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우는 말들 - 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하는 은밀하고 촘촘한 차별
연수 지음 / 이르비치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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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나로 살 수 없게 하는 은밀하고 촘촘한 차별

 

지은이는 비영리단체 WNC의 대표이자 성평등교육활동가다. 여성의 삶을 고민하고, 기획하고, 말하고 쓰면서 만들어 낸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이 책에 첫 페이지에 실린 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시작은 거대한 담론의 전환이 아니라 일상 속의 사소한 변화다”, 그렇다 사소한 변화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아주 작은 것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말, 공감한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4장으로 이뤄졌다. 1장, 일상의 기습에서는 용모단정한 분만 지원해주시라는 말의 의미, 아드님 안 계세요. 따님은 상주 못해요. 라는 말 그대로 기습이다. 2장에서는 제도권 바깥,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여자들도 좋은 거 아니야? 라는 물음, 무거운 사회 담론이다. 군대 안 갔다 왔으면 말을 하지 마. 3장, 미디어의 배신, 저렇게 입고 다니면서 무슨 정치를 한다고, 4장. 침묵하라는 클리셰, 피해자라면서 왜 저렇게 당당해. 소제목만 봐도 무겁다. 우리 사회의 일상에서 남녀, 장유유서, 당당한 괴롭힘, 당연한 차별과 혐오, 모세혈관처럼 온 사회에 퍼져있는 것들, 유치원에서부터 학교와 군대를 거쳐 사회 전반으로.

 

용모단정한 분만 지원? 뭔 개소리일까?

 

한 영화관에서는 여성 아르바이트생의 보기 좋은 모습을 ‘윤기 나는 붉은 립스틱을 바른 상태’로 정의했다. 특정 브랜드의 립스틱 호수를 정해주고 딱 그 제품만 발라야 한다고 규정한 곳도 있었다. 손톱은 단정, 매니큐어 바르면 안 되고, 짧은 단발머리라도 실핀으로 찾아 어떻게든 머리망에 넣어야 한다고…. 이런 조건을 따지기라도 하는 날이면, 서비스 마인드가 없는 사람, 서비스직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여성의 모든 것은 상품이다. 성 자체가 제품과 함께 하나의 세트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카페 아르바이트부터 승무원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세세하고 촘촘하게 정해져 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값에 그들의 풀 메이크업과 웃음까지 포함된 걸까요? 라는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성매매 합법화하면 여자들도 좋은 거 아니야? 우리 사회에 널리 깊게 은근히 퍼진 생각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은 매춘부다. 라는 호사가의 말과 더불어 성매매의 여성 인권에 대한 담론도 낯설지 않다. 성매매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고, 매매가 아닌 착취라고, 한국에서는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만들어졌고, 2022년 기준 한국의 성 산업은 최대 37조 원 규모, 2021년 우리나라 커피 시장 규모가 6조 원이었으니, 알만하지 않는가, 점심에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먹고도 커피를 마셔대는 문화?, 아무튼, 너무나 상징적이지 않은가,

 

요즘, 논의의 방향은 네델란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호주 등처럼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여성 인권에 도움이 될까?, 더 나은 논의와 합의의 방향은 없을까?

 

성 산업, 불법, 합법, 이런 논의가 왜 필요한지, 꽤 민감한 사안이다.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에서 2016년에 내놓은 성 노동자의 인권 존중, 보호 및 실천을 위한 국가 의무에 관한 정책, 성을 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한 직업 중의 하나라는 관점을 제시했다. 물론 세계적인 논쟁이 일었다. 성매매가 성 불평등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어떻게….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 안전망을 갖지 못한 여성은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그곳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면 차별주의자?, 그렇다

 

이 제목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차별금지법이 왜 제정되어야 하는가는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각각의 법률에 정해진 차별금지조항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서다. 어느 광역자치단체의 인권 헌장 제정 공청회에 조직적으로 밀어닥친 방해꾼들 특정 종교를 가진 이들이 동성애와 성전환을 옹호하는 차별금지법 제정반대, 헌장반대, 이 사회의 기본질서를 근본부터 무너뜨릴 것이며, 역차별, 여성과 아동 인권의 종말을 외친다.

 

아무튼, 종교의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의 존재를 부인하고, 반대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는데 거리낌이 없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 차별주의자인가, 답은 그렇다이다. 차별과 혐오는 절대 차별과 혐오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아주 교묘하고 은근하게 합리적인 이유인 듯한 모양새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에 핫이슈이자 거대 담론을 정면으로 거론한 이 책, 작지만 큰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조금은 아쉽다. 성매매의 노르딕 모델이건 뭐건. 성매매를 성 착취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해도 될 법한데. 우리 사회에 촘촘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퍼진 차별을 제대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쳐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그렇더라도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겠지만, 나를 지우는 말들, 인간이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들은 이 책에 실린 것들만은 아니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그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돌이켜 생각해보기에 딱 좋은 글들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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