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김삼웅 지음 / 달빛서가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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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무항산이나 항심이었노라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냈던 김삼웅의 첫 소설인 <네 칼이 센가, 내 갈이 센가>는 너의 총칼과 내 붓, 어느쪽이 센가보자. 신채호 선생의 소설<꿈하늘> 중에 나오는 대목이다. “내가 살면 대적(大敵)이 죽고 대적이 살면 내가 죽나니 그러기에 내 올 때에 칼 들고 왔다 대적아 대적아 네 칼이 세던가 내 칼이 센가 싸워보자.” 


성균관박사로 출사의 길 대신에 처사의 길을 택한 단재(丹齋) 신채호, 먼 조상 신숙주 할아버지와 미관이지만 정언을 지낸 할아버지 신성우의 길을 놓고, 그는 고민했다. 시대가 얼마가 흘렀던 역사의 평가는 따르는 법, 신숙주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기에 단심은 정몽주를 사숙하며 단심가의 단(丹)을 써서 단재라는 호를 썼다. 장지연이 황성신문에서 기자와 주필로 시작한 언론인 생활과 중국으로 러시아로 만주로 떠돌면서도 무항산(無恒産)항심(無恒心) 늘 먹을거리가 없으나 마음은 늘 굳건하게 유지했고, 흔들림이 없이 초인의 힘으로 현실을 극복해왔다. 니체의 말하는 위버메쉬(초인)란 단재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지은이 역시 언론인으로 출발하여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로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 관련 인물을 소개하는 평전 50여 권을 펴내기도, 그는 <단재 신채호 평전>(2005, 시대의창에서 2025.3)과 9권짜리 <단재 신채호 전집>(1995), 몇 편의 논문을 썼지만, 여전히 매워지지 않은 공백을 상상으로 채워넣는 실록 소설로 구성한 것이다. 그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고, 역사적으로 밝혀야 할 독립운동가가 그의 붓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를 보는 우리의 태도는 하루 하루 살기도 벅찬데 내일이며 미래의 기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처럼(레이다르 뮐러<지구는 답을 알고 있었다>(애플북스,2025)) 우리의 역사인식과 태도 또한 이와 같다. 지은이는 단재의 올곧음이 지금에 빛나는 이유를, 기레기가 판치는 언론계, 언론은 무엇이며 언론인이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고,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란 지식인이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다. 들어가는 말만으로도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지식인으로 역사가로, 언론인을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장적, 적귀, 친일배와 독립의 길


요즘 OTT에서 HBO의 <왕자의 게임>을 방연한다. 얼음과 불, 그리고 백귀, 이른바 인간을 잡아먹는 귀신이다. 장적이란 을사오적과 주변 모리배를 일컫는 말이다. 그 중에는 신채호를 성균관에서 추천해 준 신기선도 장귀에 올려놓을 만큼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지식인이기도 했다. 백성이 어리석어서 일본에 나라를 내 준게 아니라 나라를 지켜야 할 지배계층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이다. 처치가 이럴진데 백성 탓을 하는 건 뭐가 잘못되도 한참 될 못된 것이다. 


안중근의 이토히로부미처단을 두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던 단재, 성균관에서 정의와 지식인의 삶을 논하던 동문들의 배국과 친일배의 길, 이 현명한 이들이 정녕 역사의 미래를 모른다는 말인가, 히틀러의 독일, 철학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독일국민이 왜 히틀러를 지지하고 기꺼이 제국주의에 동참했던 것일까, 단재의 말을 빌리면 제대로 된 지식인 열 명만 있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나 독일의 나치즘, 무소리니즘 또한 막을 수 있었을 터,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던 단재는 초대 국무총리로 이승만을 추대하자는 의견에 반대했다. 당시의 임정 분위기는 미국의 기대어 국제적인 지위를 확인하자는 외교론이 우세했고, 이에 적합한 사람이 이승만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단재는 이승만의 미국내 행각을 알고 있던터여서 회의적이었다. 아무튼 이 결정에 반대하여 임정에서 뛰쳐나온다. 





안정복 동사강목과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와 역사관


단재는 안정복의 동사강목을 조선의 유일의 역사책을 꼽았다. 실증과 이론에서 명확하다고 평가했고, 그가 조선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기 전에 모두 필사를 했다. 실제 조선을 떠날 때 필사본 동사강목이 그의 짐 전부였으니... 이회영의 초청으로 베이징에 있을 때, 조선상고사를 쓴다. 동사강목을 옆에 두고 중국의 서적과 무엇이 다른지를 찾아보고, 실제 고조선 강역을 둘러보고 발걸음으로 재어보고, 쓴 글이다. 물론 그의 역사관은 한반도 내로 강역을 규정했던 이들, 특히 김부식의 신라중심의 역사 때문에 고조선의 존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이유라는 지적했다. 친일사학자의 거두 이병두가 말년에 고조선의 단군은 실재였다고, 최상용의<고조선 문명 연구>에서 하얼빈이 아사달이었을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언급했다. 환단고기도 실제였고, 고조선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큰 나라였다고... 


단재는 왜 아나키스트가 됐을까? 


치열한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변했을까?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와 보완관계에 있다고 봤으며, 민족주의의 방편이 아닌 민족주의의 발전 단계로 인식한 것이다. 또한 그는 좌,우 모두를 비판하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단재는 크로폿킨의 <청년에게 고함>을 조국의 청년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다는 대목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류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상호부조의 협동정신으로 나아간다면, 약소국이 보호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국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다. 이런 확신이 들자 무정부주의자 동방 연맹을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다. 




지식기사들, 지식인양하는 이들은 신채호를 세 글자로 또라이라고, 그리고 네 글자로 정신병자로 폄훼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유공자 단재 신채호는 대한민국 사회의 이데올로기의 장벽고 동굴 속에서 아나키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단재를 비방하는 이들의 출신과 사고는 친일배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의 것이라 왜곡하고 일본이 없다면 조선,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그럴 듯하게 펴는 이들에게는 필사적으로 부정해야 한다. 조선상고사마저, 그리고 언론인의 태도 역시도... 

실록소설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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