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산문답·계방일기 - 인간과 만물 간의 경계를 넘어 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클래식 아고라 3
홍대용 지음, 정성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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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의 관심, 과학의 세계

 

담헌 홍대용, 그는 조선 후기의 뼈대 있는 가문, 영?정조시대 국정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노론 계열이니 요즘 말로 금수저 중에 금수저급, 상위 1% 안(조금 너무 했나 아무튼)에 드는 명망가 출신이다. 이른바 입신출세하기 위한 모든 환경과 조건이 갖춰진 셈인데, 과거에는 관심도 없었던 듯하다. 40이 넘어서 정조가 아직 세손일 무렵, 음직으로 출사하여 세손의 교육을 맡았던 적도 그때의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 이 책에 들어있는 “계방일기”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후 그는 두어 차례 태인 현감과 영천군수를 잠깐 지냈다. 그에게 고을수령자리란 역시 족쇄였던 모양이다.

 

그는 도학자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당대의 지배적인 학문 경향을 완전히 무시했던 것은 아니어서 그의 저서 가운데 경서해설도 남아있다. 아무튼 그는 조선이라는 소중화 사상의 자가당착적인 사람들(소인배들?)과는 달랐다. 1731년 태어나 12살 때부터 당대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 김원행을 스승으로 석실사원에서 35살때까지 지내다가, 중국 사신단의 서장관을 맡은 작은 아버지 홍억의 자제군관으로 새로운 세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남긴 여행기 “을병연행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 등과 함께 조선 3대 여행기라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현대에 홍대용 다시 보기, 톺아보기가 과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지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에서도 지구적 전환 라투르의 대지설과 사고전시, 홍대용의 지전설과 (무한우주관) 관점주의를 비교한 허남진 등의<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지구인문학의 발견”>(모시는사람들, 2023)연구도 있다.

 

의산문답(醫山問答)

 

의산문답, 홍대용의 혁신적인 세계관이 담긴 저술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가 우주와 지구 그리고 기상현상, 생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당대 청나라 연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조선 사신단이 꼭 들리는 곳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의무려산”이었다니.

 

홍대용은 의무려산에 사는 실옹(實翁=세상의 이치를 꿰뚫는)이라는 이름의 노인과 조선의 젊은 학자 두 사람을 등장시킨다. 조선 선비의 이름은 허자(虛子=30년 동안 책을 읽어 자신만만하지만, 중국에 가서 좌정관천임을, 스스로 공부가 잘못된 것임을 깨달은,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 뭐 이른바 허당인 것이다)

 

홍대용은 왜 의무려산에서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했을까?

 

북경 방문길에 들렀던 의무려산은 화이(華夷,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짓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는 중국과 오랑캐, 즉 화이의 구분을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허자는 홍대용 자신이다. 지난 30년 동안 성리학 공부만 하던 허자가 세상에 나와 야심 차게 내뱉은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실옹은 우주무한론을 설파하는데, “우주의 뭇 별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끝없는 세계가 공계에 흩어져 있는데 오직 지구만이 중심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즉, 중화라는 것은 중심이고, 중앙이란 것이며 그 주변은 이, 오랑캐라는 구분법을 벗어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문명지도를 그린 선각자... 당대의 소중화 주의에 빠진 헛똑똑이들,

 

역외춘추라, 공자가 춘추를 지어 내외를 구분한 것은 단지 공자가 주나라 사람이기에 주나라를 기준으로 내외를 정했을 뿐

 

역외춘추란 생각은 촌철살인이다. 놀랍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전인수를 마치 진리인 것 마냥...이 밖에도 지원설(땅은 둥글다)은 18세기 이후 문헌비고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후로는 땅의 형체론으로 인정받게 됐다. 지원설의 수용은 세계의 중심이 어느 한 곳에 만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우주관이다. 무한공간설,

 

계방일기(桂坊日記)란

 

홍대용이 세자익위사의 시직(종8품)으로 근무했던 때의 일기로 마흔 네살 되던 해 1774년 음력 12월부터 9개월간의 기록이다, 내용은 세손 시절의 정조에게 경사를 강의하고 문답한 말이다.

 

서연의 주도자는 교수들이 아니라 세손이었다. 20대의 세손은 학문적 식견이 상당이 높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홍대용은 계방(주로 문의를 전달하는 것, 세자익위사의 별칭, 본디 무신들이 맡은 호위였지만, 학식이 높은 이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문신들이 배치됨)역할에 충실했지만, 때때로 자신의 교육관을 적용, 세손에게 강조한 것은 ”유학적 소양과 정치적 역량 함양“이다. 홍대용은 계방에 속했지만, 교육을 담당한 시강원인 춘방의 역할도 했던 모양이다.

 

홍대용은 일기에서 세손에게 사람의 감각이란 잠시도 만족을 모르는 것이니 비록 천하의 사치를 다하여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논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새롭고 기이한 것이 생각나는 법이라 점점 기이한 짓을 하게 되는 것이 필연의 이치라. 사치라는 것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기에 결국에 가서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의 장래를 책임질 세손에게 임금과 왕실의 검소한 생활은 백성의 편안한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북학파의 흐름을 만든 홍대용, 실학, 실천, 실사구시...허명과 허영을 멀리하고...

 

홍대용이란 인물, 세속의 영달을 탐하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도학자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지구가 둥글다, 하여 중국이 세상이 중심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고, 화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랑캐 유목민이 청을 세웠다 하여, 학문의 정통, 도리가 조선으로 옮겨왔다는 소중화사상은 참으로 우물안에 개구리로다. 실제 천명을 받은 천자만이 역법을, 달력을 시간을 다룰 수 있었다. 홍대용이 청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서양인들 주로 가톨릭 신부들의 손에 의해 시간이 관리되고 있음을.

 

정성희 선생이 친절하게 해석한 의산문답, 계방일기, 모두 홍대용과 우리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을 준다. 박지원과 홍대용, 우리가 따로따로 알고 있는 인물들이 실은 연결돼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집에 설치된 사설천문대 '농수각'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진심인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지금 왜 우리는 의산문답, 계방일기를 읽어야 하는가?, 꽤 유의미한 고민이다. 왜 지금 고전을 읽어야 할까, 새로운 발상으로 접근하는 지구 인문학과 과학의 발전, 실사구시, 참 된 복지란 무엇인가... 홍대용의 큰 사고 틀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힌트들이지 않을까,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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