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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과학 - 세상을 움직이는 인간 행동의 법칙
피터 H. 킴 지음, 강유리 옮김 / 심심 / 2024년 6월
평점 :
신뢰의 과학, 두 축
신뢰 결정의 두 축, “역량”과 “도덕성”이다. 지은이가 명쾌하게 정리했듯이, 역량과 도덕성은 대칭적이다. 전자는 누군가에게 과제 수행에 필요한 전문기술, 대인관계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있고, 후자는 누군가가 용납할 만한 일련의 원칙을 지키리라는 믿음이다. 역량과 도덕성,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지할 때, 이 두 요소를 각각 달리 해석한다. 사회과학자들은 신뢰를 다른 사람의 의도나 행동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치(심리 상태로서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약함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다른 사람에게 품을 수 있는 긍정적인 기대치에 따른 상관관계로서의 신뢰)로 이뤄진 심리 상태라고 정의한다.
역량에는 긍정 편향이, 도덕성에는 부정 편향이 작용한다.
역량에는 긍정 편향이 도덕성에는 부정 편향이, 역량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자, 무능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고 가정할 것이다. 이때 그 사람이 단번에 성과를 거두면 이를 신뢰할 만한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 유능한 사람이 평소보다 못 미치는 수준의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무능의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신뢰 위반이 “역량” 문제로 인지되면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중요한 것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느냐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보이는 게 다라는 게 맞다. 아주 적은 정보로도 누군가를 선뜻 신뢰하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란 점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해될 듯하니, 하지만 의도와 이면 또한 존재한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그래서 깊이 들여다 보는 통찰력이 필요한 대목이기도 하다.
도덕성에서는 이 편향이 반대로 바뀐다. 도덕성이 높은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부정직한 행동을 삼가는 데 반해, 도덕성이 낮은 사람은 보상에 따라 정직 혹은 부정직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직관적으로 믿는다. 사람들은 누구든 가끔은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단 한 번의 정직한 행동을 높은 도덕성의 신호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덕성이 낮은 사람들은 부정직하게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해, 단 한 번의 부정한 행동도 낮은 도덕성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신뢰 위반이 도덕성 문제로 인지되면 극복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요소는 기회비용의 경제학에서도 드러난다. 진정한 신뢰에는 남이 나를 실망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취약함을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실제 신뢰한다는 말과 행동의 내용에는 이런 요소가 분명 녹아들어있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훼손되는지,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혼란, 배신, 실망, 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연결고리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에 관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를 11장에 걸쳐 논하고 있다. 1장~3장에서는 신뢰의 출발과 이것이 어떻게 깨지고, 사과가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 4장에서는 우리가 거짓말을 참을 수 없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른바 의심이란 것도 믿어야 생기는 법이듯, 거짓말은 더 큰 배신감을 남긴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5장,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다를 때, 6장, 신뢰 회복을 위한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의 딜레마, 그리고 7장~11장까지는 리더와 신뢰의 상관관계를 비롯하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신뢰를 권장해야 하고,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한 개인에게 묻는다. 인생에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른 집단의 사람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강한 집단 결속력은 위선을 낳는다. 원하거나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가 발전하기도 한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늘 “신뢰”를 입에 달고 산다. 약속 시간, 뭔가를 해주겠다는 약속 등을 지키지 못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누구에게나 입버릇처럼 쉽게 남발하는 약속들, 신뢰는 어디에서 생기는지, 그 메커니즘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신뢰를 지키는 방법들, 만약에 지킬 수 없거나, 깨뜨렸다면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결국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구성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함은 너무나 분명하기에. 지금, 우리 사회가 여기서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히 그리고 차고도 넘칠 정도다.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힘
사회적 신뢰를 얻는데 중요한 대목이 있다.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와 용서는 개인 대 개인의 경우도 있고, 집단 대 개인의 경우도 있다. 이른바 국가폭력 앞에 무너지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 이 책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예를 들고 있지만, 아무튼 가해자를 형사처벌 한다고 피해자의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나오는 게 회복적 정의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가해자는 그에 적합한 처벌을 받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말하고, 기억하며,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범죄이든, 집단학살이든 말이다. 하워드 제어의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대장간, 2019)에서 응보적 렌즈 vs 회복적 정의 렌즈라는 개념을 내놓았다. 최소한 가해자의 이름이라도 알기를 원하고 그 범죄 내용을 공식 기록에 남기고 싶은 피해자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감옥에 갇히는 대신 용서를 받음으로써 스스로 존엄성을 지키고 조금이라도 존재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면 가해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신뢰의 과학이란 메커니즘을 통해, 지은이는 신뢰 사회로 가는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 둘째, 진실의 복잡성,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처럼, 무슨 일이 왜 일어났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진실의 복잡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셋째, 의도와 이면,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가 항상 불완전하다는 전제에서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넷째, 용서에는 위반자의 협력이나 위반자의 피해인정이 필요하지 않지만, 신뢰 회복에는 위반자의 역할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