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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평점 :
붓다의 소리
단순한 음성, 소통의 도구가 아닌 연기법으로 해석한 지은이, 애초 창조자를 알 수없는 힌두교에서 소리는 존재 형식인 말씀으로 그리고 이를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봤다, 여기서 비롯된 음성은 우주의 궁극인 범(梵, 브라흐만)과 자신의 실체 아(我, 아트만)가 하나가 되어 ‘범아일여’를 추구했다고, 음성 에너지의 효력을 알게 된 사제들은 갖가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며, 민중을 현혹, 신의 대리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누르게 됐다는 설명이 고등종교의 출현과 맞물리면서, 종교+음악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눈을 갖게 해 준다.
이 책은 불교음악에 중심으로 두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붓다의 범음성(梵音, 스님들의 독경이나, 범왕의 음성 등으로 사전에서는 풀이해놓고 있다), 종교음악은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진리 전달 수단이나, 불교의 경우는 종조가 직접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다고, 아무튼 법구경을 붓다의 노래 모음집이라고 할 만큼 운율이 아름답다고 평한다. 붓다의 음성을 범패(梵唄, 붓다 찬미의 노래)이며, 범패의 원음은 붓다의 음성이라고.
이 책의 구성은 2장 10절 체재이며, 1장은 인도, 중국, 한국을 통섭하였다는 주제 아래 인도의 음성행법과 붓다의 범음성, 유교와 도교의 제사와 음악, 속마음이 달랐던 조선의 악정(樂政), 여기서는 세종과 세조의 치세 염원과 불교음악의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을 논한다. 인도의 불교, 중국의 유, 도, 조선의 불교 그리고 한국인의 기질과 음악을 한데 묶어놓았다. 2장은 이슬람, 기독교, 불교로 서역 너머의 세계를, 아라비아와 인도의 만남으로 수피춤, 인류문명과 호모뮤지카, 다르지만 통하는 기독교와 불교음악, 소리를 보고 그림을 듣다 순으로 실려있다. 이른바, 종교와 음악, 이슬람, 기독교, 불교 세계 3대 종교의 소리는 어떻게 기원했는가, 그리고 이들 음악의 특징과 목적은 무엇이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미래의 방향과 모습은 또 어떻게 펼쳐질지, 흥미로운 주제와 내용, 접근방법까지 오랜 시간의 연구 결과가 담겨져 있다.
이슬람 수피들과 처용의 정체
열병신(병을 옮기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불렀다는 처용가는 주술적이다. 이를 두고 처용의 체념과 관용, 벽사진경(나쁜 귀신을 쫓고 기쁜 일을 맞이함) 신라 시대 향가로 시험에 나올 만큼 중요하고 이에 관한 해석 또한 다양하다. 마침 지은이의 “이슬람 수피들과 처용의 정체”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정수일은 처용을 아라비아 상인으로 추정, 처(處), 용(龍)의 훈을 통해 용안(龍?)의 가면을 쓰고 역신을 쫓는 사람으로, 강신항 등은 처용의 어원을 무속신앙의 사제 혹은 차차웅에서 비롯된 액막이 무가로 해석한다.
지은이는 879년 5월 3일 신라 헌강왕이 행차를 하다 울산 개운포에 당도, 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볼 수 없었다. 절을 지었더니 안개가 걷히고 생김새와 차림새가 괴이한 사람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왕 앞으로 나오더니 ‘나는 용왕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그가 바로 처용이라고 설화는 전한다. 처용이 무슬림이었든 아니었든 이슬람의 수피파에 속하는 서역(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일대)에서 온 사람으로 수피의 춤을 췄던 게 아니냐고 보는 것이다. 처용이 자신을 드러내 보이며 추었던 춤 너머로 보이순과 타슈켄트에서 기쁜 날 일상적으로 추는 춤, 몰아 경지에 들었던 수피의 문화 전파 경로에 처용이 겹쳐 보인다.
통도사와 범어사의 서역 전래 사천왕의 비파
비파는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장르다. 우리 산천 곳곳의 절집 사천왕은 제각각의 모습이다. 통도사와 범어사(통범)의 영남 범패는 아직도 오래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단다. 세종, 세조를 거치면서 잠시 숨통이 트였던 불교는 다시 조여드는 고삐에 불교의 상징이었던 비파는 사라졌다. 비파가 곧 불교였기에. 통일 신라 비파 음악의 유행은 불교의 전성기와 맥을 같이 했듯이 억불의 조선에서 비파 음악은 사라질 운명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절집의 사천왕이 들고 있는 비파,
소리를 보고 그림으로 듣는
소리를 곧 보이는 진언이며, 법음성이다. 음성이 전하는 구절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이렇게 보이는 것이고, 소리 없는 그림 속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상상해내는 것으로 곧 듣는 것이 된다. 고대인들이 목숨 바쳐 달성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의 생각한 우주의 궁극, 즉 신에게 다다르고자 했던 것이었고, 그 매개가 음향이었다. 만물이 잠에서 깨어날 무렵 절집에서 두들기는 목어통. 그 메아리를 듣고 생명이 깨어난다. 무엇이든 음향은 곧 궁극에 다다른다는 생각 때문에, 종교음악의 기능이다. 우주와 소통하고자 하는 소리는 내는 것이 곧 음악이란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한 곳에 생각이 머문다. “소리” 음향의 의미다. 붓다의 소리는 진리 전달의 수단이며, 종교, 신에게 다다르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소리의 인문학이든, 종교와 음악에 관한 인문학이든 꽤 흥미로운 책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