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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 인문학 -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인문학 강의 ㅣ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8
이욱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인문학 강의
지은이 이욱연 선생은 서강대 중문과에서 중국 현대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한다. 중국 문학을 했다고 유학에 능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그의 사유의 폭에 감탄한다. 특히 권력(勸力)과 인의(仁義)의 설명은 꽤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내공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즉, 권력은 저울추처럼 균형이 내포돼있고, 그 균형 안에는 인(어짊)과 의(정의)가 있다. 정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하지만, 인은 불변이라고, 하여, 권력은 늘 중심을 잡기 위해 어짊과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루쉰, 80~90년대에는 국내에서 노신(魯迅)으로 표기한 탓에 루쉰이란 이름이 생소할지도 모르겠다. 이욱연은 동아시아와 한국의 관점에서 루쉰을 새롭게 이해하고 소개하는 작업을 줄곧 해왔다. 이 책<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의 인문학>에서는 루쉰과 동시대의 문학작품을 통해 근대 중국인들의 고통과 혼란기를 살아온 지식인들의 고뇌를 톺아보고 있다. 루쉰의 작품 <아Q정전><애도> <허삼관 매혈기><광인일기> 등과 이광수의 <무정>, 그리고 <논어>까지 전방위적이랄까, 쉽게 글을 쓰면서도 담을 것은 담아내는 글쓰기는 루쉰은 물론 당대의 문화와 논어까지도 꿰뚫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유의 힘이 전해져 온다.
이 이야기는 크게 4장으로 나뉘었다. 1장은 나다움이 만들어 갈 미래에서 연애에서 찾는 나다움과 나다운 생각이 사회의 변화를 부르고, 같음이 아닌 다름에 희망이 있다고, 2장 패배와 절망 속에서 희망 만들기는 광인일기의 정신승리법을 슬기롭게 사용하기를, 내가 가려는 길에 무덤이 있더라도, 기억과 희망 만들기를, 3장에서는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꿈꿀까, 우리의 현실과 논어를 끌어와 인은 넘치되 의는 넘치면 안 되는 까닭과 지혜로운 사람은 달을 본다고, 다수와 권력에 맞서는 시인의 몫과 문학의 자리를, 4장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어떻게 살까?, 부모란 무엇인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기성세대의 역할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청년세대의 힘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희망은 나다움, 부모, 기성세대 역할과 청년세대의 힘
어느 시대나 어둠과 절망은 있다. 어느 정도의 농담(濃淡:짙고 옅음)은 있게 마련이다. 이광수는 <무정>을 통해서 당대 여성의 가치관과 가부장체계를 드러내놓고 깨버린다. “선형 씨는 나를 사랑하십니까?” 이미 결혼하기로 정해진 약혼자에게 형식이 이렇게 묻는다. 사랑하냐고, 자유연애라는 사고를 퍼트린다. 문학의 힘이다. 루쉰의 <아Q정전>에서 정신승리법, 누구한테 맞아도 상대할 가치도 없는 놈들한테 뭐 당했지, 라고 자신을 달랜다. 이른바 당한 일을 잊어버리는 정신승리법이 그것이다. 이광수는 그의 인생을 반추하면서 난 아 Q 정전처럼 살았노라고, 친일행적이 못내 걸렸다.
광인일기는 다수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개인의 주관을(나다움) 강조할 뿐이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류를 이루는 이들이 하는 말과 생각, 행동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지 말자는 루쉰의 제언이다. 세상의 주류를 비판적으로 보고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진정한 나다움을 만날 수 있고 그럴 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고,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루쉰은 논어를 되새기며, 군자는 모이지만 파당을 짓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당연하지만 똑같은 사람끼리만 모여서 당파를 짓지 말라고(메아리 방, 현재 우리 사회 상황처럼), 중용에서는 군자는 휩쓸리지 않는다고, 조화를 이루는 일과 휩쓸리는 일을 구분하라고. 같음이 아닌 조화를 강조한다.
공정, 능력주의에 관하여
공정한 능력주의가 되려면 시험이 공정하게 관리될 것과 모든 사람에게 참여기회를, 결과에 따라서 정당한 보상을, 시험 준비를 위한 조건이 같을 것, 과잉경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 낙방하거나 낮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그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그중에 가장 크게 문제 되는 것이 시험 준비를 위한 조건이 같은 것이다. 지금 모두 다르지 않은가, 다른 것을 다르게 같은 것을 같게 다뤄야 하는 게 공정이다. 아무튼.
루쉰은 부모는 과거의 관습과 전통을 후계자에게 계승하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자식들이 어떻게 적응해 낼 것인가를 <허삼관 매혈기>가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는 바로 자식과 가족을 위하라는 메시지였기에, 루쉰은 <우리는 지금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단절자로서 부모의 역할을 주장한다. 낡은 문화와 가치, 윤리를 끊어주는 사람, 새로운 문화와 가치, 윤리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살도록 각성한 부모가 나서서 희생할 것을 부모의 의무로써.
광인일기에서 강조했던 비판적 의식을 가지라는 말과 함께 기성세대임을, 나조차도 예외가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청년들이 건너갈 수 있도록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는 그의 책<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과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곁에 두고 부모, 기성세대, 청년, 절망, 희망, 나다움이란 열쇳말을 음미하면서 자주 읽어야 할 책이다. 정신을 살찌우기 위해서 깊은 사유를 위한 화두처럼, 루쉰이 살아온 시대를 생각하며,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