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그날을 보다”
허남훈 작가의 장편소설<밤의 학교>은 판타지 소설이다. 무대는 현재의 한 고등학교 안,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 화자인 ‘나’에게 온 엽서,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지워지고 없다. 흐릿하게 남은 사연, “저는 내일 항공학교로 갑니다. 선생님, 저는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퍼붓는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대를 오가는 열쇠였다. 영화<2009 로스트 메모리즈> 대동아공영권으로 묶여 100년이 지난 어떤 날처럼, 그렇게 찾아온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 나는 유동하, 친구 기웅이와 은서, 그리고 권기옥 최초의 여성 비행사, 안중근 등 우리가 아는 의사, 열사들이 등장한다. 학교야말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다 함께 모여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을.
학교 현관을 지날 때마다 사진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던 칼,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시선, 수업 시간엔 졸다가 어디선가 들려온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기도..기웅이 통학시간을 줄여보겠다고 가져온 침낭, 열 두 시 오 분 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과거 속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교실을 노크하며 송죽(마쓰타케를 소리로 읽은 것인가)이 나타났다. 과학실로 송죽과 나는 정신없이 달려갔고, 1909년으로 들어왔다. 숭죽은 송죽회라는 단체이고, 숭죽으로 불렸던 소녀는 권기옥이라, 안중근에 관한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권기옥이 달려간 방향에서 어느새 총성, 나를 흔들어 깨우는 기웅, 꿈이었단 말인가, 밤새, 기옥은 일제강점기 시대 독립지사 권기옥이다.
또 한밤이 지났다. 멀리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안경 소년과 책 소년 윤동주의 어린 시절이다. 안경 소년은 동주가 시 대신에 산문을 읽고 있는걸 보다 산문도 읽어라며, 말을 건네고, 윤동주는 응 이제 명동촌을 떠나, 심훈 선생처럼 용감하고 멋진 청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그 순간 3반 교실에서 불이 번쩍였다. 3반 창문 앞에서 본 교실은 야산으로 바뀌었다. 잡은 포로를 풀어주라는 안중근 의사다. ‘나’는 놀랐다. 한밤중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4차원의 새로운 공간, 밤의 교실들이 시공간을 넘어서 내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2학년 8반 교실 부근, 8반 교실로 들어가지 기차역으로 변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불벼락을 내린 그 날, 그 현장이다. 코레아 우라! 를 외치던 나는 러시아군에게 잡혀 감방에 기옥이와 갇히는 신세가,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몰랐다. 그래서 내가 알려주려고 했던 건데...감방 안에 있던 어르신은 헛기침하면서 실제 이토 히로부미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유동하다 수번 2336의, 취조실에서 나를 부른다. 안중근에게 묻는 검사, 이자는 유동하라고 하며 피고인이 통역을 위해 하얼빈으로 데려간 사람이 틀림없냐고, 안중근은 그렇다고 답한다. 꿈이었나 보다...
작가는 말한다. 김구 선생과 유관순은 만난 적이 없지만, 서로 연결돼있다. 밤의 학교 교실은 난장판이다. 을사늑약에서 120년 세월 동안, 어쨌든 매 순간, 매 장면 승리하는 자들에 의해 다시 쓰이는 역사, 같은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그들의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길을 향해가고 있었다. 만주에서 하얼빈에서, 상하이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훙커우 공원에서 그 젊음은 영웅이나 의사, 열사로 존중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애초 바랐던 것은 대한민국의 독립과 안녕뿐이었다. 그 끈기와 버티는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밤이 되면 학교는 역사의 현장으로 가는 과거의 게이트로 변한다. 교실마다 특정 시기의 역사현장으로 이어진다.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처럼 벽장이 과거의 세계로 통하는 문인 것처럼 말이다. 역사소설 속 주인공, 의사 안중근을 비롯하여 이봉창, 윤봉길, 유관순, 권기옥 등 한 획을 그은 이들이 활동하던 그 현장 속으로... 이른바 박제화된 역사를 살아움직이는 현대사회로 소환하여 톺아보려한다. 정의와 역사가 방향을 잃어버리고, 식민지가 당연하다는 논리 속에 우리의 역사적 사실마저 의심하고 조작됐다고(승자의 역사의 역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는 여전히 서술된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입체적인 교양 역사이자, 역사적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후속편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