상당했다.


흥미있게 읽은 작품은 "투시하다"와 "위장하다"였고 특히 "위장하다"는 의외로 유가와 교수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서 놀라웠다. 뭐 살인범이 아니였기 때문이겠지만서도, 전체적으로 따스함이 넘쳤다. 좀 오싹하다 생각되어진 건 "들리다"와 "연기하다"인데 특히 "연기하다"는 범인(이라고 해야할까)의 동기에 놀랐다. 그러는 한편 조금 하나에 미친 사람은 이럴 수 있구나 싶고, 하긴 그러니까 그런 관계를 맺었겠지, 싶은 마음도 들고. 언급하지 않은 작품들도 오, 하고 살짝 놀라면서 계속 읽었는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단편 소설집이었다.





"현혹하다" 구아이회라는 종교에서 마음의 정화를 위한 종교의식 중 간부 한 명이 자살한다. 이에 교주 렌자키 시코는 자신이 너무 강한 염을 보내서 간부가 창밖으로 떨어진 것이라며 살인을 고백한다.


"투시하다" 오랜만에 구사나기가 유가와를 이끌고 긴자 클럽 '하프'에 간다. 그리고 구사나기는 그곳에 있는 호스티스 중 투시를 하는 아이모토 미카를 유가와에게 소개하는 데, 몇달 뒤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들리다" 병원에 들린 구사나기는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막다가 칼에 찔려 입원하고 이 사건의 담당자로 과거 경찰 학교 때 친구였던 기타하라 신지가 등장한다. 한편,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 계속해서 환청을 듣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구사나기는 일전에 본인이 맡았던 사건을 떠올린다.


"휘다" 스포츠 센터 주차장에서 도쿄 엔젤스의 야나기사와 다다미사 선수의 아내 야나기사와 다에코가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범인은 이내 밝혀졌지만 다에코의 비밀은 계속해서 남아 있다.


"보내다" 쌍둥이 언니인 이소가이 와카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며 미쿠리야 하루나는 고모 미쿠리야 도코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이후 집으로 향한 남편 이소가이 도모히로와 야마시타가 쓰러져 있는 와카나를 발견해 신고한다. 이에 수사를 시작하고, 어떻게 사건을 예측했느냐는 질문에 하루나는 텔레파시 이야기를 한다.


"위장하다" 대학시절 친구이자 읍장이 된 다니우치 유스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호텔로 가던 구사나기와 유가와는 갑작스럽게 타이어가 망가져 수리를 시작한다. 그 때 비가 오기 시작하고 그 모습을 본 한 여인이 그들에게 우산을 건네준다. 그리고 결혼식 피로연이 끝난 뒤 근처 별장지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게된다.


"연기하다" 예술가 고마이 료스케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된다. 같은 극단 소속 배우이자 각본가인 간바라 아쓰코는 그 칼이 극단 소도구인 것 같다며 증언하고 고마이 료스케의 연인 우쓰미 가오루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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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 내가 나에게 준 최고의 선물
김수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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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관련된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되었다. 최근 2년 동안은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이전보다 확실히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는 경우가 적어진 것 같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꽤 많은 루트가 있는데 그 중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프랑스의 길(Camino Frances)'가 있다. 이 길은 가톨릭에서 영적인 길로 인정받고 있어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맨 처음 순례길로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Camino>는 2019년 4월 29일부터 6월 3일까지 36일간 이 길을 걸으면서 보고 느낀 감정들을 직접 찍은 사진들과 함께 적어내려간 책으로, 저자는 직접 찍은 사진들로 최근에 성남 시청 2층 공감 갤러리에서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책과 예능, 다큐멘터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묵묵히 앞을 향해 걸어가는 것.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지만 외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두려움도 있고 긴 시간을 휴가 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언제나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 당장 떠나는 것이 좋다는 조언들을 보기는 하지만 실상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힘들 것이라는 게 명확하지만 전자기기와 멀어진 상태로 그저 앞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것.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긴 시간을 걷다 보면 나를 변화시킬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직접 그 곳을 걷기 전에 조금 더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어서 책을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찾아본 적이 없다. 일단 너무 양이 많고 정리되지 않으며 핸드폰과 영어 실력만을 믿고 훌쩍 떠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가끔 책을 보지만 거기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준비 사항에 대해서는 크게 적혀 있지 않다. 기껏해야 알베르게에서 지켜야할 수칙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지만 대체로 무엇을 보고 왔는지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에 좀 더 초점을 맞춘 여행 에세이가 많아서 저자와 나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곤 한다.


그에 반해서 <Camino>는 어느 정도 순례길 준비 사항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으며 저자의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순례길을 걸으며 수많은 관광지를 설명해준다. 관광지를 가기 위해 들린 것이 아닌 오직 순례길을 걷다 발견한 유적들이지만 저자는 꼼꼼히 사진과 함께 기본적인 설명과 본인의 느낀점을 곁들인다. 그러다보니 내가 직접 저자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아, 이 길을 걷다 보면 이러한 풍경과 유적들을 볼 수 있구나. 좀 더 현실감있게 산티아고 순례길의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약 한달간 약 800km의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이유는 다를 테지만 다들 걷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걷기 위해 가는 거지만 단순히 기계적으로 걷기 위해 방문하는 것은 아닐 테다. 놀기 위해 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걷기 위해 가는 것도 아니다.


순례길이 순례길이라고 불리우는 요소에는 분명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번뇌하는 과정도 하나겠지만 순례길에 늘여져 있는 아름다운 풍광과 그 길을 이전에 걸어간 사람들의 증거물들을 되새김질해보는 과정도 있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야고보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자신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다소 무겁고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다. 특히 나는 내가 기독교인이라고는 이야기하지만 믿음이 엄청 강하거나 종교 활동에 몰입하는 편은 아니여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주는 이미지가 부담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Camino>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저자의 사진과 글을 보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볍게 그러나 분명 의미있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냥 여행지 트레킹을 간다는 생각으로 좀 더 가볍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는 건 어떨까.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과 더불어 그곳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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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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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미 시의 명문가였던 니레 가문의 당주 이이치로의 오칠일에 데릴사위이자 새로운 당주 니레 하루시게를 비롯한 가족들이 모여 법요식을 치른 후 얼마 되지 않아 하루시게의 부인 사와코와 양자이자 몇년 전 사망한 니레 가문의 첫째 아들 니레 이쿠오의 아들 니레 요시오가 비소를 먹고 사망한 채 발견된다. 범인은 그날 법요식에 참석한 인물 중 마지막까지 저택에 남은 가족들 뿐. 경찰은 빠른 대처로 니레 하루시게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처음엔 부정하던 니레 하루시게는 죄를 인정한다. 죄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점이 참작되어 무기징역을 받고 40년 뒤 가까스로 가석방이 된 니레 하루시게는 니레 이이치로의 둘째 딸인 니레 도코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에서 하루시게는 자신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함께 있을 적 추리 소설을 탐독했던 니레 도코에게 함께 범인을 추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며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고 니레 도코는 기뻐하며 함께 추리를 시작한다. 과거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있었으나 가문의 독재자이자 딸들은 그저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이이치로에 의해 연을 맺지 못한 둘의 관계가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이 과정에서 니레 도코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러면서 끝내 하루시게와 도코는 범인을 찾아내고 얼마 뒤 동반자살을 한다. 그러나 하루시게의 변호인이자 친구였던 기시가미는 형사과장 마키무라 가즈히로에게 이 동반자살의 의혹을 재기하면서 사건은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기만의 살의>는 사건 발생 당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루시게와 도코의 주고 받은 편지 5통 그리고 동반 자살 이후 기시가미와 마키무라의 이야기 총 세 가지 구성을 취한다.


사건의 증거와 증언은 이미 충분히 처음에 공개되어 있다. 추리를 하는데 있어 하루시게와 도코와 같은 상황으로 시작되지만 하루시게와 도코의 주장은 모두 옳다. 하루시게의 추리나 도코의 추리나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진다. 몇 가지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긴 하지만 그 때만큼은 추리하는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하루시게와 도코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토로하듯 쏟아지는 감정은 우리를 휩쓸리게 한다. 여기에서 충격적인 진실 하나가 고백되면서 더욱 더 추리의 내용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 감정에 휩쓸려 놓친 증거들은 후반부에 가서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 되어 다가온다. 읽다가 놀라 앞을 뒤적이면 이미 스치듯 아니 명확하게 제시한 증거와 증언들이 보인다. 미키 아키코는 독자도 함께 추리할 수 있도록 많은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제시하지만 미묘하게 등장인물 간의 감정을 조절하여 읽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실상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가? 이 부분에 대한 의심이 증폭되고 도대체 어떤 식으로 범인이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사건은 이미 철저하게 도코와 하루시게의 편지를 통해 분석된다. 여기에 더 이상 무슨 반전이 남아 있는가? 이는 상당히 의심스럽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복선과 트릭을 숨겨놨고 조금씩 회수하다가 마지막에 터지는 진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니레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보다는 하루시게와 도코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죽음 뒤에 살아 숨쉬는 진실이 더욱 흥미롭다.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과정보다 사건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되는 동기의 진실. 처음 제목을 보고 의아스러웠던 내용은 중반쯤 가면서 슬슬 드러났다 마지막에 폭주한다. 정말 내용의 모든 것을 담은 제목이라는 점을 새삼 실감했다. 책을 덮고 제목을 보니 묘하게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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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큐레이터 - 박물관으로 출근합니다
정명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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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장래희망을 박물관 큐레이터로 결정지었다. 대충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일본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직전, 대학교 3학년 1학기까지 변함없던 장래희망이었다.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꾼 이유에는 여러 가지 있었지만, 오랜 시간을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했다. 학예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조사하기도 하고, 실제로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정보가 적어서 애를 먹었고 그러다보니 매우 뜬구름잡는 식으로 큐레이터에 대해서 알아갔던 것 같다. 그래서 19년차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인 정명희 씨가 직접 저술한 <한번쯤, 큐레이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만약 내가 그 시절에 이 책을 접했더라면 나는 내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한번쯤, 큐레이터>는 박물관 큐레이터의 일, 전시 큐레이팅 그리고 큐레이터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총 3장으로 다루고 있다. 흔히 말하는 박물관 큐레이터의 업무에 어떤 것이 있고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박물관 소속으로써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행정 업무 등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막연히 힘들겠군, 전시 기획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상상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내가 너무 안일하게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생각했군,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매력적인 직업이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특히 박물관 안의 수장고에서의 이야기는 내가 꼭 생각했던 큐레이터의 업무 중 하나라서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끊임없는 야근과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겪는 과정 등은 매력을 넘어서 조금은 끔찍하기도 했지만, 저자는 매우 현실적으로 그 과정을 해쳐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책까지 쓰다니 새삼 놀랍기도 하다. 각설하고, 그러는 한편 이 책은 박물관에서 시간여행을 하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이 큐레이터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박물관에도 큐레이터가 있느냐고 수많은 사람들이 묻는 것처럼, 어색하고 아직은 와닿지 않은 직업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삶과 큐레이터의 삶은 무관하지 않으며 우리가 모르는 공간에서 수백명, 수천명의 큐레이터들이 우리의 역사를 보관하고 역사를 보여주는 일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여러 박물관을 순환 근무해야 하는 특성 상 가족과도 떨어져 지방을 오가는 삶을 사는 큐레이터. 누군가는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삶이라 어려운 느낌도 들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과거의 것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상일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외국은 순환 근무는 잘 하지 않지만, 그것이 한국의 역사를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큐레이터의 삶과 업무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책인데 어느 순간 나는 이 책을 통해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박물관을 방문해서 큐레이터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과거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나의 삶 또한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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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 제주에서 찾은 행복
루씨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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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은 역시 제주도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이 막히면서 제주로 향하는 발걸음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나는 제주도를 좋아하지만 차 운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 제주도 여행은 생각처럼 쉽지 못하다. 버스를 타고 다니거나 택시를 타기에는 좀 애매하고. 누군가의 차에 얹혀 여행을 다녀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다행스럽게도 제주도에 대한 책은 아주 많다. 특히 제주도 생활에 대한 에세이는 넘치도록 많아서 제주도가 그리울 때, 제주도 여행이 아니라 그곳의 삶이 그리울 때 꺼내 읽기 편리하다.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도 그러한 맥락에서 시작했다.


현대 민화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동양화가 루씨쏜의 첫 그림 에세이인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은 제주에서의 일상을 글과 자신의 고양이 민화로 담았다. 오랫동안 호주에서 살면서 잠시간 그림을 놓았던 루씨쏜은 다시 한국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특히 제주도의 다채로운 모습을 민화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루씨쏜의 그림들은 파스텔의 고운 색감과 킥보드를 타거나 가방을 매고 움직이는 익살맞은 고양이들의 모습들이 일품이라 그림만으로도 아주 매력적인데 여기에 루씨쏜의 개인적인 제주도 생활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제주도 곳곳을 고양이와 함께 여행하고 쉬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제주도하면 사실 일상보다는 여행이 먼저 떠오르는 데 이 책은 여행과 일상의 중심을 지키면서 제주도에서의 삶을 여행자에서 조금씩 정착해가는 루씨쏜과 함께 제주도를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세이라서 짧은 호흡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글과 관련있는 민화를 보면서 잠시간 제주도에 있는 나를 상상하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문을 만드는 역할을 해준다. 루씨쏜의 일상을 이야기하지만 제주도 여러 곳곳의 모습을 민화와 글로 표현해줘서 일까, 나는 꼭 루씨쏜의 민화와 함께 제주도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다니면서 간접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역시나 민화가 아닐까 싶다. 루씨쏜의 작품들은 이번에 처음 접하는데 고양이와 현대 사회 그리고 민화의 조화는 생각보다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자연을 닮은 따뜻한 한지 위에 파스텔 톤의 민화가 수놓아지고 그림으로써 글로써 제주도를 접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나고 흥미진진하다. 언제쯤 나는 제주도로 훌쩍 떠날 수 있을까. 상상 속의 풍경들이 민화로 내 눈 앞에 펼쳐지는 건 매력적이지만 역시나 직접 내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고 싶다. <고양이 부부 오늘은 또 어디 감수광> 책 한권을 들고 훌쩍 제주도로 떠나 저자의 이야기와 민화 속에 담긴 수많은 이미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이제 나란히 앉아 우리 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함께 만들어온 길이 우리를 더욱더 단단하게 묶어주고 지지해주리란 것을 이제는 안다. 그저 함께 그 꽃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같았다. 때론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혹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는 것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말 한마디 없이도 '내일 더 사랑하자'라고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약속했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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