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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터 하우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어느 가족 이야기
빅토리아 벨림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9월
평점 :

4대, 100년에 걸친 한 집안의 이야기
우크라이나, 어디에 있는 나라?, 적어도 2022.2.24.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까지 크름반도와 얄타에서 열린 “얄타협정”(1945년 세계 2차대전 후 세계질서를 협의)만을 기억할 뿐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곡창지대로 러시아 일부였는지, 독립국이었는지도….
러시아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빅토리아 벨림은 10대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이민, 성인이 돼서 유럽에서 작가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크름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러시아, 망령처럼 찾아드는 소비에트연방의 이데올로기, 큰아버지는 우크라이나를 떠나 이스라엘로 옮겨갔으면서도 볼셰비키 혁명의 향수를 잊지 못한다. 우크라이나의 기근(1932년과 1933년의 홀로도모르)으로 400만 명의 아사자가 생겨난 것에 대해서도, 이때 겨우 살아남았던 우크라이나인인 벨림의 외증조할머니, 할아버지의 기억은 악몽과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큰아버지에게는 하나의 사건이었을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였다고 소련의 식량 징발은 다른 곳의 굶주린 사람에게도 식량을 나눠줘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캐나다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조작한 것이라며. 어디에 살던 소비에트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인들의 머릿속에 각자 달리 기억된 비극, 이 비극의 밑바닥을 흐르는 것은 이데올로기였다.

가족사의 비밀 열쇠 '니코딤' 의 수수께끼
빌렘 앞에 우연히 던져진 그의 가족사 비밀을 풀 열쇠, “니코딤”은 외증조할아버지 세르히의 큰 형이다. 당대, 우크라이나 언어교육을 장려했던, 소련의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은 반 소비에트 즉, 반혁명분자, 트로츠키주의자 색출. 광기 어린 이데올로기 사냥에 희생물이 된 ‘니코딤’ 그는 이미 짜인 각본에 따라, 그가 혐의를 부정하든 긍정하든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장래가 촉망되는 막냇동생 세를 하 만큼은 어떻게든 보호하자는 생각에 모든 혐의를 인정했고, 감옥 안에서 자살을. 벨림은 국가문서기록원의 문서 속에서 외증조할머니 야사 또한 조사를 받았음을 알게 된다. 문서고가 있는 폴타바, 그곳 사람들은 지하에서도 시베리아까지 싹 다 볼 수 있으니 루스터 하우스가 마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고 여겼다. 마치 너희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굽어 살펴볼 수있는 전지전능한 신처럼여겼던건 아닌가싶다.
1930년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니코딤(가족을 지키기 위한 그에게 살아남은 사람이 느끼는 죄의식의 상징)이란 이름을 입에 올리는 그것조차 두려워하는 할머니, “루스터 하우스”는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과 달리, 소비에트 시절 정치범을 가두고, 고문했던 곳, 한 번 끌려들어 가면 살아서 나온 사람이 없다는 공포의 장소, 루스터 하우스.

가족이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사랑과 배려와 연대의 질긴 끈
큰아버지가 그의 동생인 벨림의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해 죄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듯이, 가족이란 절대이념 앞에서도 보호해야 할 소중한 가치였음을. 벨름은 러시아의 크름반도 침공과 병합을 두고 벌였던 큰아버지와의 설전, 평행선을 달리던 생각들, “우크라이나를 걱정하는 너는 왜 벨기에서 사는데, 그러는 큰아버지는 왜 이스라엘에서 사는데요”라는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 우크라이나에 관한 생각들이 다가 아님을 그 밑에 흐르는 것은 끈끈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연대였음을.
벨림의 외증조부모 세대의 풍찬노숙, 어떤 이념과 사회질서 아래서건 지켜야 할 가치는 사람됨,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아니 오히려 자신의 안위보다 먼저 생각하고 몸을 던지는 것이 가족의 유대, 연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념이라는 외피 속에 숨겨진 사랑과 끈끈한 유대와 정, 소련혁명의 유지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반혁명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고발해야 했던 광기의 시대. 소련이 해체됐지만, 그 긴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다. 러시아, 세계 강국 건설이란 꿈은 푸틴의 권력 유지 명분으로 떠오르고,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
이 책은 100년에 걸친 벨림의 부계와 모계의 삶의 터전이었던 우크라이나의 운명 속에 던져진 4대에 걸친 역사, 외증조할아버지는 반혁명분자였지만, 외할아버지는 소련 혁명군, 전쟁의 영웅으로, 큰아버지는 소련의 영광을 잊지 못한 향수에 젖어있고, 할머니는 이 모든 것이 힘들었던 기억으로, 한 가족의 연대기를 통해서 드러나는 우크라이나의 역사, 우리가 몰랐던 우크라이나와 그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의 소설처럼 말이다. 박경리의 대하장편소설<토지>처럼 한 가족의 역사가...
우리 사회에도 벨름의 가족사와 같은 경험과 사례가 있다. 일본제국의 강점기 아래와 한국 전쟁을 겪은 이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잔재친일파, 일본군의 종군위안부 문제의 어둠이 겹쳐진다. 한 가족을 덮친 시대의 비극은 “루스터 하우스”였다. 우리의 종로경찰서, 서대문형무소, 남산, 남영동분실처럼...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