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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품고 슬퍼하다 - 임진왜란 전쟁에서 조선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의 활인검 이야기
이상훈 지음 / 여백 / 2023년 9월
평점 :
사명대사의 활인검, “포검비” 칼을 품고 슬퍼하다
이상훈의 전작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와 <김의 나라>에서 보여준 치밀한 자료조사는 글의 깊이를 더해주어 꽤 기억에 남는다. 신라의 마지막 후예 마의태자 김일은 어디로 간 걸까, 청나라 황제의 성, 재판기록에 남겨진 마지막 황제 푸이의 본명 “애신각라 부의(愛新覺羅 傅儀)”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하라는 뜻이, 그의 소설<김의 나라>는 강원도 인제를 중심으로 신라 부흥세력을 규합했던 마의태자 김일의 흔적과 역사 자료들을 발굴하고, 그가 더 넓은 북방의 땅으로 건너가 발해를 일구었던 우리 조상의 후예들을 만나고 여진족과 합심해 새로운 대제국을 건설하는 발판을 다졌다는 박진감 넘치는 역사적 추리를 완성한다.
그의 이번 소설<칼을 품고 슬퍼하다>의 등장인물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응규, 그녀의 첫사랑 이랑, 그리고 그를 평생 그리워했던 스승 황여헌의 딸인 미옥과 그녀의 딸 빈, 빈을 사모한 손현, 보우대사, 서산대사, 허봉, 허난설헌, 허균, 우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 부르는 전쟁을 일본에선 각각 분로쿠의 에키(文?の役)와 게이초의 에키(慶長の役)라 한다. 분로쿠니 게이초는 당대 천황의 연호(치세)에 일어난 일이라...
이순신과 권율,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수많은 주인공 중 누구를 중심으로 당대의 그렸는가에 따라 사뭇 온도와 감도가 달라진다. 사명대사의 유품 중에 황금 십자가가 있었다. 어디서 얻은 것인가, 어떻게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인가로 시작되는 이야기.
어린 천재 소년 응규의 겹치는 불행 속에서 출가를 선택한 응규는 사명이란 법호를 받고, 승려가 되지만, 그를 잊지 못한 스승의 딸 미옥의 영원한 사랑, 조선의 썩은 입만 번지르르한 비겁한 유학자들을 규탄하는 허균과 그의 형 허봉과의 교유, 그리고 조선의 뛰어난 시인인 허균의 누이 허초희, 그리고 미옥의 딸로 사명대사가 이름을 지어 준 빈과 손현의 아픈 사랑 이야기가 흐른다.
사명은 허봉과 허초희의 죽음, 속세의 슬픔을 떨쳐버리고 정진하기 위해 옥천산 상동암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활연대오(豁然大悟), “내 머릿속에 여태껏 헛걸을 담고 살았구나”
무고한 중생을 구하기 위한 보살 정신으로 칼을 들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함보단 불구덩이에 죽어가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의병장이, 승병이 돼, 그의 손에는 목탁 대신에 포검비가 쥐어졌다. 서산대사는 죽이는 건 불제자의 길이 아니라고, 사명은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께서도 옳은 일을 위해서 목숨을 끊어도 좋다고 하셨습니다.” 무고한 백성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내 생명을 바쳐 중생의 고행을 대신하는 것이 보살의 정신이라고, 그리고 칼을 품고 슬퍼하는 사명대사는 “더 이상의 살생을 막기 위해 칼을 들었다”
옛 역참에 떠 있는 무거운 태양은(古驛重陽)
칼을 품고 슬퍼하는 내 마음이네(抱檢悲) (134쪽)
사명대사의 괴로움의 씨앗이었던 미옥, 진정한 속세와 번뇌에서 벗어나는 구도자로서 정진 수도를 통해 해방된 것인가, 왜군 손에 일본으로 끌려간 미옥과 빈 모녀는 살아남아 있고, 왜군의 공격에 죽임을 당했다던 비변사 관리이자 빈의 정인 손현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조선 포로를 구출을 위해 일본으로 향하는 사명대사와 손현, 그곳에서 기적처럼 미옥과 빈을 만나게 되고, 사명과 미옥이 살지 못했던 보통의 삶, 자식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삶의 업보가 그 후대로 이어지는가 싶은데, 손현과 빈은 다시 만나, 조선으로 돌아오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일본은 조선 정벌로 얻은 것은 성리학이다. 많은 서책과 보물을 얻어갔다. 영광의 강황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그 땅에 유학을 전파한다.
사명대사를 주인공으로 그 주변 인물들과의 사랑과 번뇌, 갈등, 좀 더 우리에게 구체적인 형상이 보이는 사명대사, 고매한 고승과 구국충절이라는 외형은 거짓이다. 고매하게 선방에 들어앉아 자신의 깨달음을 얻는 구도자가 아니라, 썩어빠진 왕과 지배층을 위한 공명심과 출세의 욕망에서 이는 충절도 아니다. 그저, 내가 아끼는 사랑, 아무런 죄가 없이 그저 지배층의 무능으로 고통과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는 중생의 희생을 막고자 할 뿐, 그것이 사람된 도리요. 불제자로서의 일이라고.
1610년 8월 26일 해인사에서 사명대사가 세상을 뜨는 날, 미옥은 평생을 그리던 사명의 옆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사명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쏟았다. 사명은 아기를 어루만지듯 미옥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미옥은 사명의 손길에 잠들이 들고, 사명은 마지막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이들의 이별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허균의 자통홍제존자 사명대사 석장비
허균이 짓고 백성들이 사명에게 바치는 시호는 자통홍제존자다. “말법을 붙들어 구하는 것을 자(慈)라 하고, 한 교(敎)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통(通)이라고 하며, 은혜로 백성들에게 끼친 것을 홍(弘)이라고 하고, 그 공덕이 거듭 화복한 것을 제(濟)라 하며, 존자(尊者)는 고귀한 인물을 말함이다. 이제 비를 세워 대사의 의로움을 새기면서 시호를 머리에 쓸 수 없는 것이 한스럽다. 그러므로 내가 짓는 것이 분수에 지나치지만, 개인적으로 대사의 시호를 지어 저승길을 밝히고자 한다. 임자년 2월 2일 교산”(에필로그 441쪽)
사명은 임진왜란에서 세운 공으로 정2품 자헌대부 형조판서에 올랐지만, 승려에게 시호를 내릴 수 없다는 유학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일제강점기에 이 비석은 일본 손에 네 조각으로 잘려져 땅속에 묻혔다.
구국의 승병장으로 기억되는 사명대사에게도 인간적인 삶과 고뇌가, 그가 만약 이순신의 난중일기 같은 기록을 남겼더라면, 당대의 숨 가쁜 일을 엿볼 수도 있으련만.
지은이의 이 소설은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듯하다. 김의 나라에서 청의 황제 성인 “애신각라”처럼,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사명대사의 큰 그림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