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 - 살면서 한 번은 읽어야 할 부모와의 관계 정리 수업
가와시마 다카아키 지음, 이정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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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을까?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습니다>는 부모가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은이 가와시마 다카아키 그 역시 경험자다. 부모와 가족관계로 누구에게 말 못 할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이 책이다.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다고, 세상이 어떻게 보든 왜곡되고 혼돈된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다. 


동양 사회, 특히 유학을 종교의 반열에 올려놓고 조상신을 모시며, 삼강의 부위자강(父爲子綱)부모자식사이의 도리를 지키고 오륜의 부자유친(父子有親)아비와 자식 사이의 친애, 세속오계의 사친이효(事親以孝)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TV 드라마 ‘이산’의 한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아비가 부르면 입안 넣어 씹고 있던 밥을 버리고 곧바로 달려간다고, 이것이 부자의 도리이며, 친애며, 어버이를 섬기는 태도라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부모가 밤새 안녕하셨는지 안부를 묻는 데서 조선의 양반은 하루를 시작했다. 가부장 질서의 끝판은 자식도 노예처럼 아비의 소유다. 인격이든 독립체이든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질서는 산업혁명으로 기술사회가 되던 세상이 바뀌고 공화국이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진전됐던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부모와의 관계, 무심한 아버지, 양육을 포기한 어머니, 어느 한쪽이 이미 부위자강과 부자유친의 도를 넘어섰는데, 한쪽이 이를 지켜야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왜곡된 관습의 고착 때문일 듯싶다. TV 드라마 단골 배역, 무능하고 가정을 등한시하며, 자식들에게는 애정과 부모의 도리를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수단으로 삼으려는 캐릭터를, 그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정형화된 나쁜 부모들이 존재한다. 물론 말 안 듣고 사고 치는 자식도 여전히 그 대척에 서 있지만 말이다. 드라마는 이것 빼면 시체이니. 천 편 인류는 적인 대화도 그렇고 설정 자체가 클리셔다. 이것이 동양사회의 미덕?, 분명 고전이나 지혜를 전하는 책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할 선”이 있음을 전제한 내용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됐고, 1장에서는 부모와의 관계는 모두의 숙제라고 보는 지은이, 성인이 되어도 부모에게 묶여있는 사람들, 자녀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잘못된 사고방식, 이것이 가풍이고 전통이라고 믿는다. 뼈대 있는 집안은 본디 그러한가?, 2장 부모는 왜 자녀를 지배하려 드는가? 늘 보는 현상이다. 대리만족 때문인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녀에게 투사하고 위탁하는 부모들, 이들은 정녕 독립된 인격체인가 부모의 부속물이자 소유물인가? 3장.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경계는 필요하다. 가치관, 감정, 책임과 경계를 그어야 한다. 그 방법을 소개한다. 4장. 상처 주는 부모로부터 현명한 거리두기, 5장. 괴로움에서 벗어나 살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그리고 6장. 부모와 관계를 정리한 다섯 명의 사례자들, 최근에 나온 책, 배승아의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연예 심리학>에서도 결혼을 반대한 지은이의 시부모와 결별을 선언한 남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선은 어떻게 그어야 할까, 


아마 이 책의 핵심은 이 대목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자식에 거는 기대, 자식이 부모에게 바라는 것, 이것이 엇나갈 때, 생기는 갈등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이른바 앵벌이형 관계, 결혼을 못 하게 하는 부모, 인간관계를 조정하려는 경우, 죄책감 때문에 병든 부모를 억지로 돌보는 사람들,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 부모들의 전형은 자녀에 대한 불안증이다. 자식이 뭘 해도 못 미더워하여 자식의 선택에 간섭하거나, 자식들을 자신보다 부족한 존재로, 자식의 묵살하고 부정하며, 자식에게 보답을 바란다. 자식은 부모의 깊은 뜻을 몰라준다. 자식 잘되라고 하는 것이지 잘못되라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냐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가 문제라는 걸 모르는 경우다. 자, 이쯤 되면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부모가 나를 부정하기에 나도 부모를 부정하기로 했다고 할까?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죄책감이 들것이다.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지난하다


벽창호인 부모도 있겠지만, 자신이 자식에게 너무 강요하거나 간섭하는 건 아닌지라고 지은이는 심리 상담을 통해서 자신들의 문제를 알아차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 과정은 6단계로, 1단계는 분노다.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 자식에게 화가 난다. 2단계는 실망감의 표현, 자식에게 배신당했다. 배은망덕, 효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서운하다고, 3단계 중재자 투입, 부모는 자식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제삼자에게 이를 호소한다. 제삼자는 자식에게 찾아가 사정을 전해주고 설득하거나 부모가 그랬듯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4단계, 포기, 자식을 원망한다. 5단계, 괴로움, 멀어지는 자식을 보며 강한 상실감을 느낀다. 6단계, 깨달음, 자신의 문제를 마주한다. 이는 단계는 조금 다르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변화과정과도 비슷하다. 이렇게라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 생긴 벽을 허무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지은이가 상담했던 경험으로는 10%가량, 그것도 수년에 걸쳐서다. 1년 이내 단기간에 변화한 경우는 1~2%라고 하니, 


건강한 부모와 자식은 위아래가 없다


새롭게 정립해야 할 과제는 대등 수평관계다. 모두 자립할 힘이 있는 개인으로서 맺는 관계로, 부모의 자립은 자식의 자립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마음이 연결된 사람이 진정한 가족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할 도리를 다하고, 자식 또한 부모에게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사랑은 내림이지 올림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에 “도움”이란 생각을 집어 넣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도움은 관계의 시작이다. 상대를 존중해주는 데서 출발한다. 무조건적 수용은 아니지만, 들어주기라도 잘하면 될 듯싶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 부모를 모시고 있는 데가 아니라 부모의 자립을 도와주어야 한다. 은혜를 갚는 게 아니라 서로 돕고 돕는 관계로서의 정립이다. 일방통행은 없다. 없어야 한다. 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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