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유목 민족이 이룩한 세계 최강 제국 100년도 못 버티고 사라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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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역대 황제 평전


유목 민족이 이룩한 세계 최강 제국 “칭기즈 칸” 원 태조에서 혜종까지 12대 97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원나라판 왕조실록이다. 고대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 로마제국 소아시아, 페르시아, 러시아, 아랍 세계의 부침은 동에서 서로 향하는 말발굽이 일으킨 먼지 속에서 스러져 가고 또다시 일어서는, 페스트를 옮겨온 것이 누구냐, 훈족의 침입으로 헝가리라는 나라 이름이 생겨나기도 했다는데, 3세대 동안 동, 서를 뒤흔든 “예케 몽골 울루스: 몽골 제국”의 칸과 대칸(카안), 말 위에서 태어난 말 위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동력이 뛰어난 군사들, 


예부터 천고마비, 즉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고라는 말의 앞뒤 맥락을 살펴야 한다. 농경민족에는 가을을 추수의 수확 계절이고, 유목 민족들에는 말이 살쪄, 기동력이 생기는 시기라는 말이다. 한겨울 유목민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이래서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면 북방에서 구름 먼지를 일으키며, 메뚜기떼처럼 식량을 싹쓸이 해간다. 그저 날씨 좋고 바람 시원한 그런 가을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은이 강정만 선생은 한·중 국민이 상호이해를 통해 우리의 처지가 순망치한임을.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역사는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황제 중심의 중국 역사를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한, 당, 송, 청 그리고 원 순으로 <중국 역대 황제평전> 시리즈를 엮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처럼, 황제평전, 황제의 업적인 활동에 관한 평가를 담은 전기면서도 글쓴이만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인물을 평가하고 인물의 삶을 재구성한다. 객관성과 주관성의 혼종, 이른바 하이브리드 문학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 평전에 소개된 인물 12명을 장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아무래도 길이가 긴 순으로 하자면 원 태조 칭기즈 칸과 원세조 쿠빌라이 칸이며, 나머지는 20~30쪽에 그친다. 재위 기간이 짧아 서도였겠지만, 인물 평가와 삶, 그리고 연대기에 실린 만큼의 사회변혁이나 혼란 등 특기할 만한 내용이 적어서도 알 수 있겠다. 


지은이는 위세 당당했던 몽골 제국이 100년 여년 되지 못해 쪼그라들고, 또다시 사막 너머로 쫓겨가는 신세가 된 이유를 몇 가지 들고 있는데, 놀랍게도, 군신 간의 예의, 붕우유신, 장유유서와 효친 사상 등 아랍 쪽에서 보였던 형사취수 등도 섞여 있는 이를테면 인간집단이 집단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질서는 유가나 종교(불교, 이슬람, 기독교, 경교 등)를 신봉하지 않더라도 당연지사처럼 여겼던 점이 눈에 띈다. 아울러 1225년 칭기즈 칸은 네 아들에게 몽골 제국 영토를 분할 통치하게 하는데, 장남은 가장 먼 곳(킵차크) 둘째 차가타이, 우구데이, 일, 이렇게 4대 뭉케 조에는 동쪽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서쪽으로 동유럽에 이르기까지 몽골 제국이었다. 광대한 영토 확장이 가능했던 이유를 지은이는 적절한 시기, 수시 이동이라는 생활방식 때문에 얻어진 정확한 판단력과 결단 이른바 동물적 감각이 뛰어난 때문이라고 봤다. 거기에 쿠릴타이를 통해서 결정된 사항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원칙, 신용원칙, 능력에 따른 대우, 실용주의, 천신 신앙 탱그리교(글쎄다 이것을 종교라고까지 해야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여섯 가지의 특징, 혹은 장점 때문이라고 본다. 


몽골의 세상 뒤섞이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동양의 것이 서양으로 아라비아숫자와 과학(아랍 문명) 이 이보다 한참 뒤처져 있던 중국의 눈을 뜨게 한 것처럼,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김영사, 2016)의 중세 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헌팅턴은 세계질서 재편의 핵심 변수가 무엇인가에 천착했지만, 13~14세기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의 역사가 세계질서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를 말이다. 


청나라는 한족으로, 중국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뿌리를 잃어버린 듯한데, 몽골은 왜 그러지 않았을까? 


야성이 순치되어 이성으로 변화된 것이라면, 뭐 다원의 진화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겠지만, 이른바 수성의 원리가 작동된 게 아닐지 싶다. 농경민족, 즉 정착 생활의 첫째는 질서유지 필요한 법률이고, 왕도정치라는 이론 즉 공맹의 사상과의 융합이다. 여기서는 칭기즈 칸과 2대 황제였던 우구데이 그리고 5대 세조 쿠빌라이 때 꽤 두드러져 보인다. 여기에 등장하는 야율초재라는 인물, 원서 즉 중국에서 지은 사서에만 등장하고 이슬람 쪽 역사에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칭기즈 칸과 우구데이를 황제로서 다듬었던 정치가가 전략가였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이러한 흐름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 유학자와 승려를 초청하여 이들로부터 세상 경영을 배우는데.


역사가 E.H카의 말처럼 흥망성쇠,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생성과 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잠재된 모순들이 싹을 틔우며 힘을 모아,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망의 기운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즉 공성과 수성의 어려움을 어떻게 잘 정리해 나갈 것인가, 지도자가 지녀야 할 품성도 중요하지만, 주변 환경과의 조화 또한 필요하다. 참모진을 어떻게 꾸릴 것이며, 어떤 태도로 백성을 국민을 대해야 할 것인지, 모든 게 갖춰지지 않으면, 시간문제다. 흥에서 망으로 가는 그 과정은 반드시 일어나지만, 그곳에 숨겨진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제거해 나가면서 흥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가. 역사는 늘 그렇듯, 흥하고 망하고 또 일어나서 성장하고 또 모순이 쌓이고, 마치 정반합의 그것처럼 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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