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쩐의 전쟁 -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조선인의 돈을 향한 고군분투기
이한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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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쩐"으로 보는 조선소송실록

 

이 책<조선사 전의 전쟁>은 고문헌 연구자 이한이 썼다. 제목을 보는 순간 2007년 SBS의 드라마 박신양이 주인공을 맡았던 “쩐의 전쟁”이 떠오른다. 이 드라마는 2015년 일본에서<?の??>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한일 모두 이른바 "쩐"에 대해서는 공통의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본주의체제에 신자유주의질서가 자리하니 최고의 가치는 역시 "돈", 조정래의 소설제목 "황금종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조선왕조실록> 중심으로 안방극장을 넘나들던 사극과는 아주 딴판이다. ~카더라 수준으로 슬쩍 건들고 지나갔던 권력의 중심인물들이 돈돈돈에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오죽했으면 "청백리"를 찾아 삼만리를 했겠는가 싶다.

 

마키아벨리 선생의 3가지 유명한 원칙, 정치란 윤리와는 아주 별개다. 정치가 윤리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정치와 윤리 분리, 운과 역량은 한 세트다. 운이 있어도 역량이 없으면 안 되고, 역량가 있다 할지라도 운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을 두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리고 마지막 모든 면에 진심일 필요는 없다. 그저 그런 척만 하면 된다. 이른바 그렇게 이미지 만들기만으로도 충분하다.

 

뭐 오늘날 정치? 정상배들이 언제 익혔는지 이 3가지 원칙을 잘도 써먹는다. 놀랍게도 조선 시대에 이런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이 눈에 보인다. 자주 듣는 이름만으로 훌륭한 선비요, 정승이었다고 입이 마르게 찬양하기 바쁜 사람들의 또 다른 페르소나 바로 경제 관념이다. 남인, 해남윤씨 문중의 고산 운선도도 재산과 노비소송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유학자로서 경륜을 지닌 학식 높은 사람들이라도 경제(재산 이른바 "쩐"의 전쟁에서는 빠지지 않는 장수들이었다)면에서 그 태도가 달랐으니, 자왈. 사람의 도리란 결국 "쩐"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조선의 자존심, 동방예의지국에 선비의 나라라는 말이 이 책에서는 어처구니 없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세상을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다양하다. 적어도 "쩐"만 가지고 말하자면 조선은 고리대금업자들의 나라였다. 권력=고리대금업. 유학자, 선비= 소송의 대가

 

책 내용은 소설의 플롯과는 거리가 멀다. 역사에 전하는 고문집 속에 나오는 "쩐"에 관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딸을 위해 부동산 투기를 한 왕이 있다고, 그게 누굴까하는 호기심과 흥미 유발은 책소개, 내용은 현대적 해석이니 그리 핫한 이야기는 아니다. 자 보자. 조선의 태조도 자식 사랑이 우선이었든지 부동산 투기를, 당시 개경에 있던 이성계가 한양 향방동에 있는 재상 허금의 집을 사들여 이방원한테 얻어터지고 심란한 때 얻은 딸 숙신옹주의 집을 마련해 준 것이다. 수도는 개경이었으니, 혹시 부동산 투기를 위해 한양 천도를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황당하지만 서울 집이 천정부지로 값이 튀었기에 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 신분사회 노비는 재산이다. 그런데 반전도 있어, 망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는 농경사회로 쌀이 곧 돈이다. 화폐가 사용됐지만 여전히 거래의 기준은 쌀이었던 모양이다. 금융경제도 꽤 발달했던 모양이다. 영의정을 비롯한 고관대작의 별도 직업이 고리대금업자였으니, 후기에 이르면 삼정 문란, 대동미, 군포 등 귀에 익은 단어가 자주 나오지만, 핵심은 그만큼 해 처먹은 양반, 권력자들이 많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백골징포, 황구첨정 등. 그런데 노비라고 그냥 당하고만 있었을까?, 아니다. "쩐"의 전쟁에서는 신분 계급장 떼고 싸우는 게 정상이요, 룰이다. 이런 룰은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세종대왕이 소송의 천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혁명으로 조선이 엎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뭐 역사에 ~였다면이란 없으니까,

 

아무튼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돈 앞에는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간, 그리고 친척 사이에 물리고 물리는 전쟁, 어느 책에서인가 조선의 산에 관한 소송이 많았다고, 양반 사회에 조상님의 음덕을 얻기 위한 풍수지리의 영향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 배경의 중요한 하나는 "쩐"인 것만은 확실하다. 또 하나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척"진다는 말, 이는 소송에서 피고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 척지지 않도록 합시다, 즉 법정에서 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인데, 여기서 척진다는 말은 괜한 싸움에 휘말리기 싫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의 수령고소금지법에 관한 논쟁- 500년 소송의 나라 탄생 후기-

 

조선 시대 세종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소송이 이리 많았을까?, 지은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본디 백성들이 품은 억울함 또는 원한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린 국가였기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조선의 왕은 절대권력자가 아니었다. 어쩌다 멍청한 임금이 들어서더라도 현명한 재상이 나라를 다스리면 종묘사직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정도전의 재상정치론과 이방원의 왕권정치론의 대립에서 보듯이, 왕이든 관리든 그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세종 때 "훈민정음" 반포에 맞서 허조, 황희, 변계량 등 이른바 꼰대들은 '수령고소금지법'을 만들자고 들고 일어났다. 최만리 표현대로 우리가 30년간 공맹왈을 외우고 써먹으려 한자를 얻어터져 가며 익혔는데, 백성들은 몇 시간 만에 하루 이틀 만에 문자를 깨우치면, 이거 뭐가 안 맞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중국에 대드는 거냐고, 아무튼 당대의 지식인들이란 작자들의 인식 수준을 알만하다. 소지(소장)는 한글로 해도 됐다. 그러다 보니 지방 토호들이 중앙에서 파견한 수령 길들이기에 실패하거나 제 맘에 안 들면 백성들을 선동해서 소를 제기하게 할 우려가 있다 하여 수령고소금지법을 만들자고 했단다. 발상이 너무 멋지지 않는가

 

세종 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걸 금지하면 사람들이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펼 곳이 없지 않은가? 허조가 답하기를, 만약 조금이라도 단서를 열어두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고소하게 되어 점차 풍속이 박하고 악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세종은 억울하고 원통한 정을 펴 주지 않으면 어찌 정치하는 도리가 되겠는가? (바로 왕도정치의 핵심)라고 하였다.

 

쩐의 전쟁에서는 신분도 계급도 소용없다. 그저 센 놈이 대장이다. 지금도 그러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 "쩐"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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