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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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과 창조, 남자들의 우정과 “지중해 정신”

 

어렸을 적에 “헝그리 정신”은 자주 들어봤다. 권투선수 홍수환의 원정경기, 챔피언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랴스키야에게 4번이나 다운을 당하면서도 7전 8기의 오뚝이처럼 일어나서 결정타, 이 한 장면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박홍규 선생의 글을 오랜만에 접한다.

 

이 책<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 지중해변의 시골에서 생겨난 파리지앵 졸라와 본디 촌놈인 세잔과의 브로맨스, 전자는 이성적이고 냉정함을 떠올리게 하는 무표정으로, 후자는 말 그대로 산적 머리에 수염에 떼국물이 질질흐르는 순자연산이다. 이 둘은 11,12살때 졸라가 파리에서 시골로 이사오면서 한 살 위에 학년도 위였던 세잔과 단짝으로 지냈다. 둘은 공부는 안 하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던 자연주의자였다.

 

의외로 한국에서는 졸라의 작품이 그리 소개된 편이 아니다. 실은 이 두 사람 만만치 않은 정상들인데도.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와 지중해 정신, 이곳에 두 사람은 그런 싹이 보였던 듯하다. 지은이는 지중해 정신이란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짙푸른 바다의 알싸한 소금물에 함께 녹아있는 ‘직관적 종합 재능’이라 표현했다. 이들은 개인과 사회가 공존하는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자로서 자연의 모든 사물을 글과 그림으로 생명력을 갖게 했다고. 자유와 자치와 자연(삼자주의)

 

마음껏 놀면서 길렀던 반항과 창조?

 

졸라가 대학에 떨어지고, 글 쓰는 작가가 국어에서 낙제했고, 세잔은 화가인데 그림의 기본인 데생을 못 해서 떨어졌다. 이런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보통 사람 같았으면 여기서 아웃이다. 그러나 이 둘은 바로 고정관념과 기존 질서를 삐딱하게 봤다. 즉, 반항기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촌놈들이 사고를 친 것이다.

 

박홍규 선생은 바로 이점을 눈여겨봤다. 그는 폴 세잔의 민둥산 그림을 봤다 별 감흥도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줄 때는 세잔의 풍경화를 보고 그리라고. 졸라의 대표작<제르미날>(1, 2권으로 문학동네, 2014, 2002년 민음사)을 읽고, 노동법을 가르치면서 거리로 나가 노동자의 권리회복을. 졸라는 서른여섯에 쓴 <싸구려 술집>으로 문명을 날리기 시작하지만, 세잔은 죽기 얼마 전까지 별 볼일 없는 신세였다.

 

드레퓌스사건으로 흔들리는 프랑스, 졸라와 세잔의 결별 이유가 되기도

 

외형도 성격도 다른 두 사람은 유대계 프랑스의 군인인 드레퓌스는 포병대위로 1894년 독일에 군사정보를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체포, 군법회의 결과 1895년 악마도에 유형을 가는데, 이 사건으로 인도, 자유주의 공화주의 정치가, 지식인들이 반동의 가톨릭과 군국주의, 국가주의 등을 신봉하는 보수세력과의 대립은 프랑스를 뒤흔들 정도로 큰 정치적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졸라는 1898년 맨 처음으로 이 사건에 대해 “나는 규탄한다”로 견해를 밝히면서 시작되는 재심청구 운동 끝에 재심에서도 유죄, 결국은 1899년에 대통령 특사로 풀려난다. 1906년에 무죄가 밝혀져 복권됐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드레퓌스는 왜 희생양이 됐을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견원지간이 됐다고 하는데, 당대의 가톨릭계는 졸라는 악마라고 하면서 그의 저서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른바 프랑스판 ‘분서갱유’다. 세잔은 가톨릭에 귀의하고,

 

빛나는 지중해 정신, 변방에서 일어선 자들

 

이 책은 이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이들이 각각 문학과 그림에서 독보적인 위치(현대 문학의 아버지와 현대 회화의 아버지라는)를 차지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피는데, 일관된 흐름, 이들 인생을 관통하는 대원칙은 “지중해 정신”이었다.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고, 이에 반항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바로 창조다. 총 8장으로 나눠서 졸라와 세잔의 초기 창조 활동을, 인상파 전, 졸라의 노동소설과 세잔의 구조주의, 그리고 위에서 말한 드레퓌스사건과 졸라, 드레퓌스사건을 배경으로 졸라와 세잔의 처지와 왜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점을 이 책에서는 톺아본다.

 

졸라는 30대 중반부터 문명을, 세잔은 죽기 얼마 전까지 이름을 드높이지 못했다는 상황만 보더라도, 짐작이나 유추는 가능하지만, 아무튼 꽤 흥미로운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한 사람은 프랑스사람 중1~2퍼센트에 불과했다.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여기에 가톨릭신자인 세잔은 대세론에 따른 것인데, 이를 뭐라 하겠는가, 그렇지만, 이 사건으로 이 둘은 결별하게 됐다고, 로버트 레스브리지가 유럽연구저널에서 주장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애정 문제로 결별하게 됐다는 등의 헛소리는 일단 실없는 소리가 된 듯하다. 뭐 역사적으로 드레퓌스는 무죄지만, 시대 상황에서는 유죄.

 

지은이는 기존의 책이나 글들은 대체로 예술가의 정치적 입장 그의 작품과는 별개라고 하면서 정치적 견해나 태도를 배제하는 경향성이 잘못됐음을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종래의 잘못된 관점을 검토하면서 진정한 우정(브로맨스)의 의미를….

 

그리고, 자유, 자치, 자연에 관한 지은이의 이른바 박홍규론이 실려있다. 지은이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쓴 <오리엔탈리즘>(교보문고, 2007)을 번역했다. 놀랍게도 서론격에 100쪽이 다 되는 번역에 관하여라는 생각을 적었는데, 학자들의 비양심, 제자들의 성과를 슬쩍 제 것으로 만드는 못된 버릇을 고치라고 일갈하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졸라와 세잔의 결별을 만든 시대적 배경을 톺아보는 게 더 재미있을 듯하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에게 졸라와 세잔을 가까이 데려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절하게 이들의 작품세계도 알려준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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