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 살고 있다 - 기울어진 세계에서 생존하는 법
미셸 미정 김 지음, 허원 옮김 / 쌤앤파커스 / 2024년 8월
평점 :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는 법
한국계 미국인 미셸 미정 김은 이 책<우리는 모두 불평등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에서 BIPOC(흑인, 원주민, 유색인)라는 개념의 사용도 맥락없이 아무데다 쓰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책 속 곳곳에서 그의 견해를 피력하는 장면마다 바탕에 깔린 문제의 초점을 분명하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쓰는 젠더라는 개념 또한 시스젠더라고 트랜스젠더와 구분해서 사용한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미국에 살았더라도 언어의 장벽, 고통의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우리 말로 아픈 꾹꾹 찌르는 듯하다는 것을 제아무리 영어로 표현하더라도 뉘앙스 전달이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은 지은이로서는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몇 가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들이 있다.
우선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돈 때문에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한다. 이것은 힘든 고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즉, 활동하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것, 살기 위해 먹는 것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님을 바탕에 깔고 있다.
동양인 여성을 바라보는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 좌절과 분노를 반복하다, 학습된 무기력(아무리 발버둥 쳐봐도 안 된다는 포기상태, 어찌 달걀로 바위를 깬단 말인가)에 빠지는 경우와 왜 부당한 대우를 당해야 하지라고 정면으로 맞대응하는 것은, 나 같은 여러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이타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활동한다는 점, 내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이는 이타주의가 아니라 위선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이런 것들을 사회에 펼쳐내는 것이 ESG(친환경,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 와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다. 기업 시민이 사회의 시민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의 실천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단이 아닌 현장 속에서 특히 DEI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가 직접 피해의 당사자였으니. 세상을 바꾸려면 우리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이 책은 4부 15장 구성이다. 토대 다지기를 거쳐 방향 설정하고 당당하게 나서고 함께 움직이기는 과정을 각각의 부로 묶고, 15개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에 눈을 뜨고, 우리 안에 백인우월주의를 구분해내기, 지적받을 용기와 더불어 자기만의 해방적 도구 갖기,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기까지, 이 책의 내용은 꽤 치열하다. 특히 3부 당당하게 나서기 9장에서 “언어를 통한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5060대 남성들의 언어 표현에 주의하면서, 관찰해보면 알 것이다. 다른 중요한 문제 제기도 동감, 공감하고 충분히 경청해야 하지만, 우선은 아래 포용적 언어사용 5가지 원칙만을 기억해두자.
포용적 언어의 5가지 원칙
이것만은 놓쳐서는 안 될 듯싶다. DEI에서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뉴커머로 함께 살아가는 이주 배경의 주민들, 우리는 그저 한국말을 한국 사람보다 더 유창하게 잘한다고 생각하는 이주민을 만날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완벽하다. 대단한데. 자, 그럼 지은이의 경험과 그의 주변 사람이 겪는 이질감, 장벽을, 아시아인데도 영어가 유창하다는 말은 곧 외부자라는 뜻이고, 유색인종이 영어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구사하다니. 여기에는 벽이 존재한다. 백인우월주의의 기준이 고급영어를 쓰고, 완벽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 이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며, 차별주의, 착한 무의식적 차별주의자인 셈이다. 그런데 미셸이 표현한 “잘하는 영어”라는 개념에 관해 노엄 촘스키는 “이런 용어는 언어학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고, 사회정치적 의미만 있다”라고, 길거리 말보다 내재적으로, 언어학적으로 우월하다기보다는 그것이 잘하는 영어로 여겨지도록 인준되는 권위와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포용적 언어의 다섯째 “임의적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다”라는 것인데, 늘 긴장감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있다. 작고 사소한 표현, 모호한 표현을 그냥 넘기면 점차로 물러서게 마련임을.
정해진 목록은 애초부터 없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힘주어 말하는 5가지를 보자. 우선 첫째 “가장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언어사용” 젠더를 지칭하지 않는 표현을 늘 염두에 두고 젠더중립적인 낱말을 고르는데 신경 쓰자, 둘째,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존중”, 셋째 “누가 말하는지가 중요” 이 대목은 “왜 이 언어를 쓰는지, 역사적 배경,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장애 차별, 트랜스 혐오, 동성애 혐오 등 다양한 형태의 억압이 여전히 만연하며 주변화된(혹은 대상화된)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그 억압이 느껴지는 가운데 주변화된 이들이 되찾으려 하는 억압적 용어가 그들을 억압하는 시스템에서 계속해서 이득을 얻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될 경우, 해당 언어의 애초 목적인 폭력이 또다시 더해지고 신뢰를 무너뜨리게 된다. 내가 이 용어를 사용하면 누구에게 이로운지, 또 누구에게 해로운지 등을 말이다. 생각하면서 말을 하라는 것이다. 넷째, ”피해를 묘사할 때는 특히 정확하게“ 아프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를 알려주듯이,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피해의 근원을 감추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통행, 대화가 부족해라는 노랫말처럼, 생각이 곧 행동을 지배하기도 하니,
해로운 언어와 포용적 언어
배제하는 언어, ”그건 좀 게이 같아“ ”남자답게 굴어“ ”너 계집애냐“, ”불법 이민자“ ”게토“등이지만 미묘하게 차별하는 언어도 있다. 미묘하다. “너 어디 출신이냐“,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문턱을 낮추고 싶지는 않다“ 자, 그렇다면 포용적인 언어의 쓰임은, 우선 힘을 북돋아 주는 언어다. 보편적, 포괄적인 주변화된 사람들(소수자들)이 불리기를 원하는 대로 그들을 인정하고 지칭하며 그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표현들 오리엔탈 대신에 아시아계 사람들, 불법 이민자 대신이 미등록자 등으로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